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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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무엇을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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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끼는 한 후배는 요즘 많이 우울해했다. 믿었던 한 사람에게 큰 배신을 당해서였다. 그가 내게 물었다. 바오로 사도의 그 아름다운 구절,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를 들어 말이다. 


“감사하고 기도하는 건 그런대로 노력할 수 있어요. 그런데 기쁨은 노력해서 얻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선배는 기뻐요?”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기쁘다. 나는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떠오르는 찬란한 해에 가슴이 뛰고 펼쳐지는 모든 구름에 가끔은 감동에 겨워 멍하니 서 있곤 했다. 


이탈리아 순례 중 수많은 명품을 보았는데, 집에 돌아오자 11월 정원에 장미들이 몇 송이 새로 피어나 있었다. 그 장미들을 화병에 꽂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어떤 명품이 나를 이토록 감동시킬 수 있을까. 생각해 보니 수억 원의 명품 이래봤자 인간이 만든 것이고 장미는 신의 작품이었다. 내 손에 신의 작품을 무상으로 쥐어 드는 일을 하다니!


후배는 요즘 들어 믿었던 어떤 사람에게 실망하고 있었다. 내가 말했다. “인간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야. 인간은 긍휼의 대상이고 사랑의 대상이래.”


가끔 정치인의 부정부패 비리와 성추문에 달리는 댓글들을 본다. “저는 믿어요. 어떤 일이 있어도 믿습니다.” 


자신과 가족의 생살여탈권을 쥔 정치인들을 믿다니, … ‘하고싶은대로 하세요’라니. 정치인들은 감시의 대상일 뿐이다. 그들은 무엇보다 인간인 데다가 우리가 쥐여준 칼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토록 정치인의 성적·도덕적 결백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자기 자식에게는 거짓말 말라고 다그친다. 나에게 와서 자신은 이성적인 사람이라 하느님을 믿지는 못하겠다고 점잖게 말한다. 


나는 후배에게 말했다. 


“생각해 보니까 기쁨이란 굉장히 귀하고 소중한 감정이야. 이 세상에서 기쁨을 느끼는 때는 정말 많지 않아. 로또가 당첨되었다 해도 좋기는 하겠지. 그런데 좋은 것과 기쁜 건 다른 거야. 돌아보니 내가 정말 기뻤던 날은 내가 믿음을 찾은 날이었어. 내가 회심하고 하느님을 받아들인 날이었어. 진리를 알았을 때, 그러니까 하느님을 알았을 때 나는 몇 달 동안 이런 것이 바로 기쁨이라는 감정이구나 하고 생각했었어. 


그리고 두 번째는 내가 진실로 나의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했을 때 그리하여 수많은 눈물을 흘리고 용서를 빌었을 때. 이상하지만 그래 정말이야. 그때 나는 기뻤어. 마음 깊은 곳에서 맑은 샘물이 새로이 솟아나는 것 같았지. 그리고 세 번째 내가 아주 약간 남에게 도움을 주었는데 그리고 가끔 기도 해주었는데 그 남이 정말로 수렁에서 벗어나 잘 되었을 때 그때 정말로 기뻤어. 이 세 가지 외에 우리에게 지속되는 기쁨은… 난 아직 모르겠어.”


나는 안다. 기쁨은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니다. 누구에게도 기뻐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나는 한가지는 안다. 인간을 믿을 때 반드시 비참해지고 만다는 것을. 인간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 인간이 만든 모든 것도, 그러니까 그중의 대표 주자인 돈 같은 것도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 


만일 우리가 허방을 짚으면 무너져 내리고 무너져 내리면 반드시 그 허방과 함께 낙하를 맛보기 때문이리라. 우리의 기쁨은 무너져 내리지 않을 것을 쥔 상대에게 두어야 한다. 사도의 말대로 우리가 보는 이 세상은 사라져 갈 것이기 때문에.



글 _ 공지영 마리아(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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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5-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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