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교구 보좌주교에 임명된 곽진상(제르마노) 주교임명자는 수원교구 서판교성당에서 열린 임명 발표식에서 “제가 부당한 죄인이고 합당하지 않은 사람이기에 가슴이 떨리고 두려웠다”며 “저를 선택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늘 곰곰이 생각하면서 살겠다”고 밝혔다. 지인들은 그를 “똑똑한 동생”, “경청하고 포용하는 사목자”, “한 번 마음 먹은 것은 끝까지 해내는 사람”, “새로운 생각을 가지고 변화하는 것을 응원하는 사목자”라고 설명했다. 그가 밝힌 “늘 곰곰이 생각하면서 살겠다”는 각오는 주교로서의 길에 대한 다짐이기도 하다. 늘 경청하며 교구민이 하느님 안에서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함께 고민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똑똑하고 어른스러웠던 동생…오랜 꿈 ‘사제’가 되다
곽 주교임명자는 4남 2녀 중 막내로,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읜 뒤 어머니(김종례 프란치스카, 1992년 선종)의 손에 자랐다. 힘든 형편 속에서도 어머니는 여섯 남매 손을 꼭 잡고 주일미사에 참례하곤 했다.
누나 곽경자(세레나) 씨는 “맛있는 걸 누나에게 주면 성당에 데려가겠다고 했을 때도 단 한 번 망설이지 않고 모두 내주던 동생이었다”며 “한 시간이 넘는 거리를 여섯 살 아이가 걸어가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투정 한 번 없이 매주 성당에 가서 조용히 미사에 참례했던 모습이 기억난다”고 말했다.
곽 주교임명자는 자라면서 한 번도 어머니와 형제자매의 속을 썩인 적이 없었다. 큰형 곽춘상(바오로) 씨는 “동생이 워낙 똑똑해서 초등학교 시절 부잣집에 양자로 보내졌던 적도 있었다”며 “공부뿐 아니라 테니스도 잘했고, 노래에도 재능이 있었던 팔방미인이었다”고 회고했다.
“성당에 가는 게 가장 행복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막내가 신학교에 가겠다고 하자, 어머니는 누구보다 기뻐했다. 반면 큰 형은 “내가 수도회에 갈 테니 똑똑한 너는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권했다. 당시 곽 주교임명자는 “나는 신부가 되기로 결심했으니 형도 수도회를 가시라”고 단호히 말했다고 한다. 평소 형의 말을 잘 따르던 동생이 처음으로 자신의 뜻을 강하게 밝힌 것은 사제로서의 꿈 때문이었다.
형제들은 한결같이 곽 주교임명자를 “맏이 같은 막내”라고 했다. 곽경자 씨는 “여섯 살 아래지만 생각이 깊고 넓어 오빠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며 “자기 일은 착실하게 해내고 착하고 어진 성품을 지닌 대견한 동생”이라고 말했다.
포용과 경청의 리더십 갖춘 선배 사제이자 교육자
곽 주교임명자는 1993년 사제품을 받고 본당 보좌로 사목하다 1996년 프랑스 유학길에 오른다.
같은 해에 프랑스 유학길에 오른 수원교구 김승부 신부(프란치스코·소화초등학교 교장)는 그를 “경청하면서도 남의 말을 수용하고, 또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줄 아는, 똑똑하고 겸손한 사람”으로 기억했다. 김 신부는 “한국과 프랑스의 공부법이 달라 유학 초반에는 어려운 점이 많았는데 매일 논문에 파묻혀 해내려 노력하는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라며 “자신에게 주어진 일은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반드시 해내는 인내심을 가진 노력파”라고 설명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그는 포용력 있는 사목자였다. 김 신부는 “유학생들 사이에서 도움을 청하는 일이 많았는데, 늘 기꺼이 도와주려 했고, 인자한 미소로 상대를 포용하던 모습이 사목자로서 참 닮고 싶은 부분이었다”고 회상했다.
수원교구 한민택 신부(바오로·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도 프랑스에서 곽 주교임명자를 만나 신학에 대한 열정을 배웠다. 한 신부는 “유학 시절 제게 깐깐하게 조언해 주시면서도 그 안에는 따뜻한 배려와 사랑이 녹아있었다”며 “여가 시간에도 신학에 관해 토론하면서 학문에 대한 열정에 자극을 주시고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고 전했다.
한 신부는 수원가톨릭대학교 총장 재임 때의 곽 주교임명자를 “학생들의 말을 경청하고 스스로 변화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교육자이자 사목자였다”고 회고했다. 한 신부는 “카리스마 있는 리더십과 공감과 경청의 리더십이 모두 필요한 시대에 이 두 가지를 가장 잘하실 수 있는 분이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새로운 방법과 열정으로 길을 찾은 사목자이자 학자
2023년 수원교구 서판교본당 주임으로 부임한 곽 주교임명자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침체된 공동체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고민을 거듭했다. 그는 매일 ‘무엇을 어떻게 실천할지’를 모색하며, 포기하지 않고 실천에 옮겼다. 그 결과 4000여 명이었던 본당 신자 수는 2년 6개월 만에 5600여 명으로 늘었고, 미사 참례율도 10가량 올랐다.
조성근(베드로) 서판교본당 총회장은 “처음 부임하셨을 당시 신자가 많이 줄어있던 상황이었음에도 신부님은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방법, 새로운 열정, 새로운 기분으로 새롭게 나아가라’는 말을 강조하셨다”며 “일을 완벽하게 진행하면서도 붙여넣기 식으로 작년 것을 답습하지 말라고 당부하신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이어 “공동체의 대소사를 꼼꼼하게 먼저 챙기시는 신부님 덕분에 사목회도 늘 긴장감을 갖고 최선을 다해 공동체가 자연스럽게 활성화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곽 주교임명자는 깊이 있는 연구를 통해 이 시대에 맞는 신앙과 신학적 통찰을 제안한 학자이기도 하다. 20세기 신학자 앙리 드 뤼박(Henri de Lubac, 1896~1991) 추기경을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연구한 그는 2025년 2월 책 「역설들」을 번역해 출간했다. 2017년에는 심상태(요한 세례자) 몬시뇰 등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진과 함께 가톨릭교회의 공식 가르침을 집대성한 「신경, 신앙과 도덕에 관한 규정·선언 편람」 한국어판 번역에도 참여했다. 곽 주교임명자가 속한 ‘덴칭거 책임번역위원회’는 이 책으로 제22회 한국가톨릭학술상 본상을 수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