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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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의 근원이신 성모’ 순례지 벨기에 통에런 성모 탄생 성당

[중세 전문가의 간 김에 순례] 55. 벨기에 통에런 성모 탄생 바실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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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에런 성모 탄생 바실리카. 4세기 통에런교구 주교좌가 있었던 자리에 선 성당으로 현재 벨기에 하셀트교구의 대리구 본당이다. 13~16세기 고딕 양식으로 재건되었고, 프랑스 혁명까지 의전사제단이 거주하며 도시 신앙의 중심이 되었다. 1931년 비오 11세 교황에 의해 ‘우리의 기쁨의 근원’이신 성모에게 봉헌된 준 대성전으로 지정됐다.

“우리 기쁨의 근원이신 성모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Causa nostrae laetitiae, ora pro nobis).” 대림 시기에 들어서면 로레토의 성모 호칭 기도 한 구절이 늘 입에 맴돕니다. 어쩌면 대림은 바로 이 말을 되새기는 시간인지도 모릅니다. 아직 오지 않았지만, 이미 약속된 기쁨으로 미리 감사하며 기다리는 법을 배울 순례지를 오늘 가보려 합니다. 벨기에 통에런(Tongeren)의 성모 탄생 바실리카입니다.

통에런은 벨기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로 플랑드르 지방 남쪽 완만한 구릉 사이에 자리한 작은 국경도시입니다. 동쪽으로는 얀데르강 계곡을 따라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까지, 서쪽으로는 리에주까지 이어집니다. 로마 제국 때부터 강과 계곡을 따라 군대와 상인들이 오가며 통에런은 자연스럽게 교통·군사 요충지가 되었지요.
통에런 성모 탄생 바실리카 주 제대. 제대 양옆의 부활 촛대와 독수리 모양의 황동 독서대는 1372년 디낭의 장인 예한 조제의 작품으로 마스강 유역 황동 공예의 대표작이다. 가대석 위에는 성 마테르누스의 생애를 묘사한 장-바티스트 주팽과 에드몽 플뤼미에의 그림이 걸려 있다.

2000년 역사의 벨기에 최고(最古) 도시

통에런은 인구 3만 명의 작은 도시여서 단층 건물 기차역 앞으로 곧게 뻗은 길을 따라 700m만 걸어가면 시청과 바실리카가 있는 도심입니다. 하지만 동선을 남동쪽으로 살짝 틀면, 로마 성곽길과 중세 성문을 지나면서 2000년의 흔적을 느낄 수 있지요.

좁은 상점가를 지나 시청 광장에 들어서는 순간, 광장 한쪽에 웅장한 탑 하나가 나타납니다. 네모 반듯한 탑 뒤로 본랑이 길게 이어져 있어 서쪽 종루가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전란에는 피난처이자 망루였고, 축제의 날에는 도시 전체를 깨우는 기쁨의 종소리가 저기서 울려 퍼졌지요. 가까이 다가가면 종루의 각 층 세부 장식과 섬세한 창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현재 바실리카는 1179년 대화재 후 1240년경부터 새로 짓기 시작해 1536년에 이르러서야 완성되었습니다. 종루는 그보다 늦은 1442년부터 100년의 대공사 끝에 세워졌습니다. 바실리카 동쪽으로 로마네스크 회랑과 건물들이 붙어 있는데, 프랑스 혁명 이전에 의전사제단이 살던 건물이었습니다. 지금은 성당 박물관인 테제움으로 쓰고 있지요.
통에런 바실리카 본랑. 삼랑 형식의 바실리카로 마스강 유역 고딕 건물답게 가는 기둥과 높은 창으로 좁으면서도 길고 높은 수직적인 공간을 만들어 시선을 자연스럽게 주 제대 위 성모 제대화로 끌어당긴다.

빛과 돌이 만든 대림의 길

통에런 바실리카는 ‘성모 탄생’에 봉헌된 성당입니다. 성당 내부가 비교적 좁고 길어서 신랑을 따라 주 제대를 향해 양쪽으로 길게 늘어선 석주가 인상적입니다. 위쪽의 높은 교창으로 들어오는 자연광이 돌로 된 공간을 고루 따뜻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시선은 주 제대로 향합니다. 주 제대 위에는 성모 마리아의 일생이 드라마처럼 펼쳐진 목판 조각 제대화가 있고, 제대 양옆으로 독수리 모양의 황동 독서대와 3m 높이의 부활 촛대가 세워져 있습니다. 주 제대 뒤 창에는 성모 마리아의 삶과 그리스도의 부활, 교회 교부를 주제로 한 스테인드글라스가 보입니다.

