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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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란치스코의 발자취를 따라] 순례자의 모범, 성 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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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성지’로 불리는 장소가 다양하지만,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에게 ‘거룩한 땅(Terra Santa)’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복음을 전파하시고 부활 및 승천하신 예루살렘에 한정되었습니다. 하지만 중세 이후엔 정치적, 지리적, 그리고 종교적 이유로 베드로 사도의 무덤이 있는 로마와 큰 야고보 사도의 무덤이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세 군데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교인들에게 성지순례란 하늘나라를 선포하러 오신 예수님의 무덤 앞에서 세상에서 살며 지었던 자신의 죄에 대한 고백과 완전한 용서 즉, 연옥의 벌에 대한 전대사를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 무덤이 있는 예루살렘은 예수님께 직접 전대사를 받을 수 있는 장소라고 한다면 로마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사도들의 전구를 통해 간접적으로 받을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집을 떠난다고 모두가 순례자라고 불리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시절 자신이 살던 동네를 떠난다는 것은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많은 용기와 함께 하느님께 나의 죽음까지 맡길 수 있는 전적인 믿음이 필요하였습니다. 그 누구도 성지에 언제 도착할지 그리고 다시 집에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하였고 순례 중 유일한 희망은 하느님 섭리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자신의 한평생을 바쳐 살아간 사람들이 수도자라고 한다면 순례자는 한시적인 시간 속에서 자기가 살던 세상을 벗어나 또 다른 세상에서 적극적으로 수도자처럼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순례는 또한 지역적으로 다른 세상으로 가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이 살아왔던 일상이나 습관, 악습, 생각, 행동들까지 모두 세상에 던져 버리는 자기 포기의 시작이었습니다. 수도자가 수도원에 들어가기 전 주님의 부르심이 필요한 것처럼 순례자도 순례를 시작하기 전 자기 결심이 필요하였고 교회 전례를 통해 순례자의 신분으로 바뀌는 것이 먼저였습니다.


그래서 순례자를 식별할 수 있는 세 가지 요소가 있었는데, 바로 순례복, 지팡이 그리고 배낭이었습니다. 수도자가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는 외적 표시로 수도복을 입는 착복식을 하는 것처럼, 순례자도 순례 기간 일상의 세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의 삶 안에서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봉헌하는 표시로 본당 신부님 앞에서 순례복을 입는 착복식을 하였습니다. 
 


죄의 완전한 용서 향해 시작된 순례
생사 하느님께 맡긴 믿음의 여정
비움 통해 완성한 ‘길 위의 영성’


이것으로 순례자는 교회의 가장 낮은 성직자가 되고 순례 중 만난 같은 순례복을 입은 사람들과는 국적을 떠나 깊은 동료애와 함께 연대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문자화된 규칙서는 없었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 청빈과 하느님께 모든 마음을 드리는 정결함, 그리고 순례 중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받아들일 수 있는 순명의 마음이라는 특별한 길 위의 영성을 지키려고 하였습니다.


순례자들은 예수님 말씀처럼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고 길 위로 예수님을 따라나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길은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참회의 기도를 하고 사람들에게 애덕을 실천하고 죽음을 맞기까지 하며 하느님께 다가가는 영적인 여정이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중세의 수도원 중에는 수도회에 입회하기 전에 길 위의 영성을 먼저 살아보도록 권고하였고, 이런 길 위의 순례 영성을 충실히 살며 수도회를 완성한 대표적인 창립자가 성 프란치스코였습니다.


순례자가 들고 가는 나무 지팡이는 순례 중 만날 수 있는 짐승이나 산도적들과 싸울 수 있는 무기가 되어 주기도 하였지만, 지팡이의 첫 번째 목적은 순례자가 길을 잘 걸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또 다른 발의 역할이었습니다. 지팡이를 가지고 있음으로써 순례자에게는 세 개의 발을 가지게 된 것이며, 이것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 연관시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순례자는 홀로 걸어가지만 혼자 걸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성부이신 오른발과 성자이신 왼발 그리고 성령의 하느님이신 지팡이에 의지를 하여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 함께 걸어가는 전적인 믿음의 여정이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물건은 순례자용 배낭입니다. 배낭은 크지 않게 하였고 죽은 동물 가죽으로 만들었습니다. 크지 않게 만든 이유는 순례 기간 자신의 계획이나 의지를 덜어내고 오로지 하느님 섭리에 믿음을 두는 사람으로서 음식이나 소유물도 최소한의 것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리고 죽은 동물 가죽으로 만든 것은 순례 중 악습과 욕망, 배고픔과 목마름 등을 죽여야 하는 순례자의 금욕주의적 삶을 가르치고, 또한 죽음이 나와 멀지 않은 곳에서 함께 걸어가고 있지만, 이 죽음은 나를 슬픔으로 끌고가는 것이 아니라 프란치스코가 이야기한 것처럼 하느님 아버지께 친절히 인도할 누나와 같은 것이라 가르치고 있습니다.


순례는 나 중심이 아닌 하느님이 중심이 되어 천국으로 향하는 길 위의 영성입니다. 하느님께서 보여주시고 하느님께서 이끌어 주시고 하느님께서 당신의 사랑으로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례자가 해야 하는 것은 하느님 은총의 빗물이 채워질 수 있도록 자신의 마음을 비우는 일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무한한 그릇이 아닙니다. 


마음 그릇의 한계를 넘으면 근심과 걱정이라는 것이 다가오기 시작하고 하느님 은총의 빗물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마음 그릇 밖으로 넘칠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이 은총의 빗물이 채워질 때 우리는 그것을 기적이라고 부릅니다. 이 기적의 영성을 현실로 보여준 사람이 바로 성 프란치스코이고 우리를 다시 800년이 지난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글 _ 이관술 요한 마리아 비안네(성지순례 가이드)
교황청립 살레시오 대학교 신학부를 졸업하고 교황청립 라테라노 대학교에서 성지순례학 석사과정을 수료한 성지순례 가이드로, 현재 로마에서 순례자들에게 성지의 역사와 신앙을 깊이 있게 전하는 가이드 활동을 하고 있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5-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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