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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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와 전쟁의 풍상 견디며 신앙 지킨 한옥 대안리공소

[리길재 기자의 공소(公所)를 가다] 4. 원주교구 흥업본당 대안리공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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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교구 흥업본당 대안리공소는 원주교구에서 100년이 넘은 공소 건축물로는 유일한 한옥 공소로 등록문화재 제140호로 지정돼 있다. 대안리공소 전경.

원주교구 흥업본당 대안리공소는 교구 내에서 가장 유서 깊은 공소 중 한 곳이다. 원주교구에서 100년이 넘은 공소 건축물은 대안리공소가 유일하다. 원주시 흥업면 승안동길 216(흥업면 대안1리 659번지)에 자리한 대안리공소는 한옥식 공소 건축물의 가치를 인정받아 2004년 12월 등록문화재 제140호로 지정됐다.

조선 왕조 치하 박해 시기 경기도와 충청도 신자들이 덕가산으로 숨어들어 살다가 신앙의 자유를 얻은 후 대안리 교우촌을 형성했다.

초기 권씨와 김씨 성을 가진 신자들이 대안리 교우촌의 터를 닦았고, 이후 조씨와 한씨 성의 교우들이 이곳으로 이주했다. 조씨 교우들은 경기도 양근 출신으로 1801년 신유박해 때 함경도 무산으로 귀양 간 조동섬(유스티노)의 방계 후손들이다.
대안리공소 내부 부재 대부분이 나무로 되어 있어 편안함을 준다. ‘敬天愛人(경천애인)’ 현액이 걸려 있는 제단.

원주교구 내에서 가장 유서 깊은 공소

대안리(大安里)는 ‘크고(大) 편안한(安) 고개 마을’을 의미한다. 또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대송동과 승안동이 합쳐져 대안리가 됐다. 흥업면은 강원도 원주와 경기도 여주·충북 충주로 가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다. 흥업면 남서쪽에 위치한 대안리는 동쪽으로 매지리, 서쪽으로 문막, 남쪽으로 귀래면, 북쪽으로 사제리를 끼고 있다. 조선 시대 대안리는 마을 산세가 거미를 닮았다 해서 ‘금물산면(今勿山面)’이라 불렀다. 대안리에는 천연기념물 제279호로 지정된 ‘느티나무’, 조선 효종 임금의 4녀 숙휘 공주와 5녀 숙정 공주의 태(胎)를 봉안한 ‘운산태실(雲山胎室)’, 절터인 ‘약사암지(藥師庵址)’가 있다.

일설에는 대안리공소가 1892년 5월에 풍수원본당 관할 공소로 설립됐다고 한다. 하지만 그 어떤 기록도 없다. 대안리공소가 기록에 나오는 것은 제3대 원주본당 주임 드브레(Devred) 신부가 1901년 6월 4일 작성한 보고서 내용이다. 제8대 조선대목구장 뮈텔 주교에게 보낸 이 보고서에서 드브레 신부는 원주 근교에 5개 새 공소를 만들어야 한다며 도안리(To-an-ri)·항골(Hang-Kol)·분줄(Poun-tjyoul)·오리절(Ori-tjyel)·고사리골(Kosarikol) 등 다섯 마을을 소개한다. 이들 마을 중 ‘도안리’가 바로 대안리공소다. 원주본당의 교세 통계나 보고서에는 ‘To-an-ri’(도안리), ‘Toi-an-ri’(되안리) 혹은 한글로 ‘되안리’ 등으로 표기돼 있다. 이로써 대안리공소는 1901년에 설립됐음을 알 수 있다.

대안리는 공소 설립 후 신자들이 급속히 늘었다. 원주본당 통계에 따르면 대안리공소 신자 수는 1900~1901년 24명, 1901~1902년 40명, 1902~1903년 85명, 1903~1904년 76명, 1909~1910년 112명이었다. 드브레 신부는 1903년 5월 28일 자 뮈텔 주교에게 보낸 보고서에서 대안리공소에 대해 이렇게 자랑했다. “올해 25명의 성인 세례자를 얻었습니다. 이 마을은 전체가 새 신자들로 이루어졌는데, 그들의 열성적인 믿음과 주변 외교인들을 개종시키려는 열의로 두드러집니다. 그들은 꽤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주일날 종종 원주에 와서 미사에 참례합니다.”
1910년 11월에 봉헌된 대안리공소는 처음에 초가집으로 시작해 4칸 한옥, 6칸 기와 한옥 공소로 증·개축해 왔다. 대안리공소 내부.