주 제대는 성당의 타임캡슐과도 같습니다. 통에런 성모 탄생 성당은 4세기 로마 바실리카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로마 공공건물 중 바실리카 한 동이 성당으로 바뀌면서 지금 주 제대 자리에 성 세르바티우스 주교가 미사를 주례했지요. 그 뒤로 중세 초기 로마네스크, 고딕 성당의 제대와 후진이 이 자리에 층층이 들어섰습니다. 제대 앞 바닥 유리 지면을 통해 그 흔적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주 제대의 성모 제대화(좌)와 남쪽 측랑에 위치한 성모 소성당의 성모자상(우). 약 160개의 작은 인물상을 참나무 목판에 빼곡히 조각해 성모 마리아 생애의 주요 장면을 담았다. 원래 네덜란드 벤라이의 성당을 위해 제작된 것을 1865년에 매입해 기존 바로크 주 제대를 대신해 설치했다. ‘우리 기쁨의 근원이신 성모자상’은 레오 13세 교황의 대관 이후 통에런 도시의 팔라디움으로 대관 축제 행렬의 중심이다. 다음 대관 축제는 2030년 7월 7~14일.
 
통에런 바실리카 서쪽 정면. 중세 도시의 자유와 자치를 상징하는 종루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벨기에와 프랑스의 종루’에 포함돼 있다. 49개의 종으로 이루어진 카리용이 설치되어 있어 여름철 성당 앞 광장에서 카리용 콘서트가 열린다. 앞의 동상은 로마에 맞서 싸운 갈리아 영웅 암비오릭스다.

기쁨의 근원인 통에런의 팔라디움

통에런은 알프스 이북에 가장 오래된 마리아 성지 중 하나였습니다. 이미 카롤루스 시대부터 아헨 순례 길목의 성모 성지로 알려졌습니다. 오늘날에도 산티아고로 가는 벨기에, 네덜란드 순례길의 출발점이 되고 있지요. 특히 14세기부터 7년마다 바실리카의 성유물을 모시고 시내를 거동하던 ‘헤일리흐돔스파르턴(Heiligdomsvaarten)’ 축제는 유명했습니다. 프랑스 혁명으로 한때 중단되었다가 1890년 레오 13세 교황의 대관으로 ‘우리 기쁨의 근원이신 성모’로 선포되면서 이 전통은 성모 대관 축제로 이어졌습니다. 2023년 축제에서는 일주일간 야외 연극이 열리고, 도시 전체가 하나의 전례 속에 성모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남쪽 측랑의 성모 소성당에 바로 그 성모자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통에런 사람들은 ‘우리 기쁨의 근원이신 성모님’이라고 부릅니다. 16세기경 호두나무로 조각된 성모자상은 세월과 그을음으로 흑옥처럼 빛납니다. 성모님은 왼팔로 아기 예수님을 안고, 오른손은 작은 포도송이를 들고 있습니다. 아이는 그 포도 한 알을 집어들어 입에 가져가는 모습입니다. 포도송이는 유럽 중세 미술에서 십자가의 피와 성찬례의 포도주를 떠올리는 대표적 상징이지요. 이곳을 찾은 순례자들은 시험과 병, 가족 문제, 감사할 일마다 이 성모님 앞에 와서 촛불을 켜고, 기쁨과 슬픔을 함께 봉헌해왔습니다.

대림절이면 성모 바실리카 안은 다른 계절보다 더 조용히 빛납니다. 종루의 카리용 소리가 멀리서 들려오고, 소성당에서는 성모 호칭 기도가 울려 퍼집니다. 포도송이를 쥔 아기 예수님과 성모님 얼굴을 바라보면, 성탄의 기쁨이란 어떤 감정이라기보다 하느님께서 세상의 슬픔 속에 주시는 희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전쟁과 분열, 극도로 치닫는 이기주의라는 현실 앞에서 ‘기쁨’을 이야기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에도 교회는 우리보다 먼저 믿고 기다렸던 한 분을 가리킵니다. 우리의 보호자신 성모 마리아. 벨기에의 가장 오래된 도시 한가운데서 그분은 겨울을 따사로이 비추는 작은 빛으로 성탄을 기다리는 이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순례 팁>

※ 마스트리흐트와 리에주에서 각각 약 20㎞ 거리로 매시간 노선버스 운행. 브뤼셀에서 80㎞로 매시간 직통 열차 다님.(1시간 30분 소요)

※ 바실리카 전례: 주일 및 대축일 미사 10:00·11:30(오르간 연주)·18:00, 평일 08: 00(수·목)·17:00(토)·18:00(화·금). 성당 서쪽 출입구의 르 피카르 오르간(1750년), 남쪽 측랑의 피에타상(14세기 말), 찬 돌 위의 그리스도 수난상(15세기), 성당 지하의 고고학 유적과 성유물 등 성당 보물이 전시된 테제움 놓치지 말 것!

※ 혼자 가시기 힘든 분을 위해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이 마련한 2026 유럽 수도원 성지 순례. 문의 및 신청 : 분도출판사, 010-5577-3605(문자)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5-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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