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서 동쪽으로 달리다가, 다시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아드리아해 쪽으로 가다 보면 란치아노라는 도시가 나온다. 이탈리아에서 성체의 기적이 일어난 다섯 군데의 도시 볼세나, 시에나, 페라라, 알라트리 중의 한 도시다. 하지만 그중 란치아노는 가장 유명하다. 오상의 비오 신부님이 사시던 산 조반니 로톤도로 가는 길에 있다.
전해져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1200년 전 한 사제가 미사를 드리다가 성찬의 전례 중 불현듯, ‘정말 그럴까’라는 의심을 품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 밀떡이 살로 변하고 포도주는 피로 변하여 응고되며,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졌다고 했다. 신부는 너무 놀라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오 나의 주님이시며, 내 하느님이십니다” 하고 부르짖었고, 이는 오늘날까지 보존되어 있다. 12세기가 지난 지금도 살 모양으로 변한 성체는 불그스름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고 성혈은 불규칙한 다섯 개의 형상을 한 한 핏덩이로 보존되어 전시되어 있다.
1970년 아레초 병원의 교수이자 수석 의사인 리놀리가 이 성체 조직을 떼어 과학적 조사를 하는데, 밝혀진 바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이 살과 피는 동일한 AB형이며, 살과 피는 인간의 것이다. 살은 심장 근육이다. 이 살과 피에 방부제를 사용한 흔적은 전혀 없다.”
이런 사실 자체가 우리를 얼마나 감동하게 할까 싶었다. 누가 모르나 말이다. 세례받을 때 이미 들은 말이었다. 그런데 막상 그 성체 성혈이 현시된 곳으로 다가가는데 가슴이 뛰었다. 뭐랄까 어떤 전혀 다른 자장의 동심원 속으로 들어서는 듯 다른 느낌으로 변했다는 말이다. 이것은, 파도바 성 안토니오 대성당에 들어서 성인의 혀가 보존된 곳으로 다가서며 수다를 떨던 나와 후배가 어느 순간부터 서로 동시에 입을 다물고 말았던, 그 사건과 비슷했다. 그리고 막상 그 성체 앞에 섰을 때 내 심장이 그 심장에 반응하고 있는 듯 느껴졌다. 통증과 아픔이 전해져 왔던 것이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벗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주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예수는 말씀하셨지만, 나는 이 지상에서 그런 사랑을 해 본 적이 없다. 다만 내 아이들을 두고, 만일 내 목숨을 내어주어 아이들의 영혼과 육신이 산다면 그건 기꺼이 ‘그러겠다’고 처음으로 생각해 본 적은 있었다. 하지만 생각과 실천은 아마도 다를지도 모른다.
그 성당 지하에서 영광스럽게도 우리는 미사를 봉헌했다. “너희를 위하여 내어줄 내 몸”, “죄를 용서하여 주려고 너희를 위하여 흘린 내 피”라는 말에 더 참을 수 없이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동안 그걸 몰라서가 아니리라. 그걸 눈으로 봐야 깨닫는 어리석은 나였기 때문이리라. 얼마나 사랑했으면 심장의 조각을 찢어 내줄 수 있는 걸까.
언젠가 세계 최빈국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 공항에서 내 가방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흰 광목 보따리가 컨베이어 벨트에 끝도 없이 실려 나오는 걸 본 일이 있었다. 새까맣고 쭈글쭈글한 얼굴의 노인들이 그 보따리를 짊어지고 공항을 떠나고 있었다. 알고 보니 평생 돈을 모아 메카와 메디나 순례를 다녀온 회교도 들이라고 했다.
그보다 백만 배는 더 잘사는 우리는 어떤 순례를 떠나고 있을까. 언제나 여행이나 순례를 떠나려고 돈을 모으면, 꼭 그만큼 쓸 일이 생기곤 했다. 내 생애 언제 다시 희년이 올까 싶어 대녀를 꼬드겨 함께 떠난 순례, 떠나오길 참 잘했다 싶었다. 아마도 그 후로 나의 기도는 약간 바뀐 듯했다. 심장을 내어준 분한테 뭘 더 달라고 할 수 있을까. 희년이 한 달쯤 남았다. 더 늦기 전에 떠나시길 권한다. 물론 국내에도 순례지가 많으니.
글 _ 공지영 마리아(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