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메리 빈센트는 그녀가 15세이던 1978년, 히치하이크로 얻어 탄 차 안에서 중년 남성 로렌스에게 반복적인 성폭행과 고문 그리고 폭행을 당한다. 하룻밤이 지난 후, 범인은 그녀의 지문을 없앨 목적으로 그녀의 두 팔꿈치 아래를 도끼로 자른 후 9미터 아래 절벽으로 던져버렸다. 정신을 차린 메리는 잘린 팔 부위를 진흙으로 틀어막고 절벽을 기어올라 거기서 다시 4킬로를 걸어가 지나가는 차에 구조된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메리는 당시를 회상하면서 절단된 팔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그냥 두면 죽는다는 생각에 흙과 진흙으로 상처를 틀어막고 팔을 들어 올려 피와 팔 조직들을 최대한 흘러내리지 않게 하여 절벽을 기어 올라갔다고 했다. 메리는 극심한 통증과 흐려지는 정신을 붙들고 “여기서 잠들면 죽는다”라는 생각으로 한 걸음 한 걸음을 떼어 놓았다.
이러한 무서운 생명력의 근본은 무엇이었을까. 그녀는 이미 가정불화로 가출한 상태였으므로, ‘자신을 기다릴 가족들의 사랑’을 기억한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기절하고픈 충동을 떨치며, “‘내가 살아 나가야 다른 피해자를 막을 수 있다’는 일념으로 걸었다”고 증언했다. “내가 나가서 그의 얼굴을 증언해야 그를 체포할 수 있고 다른 피해자들을 막을 수 있다”라는 생각 말이다.
그리고 언젠가 TV에서 보았던 건강 강사의 말을 떠올리며, 자신의 몸에게 말을 걸었다. “괜찮지? 조금 더 버틸 수 있지? 괜찮을 거야. 그래, 고마워 버텨줘서‘ 등. 그리고 그녀는 절망에 휩쓸리려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다잡으며 ‘어쨌든 살아남는다’, ‘도로까지 올라간다’, ‘차를 세운다’ 등의 구체적인 목표들을 세분화해 거기에 정신을 집중시켰다고 하니 놀라울 뿐이다.
가끔 내게 아픔을 호소하는 지인들을 본다. ‘엄마가 돌아가신 게 너무 충격이라서’, ‘집이 어려워진 이후 너무 힘들어서’, ‘그 남자에게 배신당한 아픔이 너무 커서’ …. 나는 물론 그들에게 메리 빈센트의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사람의 아픔은 비교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 나의 경우를 돌아봐도 어떤 기억들은 너무 힘들어 10년 동안이나 기억할 때마다 목덜미가 뻣뻣해지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 치유는 내 이야기를 기억하고 상세하게 묘사해 치료받는다 해서 오지 않았다. 나의 경우 그것은 뜻밖에도 사형수들에 대한 봉사활동에서 왔고, “이왕 망친 인생일지도 모르니, 오늘만은 즐겁고 의미 있게 살겠다”는 작은 결심에서 왔다.
후속 인터뷰를 찾아보니 메리 빈센트는 그 후로 재활하여 화가가 되었다고 한다. 두 손 멀쩡한 나도 못 되는 그 화가 말이다. 그리고 성폭력 여성들을 위한 치유 활동을 하며 살았다고 한다. 나는 그녀의 치유가 그 이후의 예술 창작과 봉사활동에서 왔다고 확신한다. 둘 다 엄청난 치유의 힘을 가진 것들이다. 그녀는 그 절망 속에서 얼굴도 모르는 ‘다른 희생 예비자들을 위해’ 자신을 바쳤다.
물론 우리 모두가 메리처럼 정말의 구덩이 속에서 영웅이 될 수는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하다못해 길고양이에게라도, 노점상 할머니에게라도 미소를 보낼 수는 있다. 그리고 생각할 수는 있다. “오늘만은 즐겁고 의미 있게 살겠다”라고. 반복해 봐야 되돌릴 수도 없고, 복구되지도 않으며, 편집조차 되지 않는 과거의 그 동영상은 그만 끄고 말이다.
‘나의 하느님 공부’를 읽어주신 모든 분, 그리고 가톨릭신문에 감사를 드리며 글을 마친다. 나도 이제 새로운 길을 가려고 한다. 상처투성이 옛 동영상을 끄고 말이다.
글 _ 공지영 마리아(소설가)
※ 그동안 ‘나의 하느님 공부’를 집필해 주신 공지영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