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우리는 여러 변화와 도전 속에서도 신앙을 지켜나가며, 각자의 자리에서 공동체를 위해 최선을 다해 왔습니다. 이러한 때에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마태 1,23)는 말씀은, 하느님께서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위로와 용기를 주는 약속으로 우리 마음에 새롭게 울려 퍼집니다.
성탄은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인간 역사 안으로 들어오신 구원의 실제적 사건입니다. 임마누엘이신 주님께서는 우리의 어둠과 취약함, 남루한 일상 속으로 찾아오시어, 우리 안에 새로운 희망의 빛을 다시 밝혀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외아드님이시지만 풍요롭고 안전한 곳이 아닌 가난하고 누추한 마구간을 당신 자리로 삼으셨습니다. 낮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신 주님을 본받아 소외되거나 도움이 필요한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삶에 동행하는 형제적 사랑을 실천하도록 합시다.
우리는 성탄의 빛에 비추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루카 10,29)라는 물음을 던집니다.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서로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눈다면, 무관심의 장벽은 사랑 앞에서 허물어지고 말 것입니다. 이러한 실천을 통해 우리 교구는 참된 ‘가톨릭’ 정신을 회복하고 하나 되는 공동체로 성장해 나갈 수 있습니다.
성탄은 하느님께서 우리가 지닌 희망을 행동으로 보여주기를 바라시는 때입니다. 우리가 일상 안에서 실천하는 작고 사소한 사랑의 몸짓을 통해 하느님께서는 우리 교구를 희망의 공동체로 새롭게 일구어 가실 것입니다.
다음은 담화 전문.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마태 1,23)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2025년 성탄을 맞이하여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올해 우리는 여러 변화와 도전 속에서도 신앙을 지켜나가며, 각자의 자리에서 공동체를 위해 최선을 다해 왔습니다. 이러한 때에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마태 1,23)는 말씀은, 하느님께서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위로와 용기를 주는 약속으로 우리 마음에 새롭게 울려 퍼집니다.
성탄은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인간 역사 안으로 들어오신 구원의 실제적 사건입니다. 임마누엘이신 주님께서는 우리의 어둠과 취약함, 남루한 일상 속으로 찾아오시어, 우리 안에 새로운 희망의 빛을 다시 밝혀주십니다.
가난을 선택하신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계신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외아드님이시지만 풍요롭고 안전한 곳이 아닌 가난하고 누추한 마구간을 당신 자리로 삼으셨습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시기 위해 인간 삶의 가장 낮고 비천한 자리까지 내려오셨음을 보여주는 분명한 표징입니다. 주님께서 몸소 낮아지심을 선택하셨다는 이 사실은, 하느님의 구원은 세상의 힘이나 권세가 아닌 사랑과 온유 안에서 드러나는 것임을 우리에게 일깨워 줍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웃을 향한 사랑의 활동은 성령의 내적 은총을 가장 완벽하게 밖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복음의 기쁨』 §37)라고 말씀하셨고, 교황 레오 14세는 “주님을 향한 사랑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과 하나입니다. … 이는 단순한 인간적 친절을 베푸는 문제가 아니라 계시입니다.”(『내가 너를 사랑하였다』 §5)라고 강조하십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하느님의 능력이 강압이 아니라 사랑 안에서, 특별히 가난한 이들의 얼굴 안에서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의 신비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이처럼 성탄의 신비는 모든 사람의 고유한 존엄을 새롭게 바라보도록 우리 모두를 초대합니다. 낮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신 주님을 본받아 소외되거나 도움이 필요한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삶에 동행하는 형제적 사랑을 실천하도록 합시다.
무관심의 장벽을 넘어, 참된 ‘가톨릭’ 정신으로 하나 되는 길
오늘날 우리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그 변화에 따라가기 급급한 나머지 서로의 어려움과 고통을 충분히 바라보지 못하거나 때로는 외면하기까지 합니다. 이러한 현실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무관심의 벽을 쌓게 하고, 같은 신앙 공동체 안에서 마저 마음의 거리를 두게 만듭니다. 그러나 교회는 ‘가톨릭’입니다. 그 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모든 이를 품는 보편적 공동체입니다. 교황 레오 14세는 약한 이들, 주변부에 놓인 이들, 돌봄이 필요한 이들을 중심에 둘 때 교회가 비로소 주님의 모습을 참되게 드러낼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내가 너를 사랑하였다』 §5, §17 참조).
따라서 우리는 성탄의 빛에 비추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루카 10,29)라는 물음을 던집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반문에 진지하게 응답하도록 초대받습니다.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루카 10,36)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다시금 마음 깊이 새기며, 저마다 서로에게 진정한 이웃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서로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눈다면, 무관심의 장벽은 사랑 앞에서 허물어지고 말 것입니다. 이러한 실천을 통해 우리 교구는 참된 ‘가톨릭’ 정신을 회복하고 하나 되는 공동체로 성장해 나갈 수 있습니다.
희망의 공동체를 향한 우리의 실천적 사명
성탄은 하느님께서 우리가 지닌 희망을 행동으로 보여주기를 바라시는 때입니다. 희망은 기다림으로만 생겨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향한 굳건한 신뢰를 지니고 이웃을 향한 책임 있는 사랑을 실천할 때 무상으로 주어지는 열매입니다. 교황 레오 14세도 이러한 희망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하느님을 향한 깊은 신뢰와 이웃을 향한 구체적 책임이 함께 자라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내가 너를 사랑하였다』 §102, §108 참조). 희망의 씨앗은 매우 작은 행동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일상 안에서 실천하는 작고 사소한 사랑의 몸짓을 통해 하느님께서는 우리 교구를 희망의 공동체로 새롭게 일구어 가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라는 임마누엘의 약속은 성탄을 맞이하는 우리의 마음에 새로운 위로와 용기를 줍니다. 가난을 선택하신 주님의 사랑을 기억합시다. 그리고 무관심의 벽을 넘어 서로에게 다가갑시다. 희망을 실천하는 작은 행동들은 우리 교구를 사랑과 인정이 넘치는 따뜻한 공동체로 만들어 갈 것입니다. 또한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사랑을 세상 가운데 증언하는 참된 ‘가톨릭’ 신앙인이 될 것입니다.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 가정과 일상에 늘 함께하기를 기도드립니다. 다시 한번 성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평화의 모후님!
복자 신석복 마르코, 구한선 타대오, 정찬문 안토니오, 박대식 빅토리노, 윤봉문 요셉!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2025년 12월 25일
주님 성탄 대축일
천주교 마산교구장 이성효 리노 주교
이나영 기자 lal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