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이 되면 성당은 물론 거리와 공원까지 트리 불빛으로 반짝이고, 성당마다 구유가 차려지며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기쁨이 깊어진다. 종종 이러한 장식들을 단순한 ‘성탄 분위기’로만 여기지만, 각각에는 오랜 전통과 신학적 의미, 그리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성탄을 알리는 트리와 꽃, 구유가 지닌 상징과 유래, 그리고 세계 각지의 이색적인 구유 문화를 소개한다.

트리, 빛으로 드러나는 희망
2023년 10월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이후 중단됐던 성지 베들레헴의 성탄 행사가 2년 만에 다시 열렸다. 전쟁의 여파로 어둠이 드리웠던 구유 광장 중앙에는 다시 붉은빛과 금빛 장식의 대형 트리가 세워졌고, 광장은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다리는 설렘과 기대로 가득 찼다. 한동안 빛마저 사라졌던 광장이 다시 환히 밝아진 그 순간, 많은 이는 ‘세상의 빛’이신 그리스도를 새롭게 떠올렸다.
크리스마스트리는 오랜 역사와 상징을 품고 변해왔다. 트리에 장식을 다는 풍습은 16세기 상록수에 제병을 닮은 하얗고 동그란 과자를 달고 주위에 촛불을 켜며 나무를 빛냈던 데서 시작됐다. 이 때문에 당시 사람들은 트리를 ‘천국의 나무’라고 불렀다. 19세기 말부터 유리 장식과 조명이 더해지며 오늘날의 모습으로 자리 잡았다.
트리의 사철 푸른 나무는 변치 않는 생명과 부활을 드러내며, 이를 둘러싼 꽃과 장식은 성탄의 신학적 상징을 한층 풍부하게 한다. 트리 주변을 밝히는 호랑가시나무는 메시아의 ‘가시관’을 떠올리게 하고, ‘축복’, ‘축하’의 꽃말을 가진 붉은 포인세티아는 성탄의 기쁨을 전한다. 다양한 장식들도 의미를 품고 있다. 붉은 구슬은 죄와 죽음을 기억하게 하는 ‘선악과’를, 하얀 구슬은 생명의 빵, 성체를 비유적으로 드러낸다. 트리 꼭대기의 별은 주님의 탄생을 알리는 표지다. 동방 박사들이 “그분의 별을 보고 경배하러 왔다”고 말한 복음의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구유가 전하는 성탄의 신비
최근에는 전통적인 마구간 구유 외에도 다양한 의미를 담은 구유들이 눈길을 끈다. 가정폭력 피해 여성들을 기억하는 분유통 구유, 미혼부모의 현실을 담은 기저귀 구유, 이주노동자의 삶을 비유한 지구본 구유 등 창의적이고 상징적인 형태들이 등장하고 있다. 서강대학교가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만든 구유도 새로운 시도로 주목받았다.
형태는 다양해졌지만, 말구유를 중심으로 마리아와 요셉, 동물과 목자들이 둘러싼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에게 익숙한 마구간 형태 구유는 처음부터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3세기 그리스도인들은 벽화, 모자이크, 대리석 부조로 예수님 탄생 장면을 표현했고, 5세기경에는 은이나 나무로 제작한 성탄 조각들이 등장했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구유 전통은 1223년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에서 비롯됐다. 베들레헴을 순례하던 중, 예수님이 누우셨던 구유에 깊은 감명을 받은 성인은 신자들에게 그 신비를 더 생생히 전하고자 베들레헴의 외양간을 본뜬 마구간을 마련했다. 하느님의 외아들이 가난과 낮춤 속에 오셨다는 사실을 몸으로 체험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 전례는 큰 감동을 불러일으켰고, 이후 작은 모형 구유를 만드는 전통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세계의 이색 구유 문화
성탄 구유는 각국의 문화와 결합하며 고유한 전통으로 발전했다. 폴란드 크라쿠프의 ‘숍카(szopka)’는 대표적인 사례다. 다채로운 색감과 장식으로 꾸며진 이 성탄 구유는 매년 12월 첫째 주 목요일, 아담 미츠키에비츠 동상 앞 광장에서 시민들과 관광객들에게 선보인다.
숍카는 아기 예수의 탄생 장면과 인형극 무대, 정치·사회 풍자를 위한 유희적 공간이 결합해 만들어진 형식으로, 1937년 첫 ‘크라쿠프 구유 경연대회’ 이후 도시의 대표 문화로 자리 잡았다.
각 숍카는 크라쿠프의 건축 양식을 축소해 놓은 듯한 다층 구조를 이루는데, 1층에는 역사적 인물과 현대 정치인·예술가를 형상화한 작은 인형들이, 2층에는 베들레헴 구유가 자리한다. 반짝이는 색채와 LED 조명, 첨탑 장식으로 꾸민 숍카는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구유’로도 불리며, 제작 전통은 2018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이탈리아 마테라에서는 도시 전체가 성탄 무대가 된다. 이곳 주민들은 성경 속 인물을 직접 연기하는 ‘살아 있는 구유’를 통해 예수님 탄생 장면을 재현한다. 마테라의 고대 동굴 주거지 ‘사씨(Sassi)’는 이 시기 하나의 거대한 구유 무대로 변신한다. 요셉과 마리아, 동방 박사, 목자들뿐 아니라 그 시대의 일상 풍경까지 세밀하게 재현되며, 관람객들은 마치 베들레헴 골목을 걷는 듯한 생생한 체험을 하게 된다. 밤이 되면 촛불과 랜턴이 석회암 벽을 비추며, 도시 전체가 따스한 빛으로 물든다. 베들레헴과 닮은 지형을 지닌 마테라는 성탄 시기에 특히 많은 이들의 발걸음을 끈다.


변경미 기자 bgm@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