한옥 공소, 등록문화재 제140호로 지정

신자들의 열성으로 대안리에 초가 공소가 지어졌다. 공소 건축에 쓰일 목재는 인근 소초면에서 벌목해 지게로 운반했다. 정확히 초가 공소가 언제 지어졌는지는 모르지만 뮈텔 주교 일기를 근거로 드브레 신부 재임 기간(1900년 5월~1906년 5월) 중에 지어진 것은 확실하다.

이후 1909년 1월에 부임한 제5대 주임 조제(Jaugey) 신부가 4칸짜리 한옥 공소로 증축했고, “성당이라 할 만큼 훌륭하게 지어졌기 때문에” 1910년 11월 12일 제8대 조선대목구장 뮈텔 주교가 성당 축성 예절로 공소를 축성, 성모님께 봉헌했다.

대안리공소는 1900년대 초반에 지어져 현재 강원도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한옥 형태 종교 건축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등록문화재로 지정될 수 있었다.

대안리공소는 6·25전쟁 당시 원주 지역을 장악했던 북한 인민군 막사로 이용됐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미군의 구호물자 배급처로 사용됐다. 대안리공소는 1965~1966년 지금의 6칸 한옥 공소 건물로 증·개축됐다. 초가 지붕이 기와로 바뀌었고 대들보도 모두 교체했다. 벽체 등은 그대로 두었다. 하지만 대들보와 기둥들이 기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기울어져 공소 건물이 붕괴할 수 있어서 1972년 3월 이후 지붕을 슬레이트로 교체했다. 그러나 슬레이트 지붕 탓에 자주 비가 새 2007년 6월 금속 기와로 교체했다. 이렇게 몇 차례 개보수를 거쳐 지금까지 아름다운 한옥 공소를 보존하고 있다.

대안리공소는 대안1리 마을 높은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마을의 좁은 길을 걸어 올라가 공소로 들어서면 탁 트인 너른 땅에서 아름다운 한옥 성당을 만난다. 동쪽으로 마을 길과 논밭·개천이 있고, 서쪽으로 울창한 숲을 이뤄 가슴이 뻥 뚫리는 개방감을 안겨준다. 또 종탑과 공소 주변 커다란 나무들이 운치를 더해준다. 공소 오른편에는 한복 입은 성모자상이 세워져 있다.
원주시 흥업면에 있는 대안리공소는 탁 트인 개방감을 주는 공소이다. 돌을 쌓아 만든 기단 위에 서있는 성모자상.

1976년 원주교구 가톨릭농민회 시작된 곳

대안리공소는 일자형 한옥 건물로 내부도 단순하다. 주 출입구 전실과 회중석·제단·제의방으로 구성돼 있다. 지금의 내부 모습은 원형과는 사뭇 다르다. 목재 프레임으로 창문을 만들어 채광을 좋게 하고, 흰색 페인트로 벽면을 칠하고, 서까래와 마루 널에도 니스를 발라 밝고 깔끔하게 단장해 놓았다. 신발을 벗고 공소로 들어가도록 꾸며진 전실 공간은 약간 어둡게 해 ‘거룩함과 속된 것’을 구분하는 경계 역할을 한다. 제단 가로목에는 ‘敬天愛人(경천애인)’ 현액이 걸려 있다.

초기에는 회중석 왼편(동쪽)에 남자들이, 오른편(서쪽)에 여자들이 앉았다고 한다. 1930년대 중반까지 회중석 가운데에 ‘남녀구분 칸막이’ 역할을 한 두 개의 기둥 흔적이 마루에 남아있다. 한옥에 어울리게 제대와 제단 십자가도 모두 나무다. 제단은 마루 널을 한 단 올려 회중석과 구분했다. 제약된 공간을 최대로 활용한 것이다. 제대 뒤편에는 제단과 연결된 사제 방이 따로 있다. 과거 일 년에 두 번 판공성사를 주러 오는 사제가 묵는 곳이었다. 지금은 제의실로 사용하고 있다.

대안리공소는 인공으로 다듬어지지 않았다는 점이 돋보인다. 공소 건물이 자연과 하나처럼 어울리도록 꾸며놓은 것이 참 좋다. 같은 신앙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도 이곳에 머물면서 자연스레 하느님을 묵상하게 하는 그런 공간이다.

대안리공소의 자랑거리가 또 하나 있다. 1976년 원주교구 가톨릭농민회가 시작된 곳이다. 공소의 선조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 농사까지 버렸다면, 그 후손들은 되찾은 농사에 가톨릭 신앙을 담았다. 대안리공소 신자들은 2006년 6월 국내 최초로 GMO 프리존(유전자 조작 식품 자유지역)을 선포했다. 지금도 대안리공소는 가톨릭농민회 활동을 통해 창조질서를 보존하는 친환경 농업을 실천하고, 도시 소비자들과 소통하면서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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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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