12월 8일은 ‘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장 마리아 대축일’이다. 성모님의 군단 레지오마리애가 우리나라에서 시작된 곳에 광주대교구 가톨릭 목포성지(담당 최종훈 토마스 신부)가 있다. 목포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고즈넉한 언덕에 자리한 성지 곳곳에는 성모상과 성모칠고상, 피에타상 등을 모셔두어 따스한 성모님 품을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이자 유일한 준대성전
성지 안에 있는 산정동 준대성전(주임 정윤수 프란치스코 신부)은 2021년 선포된 우리나라 최초이자 유일한 준대성전이다.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로 두 개의 종탑과 돔으로 구성돼 있다. 성지의 주 출입구 가까이에 준대성전 지하 1층 입구가 있다. 그 양옆에는 본당과 전남 지역이 겪은 아픔들이 부조로 새겨져 있다. 교회 사건뿐만 아니라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물론 세월호 참사까지 담고 있다.
준대성전 2층 입구 앞은 작은 마당이 조성돼 있다. 이곳에서 준대성전을 올려다보니 또 다른 웅장함이 느껴진다. 준대성전 중앙 문 위에는 ‘준대성전’(BASILICA MINOR)이라는 황금색 글씨가 있고, 아래에 프란치스코 교황(1936~2025)이 이를 승인했다는 표지가 설치돼있다. 순례자들은 정해진 날에 통상 조건을 갖추면 전대사를 받을 수 있다.
성대한 외관에 비해 내부의 성당은 아늑하다. 기둥이 없어 제대를 바라보는 신자들의 시야를 가리지 않는다. 순례자 역시 시선이 막힌 곳이 없어 십자가를 바라봐야 한다. 그렇게 잠시 앉아 하느님을 오롯이 마주해본다.
파이프 오르간은 비교적 성가대석에 가까이 있어 전례에 최적화됐다. 화사한 햇살에 빛나는 스테인드글라스의 그림과 색감이 특히 부드럽고 생생하다. 구약과 신약의 주요 사건과 성모님의 칠고칠락 등이 사실감 있게 다가온다.
보목과 증거자들이 맞이해 주다
몇몇 신자가 성체조배를 하고 있다. 한 중년 부부가 제대 가운데 모셔져 있는 십자가 보목 앞으로 다가가 묵상한다. 남편은 불편해 보이는 몸을 이끌고 아내와 함께 깊은 절을 한다. 그들의 모습에서 간절함이 엿보인다.
본당은 크게 세 가지 보물을 모시고 있다. 성 십자가 보목과 아기 예수의 성 데레사(소화 데레사·1873~1897) 유해, 그리고 성인의 부모인 성 루이 마르탱(1823~1894)과 성 젤리 마르탱(1831~1877) 부부의 유해이다. 이 보물들은 제대 가운데와 양옆 기둥에 모셔져 있다. 특히 올해는 아기 예수의 성 데레사 시성 100주년이기에 더욱 의미가 깊다.
복도에는 다양한 성상과 성화들이 상세한 설명과 함께 비치돼 있다. 작품들을 묵상하며 1층 소성당에 들어가 본다.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나는 형상이 보인다. 또 다른 성인들의 유해다. 성 김대건 신부(안드레아·1821~1846)와 성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1818~1866), 성 마리아 고레티(1890~1902) 유해가 모셔져 있다. 밭에서 또 다른 보물을 발견한 기분으로 잠시 묵상한다.
한국의 ‘성모님 군대’가 결성된 곳
목포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이곳에서 가톨릭성가 349번 <마침 성가> “드높은 성소에서 내려다 보는 세상 … 주님의 힘만 믿어 굳세게 가렵니다”라는 구절이 떠오른다. 대성전 앞마당 메모리얼타워 꼭대기의 예수성심상도 시내를 향해 양팔을 벌려 축복하고 계신다. 메모리얼타워는 가운데가 뚫린 원통의 나선 오르막 형태다. 벽면에 오병이어, 가나의 혼인 잔치 등 최성호(루카) 작가의 부조 20점이 자리하고 가장 낮은 곳에 검은색의 피에타상이 있다.
성모광장에 있는 이춘만(크리스티나) 작가의 성모칠고상은 투박하면서도 정 많은 우리네 성모님 모습으로 그 아픔들을 묵묵히 담아내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성지에는 은혜의 성모님, 파티마 성모님 등 여러 모습의 성모상이 특히 많이 있다. 한국 레지오마리애의 발상지답다.
1897년 설립된 산정동본당은 1950년대 레지오마리애가 한국 최초로 도입된 곳이다. 레지오마리애를 들여온 당시 광주지목구장 하롤드 헨리 신부와, 또 다른 주축이었던 산정동본당 주임 안 토마스 신부를 중심으로 1953년 본당에서 두 개의 쁘레시디움 첫 주회를 했다. 이를 기념해 성지는 2017년 한국레지오마리애기념관을 개관했다. 기념관 외벽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벡실리움(표장)이 설치돼있다. 내부에는 중정을 두어 휴식 공간도 마련해 놨다.
기념관 성물방에는 성탄을 기다리며 성가정상이나 천사상이 있는 여러 가지 스노우볼이 마련돼있다. 전원을 켜니 캐럴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새어 나온다. 고민 끝에 구유 예수님을 맞이하는 성가정상이 있는 것으로 골라 본다. 흩날리는 반짝이 눈 속에 예쁜 모습 가득 담은 스노우볼을 들고 성지를 나선다. 이번 대림 시기 동안 내 마음속 침전물들도 흔들어내 정화하고 가꿔 예수님을 모셔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