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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차 세계 평화의 날] 교황 “완전한 무장해제 가능하게 하는 힘은 ‘폭력을 거부하는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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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 14세 교황은 1월 1일 제59차 세계 평화의 날을 맞아 ‘평화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 무기를 내려놓으며 무기를 내려놓게 하는 평화를 향하여’ 제목의 담화를 발표했다. 교황은 2025년 5월 8일 교황으로 선출되던 날과 그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세계에 평화를 호소하며 ‘무기를 내려놓으며 무기를 내려놓게 하는’이라는 특징적인 표현을 사용했다. 
교황은 올해 담화에서 무기를 내려놓은 평화, 곧 두려움과 위협에 바탕하지 않는 평화를 제안하는 동시에 무기를 내려놓게 하는 평화, 곧 갈등을 해결하고, 마음을 열며, 상호 신뢰와 공감, 희망을 낳는 평화를 제안했다. 아울러 평화를 촉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눈에 보이는 폭력이든 구조적 폭력이든 모든 형태의 폭력을 거부하는 삶의 방식으로 평화를 구현해야 한다고 청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평화

 

 

교황은 담화 서두에서 “양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으며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들도 품어 안으시는 착한 목자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평화”라며 “그분께서는 죽음을 이기시고 인류를 갈라놓는 분열의 장벽들을 허무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둠과 빛을 대비시키며 “그리스도의 현존, 그분의 선물과 그분의 승리는 인내로운 수많은 증인을 통해 계속 빛나고 있고, 하느님의 일이 이 세상에서 계속되면서 우리 시대의 어둠 속에서도 더욱 선명히 빛나게 된다”고 밝혔다. 

 

 

담화에서 평화를 빛에, 폭력을 어둠에 빗댄 교황은 “평화는 폭력에 저항하고 폭력을 이긴다”며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제3차 세계대전’이라고 부르신 것들 한가운데에서도, 평화를 이루는 이들은 이러한 확신에 힘입어 계속해서 어둠의 확산에 저항하고 밤의 파수꾼처럼 서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교황은 “오늘날 많은 이들이 희망이 없고 다른 이들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며 하느님의 은총을 잊어버리는 담론들을 ‘현실적’이라고 한다”면서 빛을 잃어버리기 쉬운 인간의 속성을 경고했다. 

 

 

교황은 평화의 빛나는 온기를 주변에 전파할 사명을 강조하기 위해 “다른 이들을 평화로 인도하고 싶다면 여러분부터 평화를 지니십시오. 평화 안에서 굳건해지십시오. 다른 이들에게 불꽃을 전하고 싶다면 여러분 안에 타오르는 불꽃을 지녀야만 합니다”라는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말을 인용했다.

 

 

교황은 평화는 하나의 목표이기 이전에 실재이고 여정이며, 우리의 선택을 이끌고 밝히는 원칙이라고 설명한 뒤 “부활하신 날 저녁에 예수님께서 당신 제자들이 두려움과 낙담 속에 모여 있는 곳에 오신 것처럼 우리는 선을 기억하고 선이 승리한다는 것을 인식하며 선을 다시 선택할 수 있고, 이 모든 것을 함께 이룰 수 있다”고 당부했다.

 

 

무기를 내려놓은 평화

 

 

교황은 예수님이 주시는 평화가 세상이 주는 평화와 다른 이유는 무기를 내려놓은 ‘비폭력적’ 평화라는 점을 부각시키면서, “예수님께서는 무력으로 당신을 보호하려는 이들에게 ‘그 칼을 칼집에 꽂아라’(마태 26,52)라고 단호히 되풀이하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 또한 비극적인 상황에 너무나 자주 연루된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함께 이 새로움의 예언자적 증인이 돼야 한다”고 요청했다.

 

 

교황은 평화를 먼 이상으로만 여겨 평화가 부정되거나 심지어 평화라는 이름으로 전쟁이 일어나도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는 현실을 언급하면서 “올바른 생각들, 사려 깊은 말들, 그리고 평화가 가까이 왔다고 말할 역량이 우리에게는 부족한 듯하다”고 안타까워했다. 

 

 

교황은 군사력과 핵무장으로써 평화를 얻으려는 사고와 관련해 “군사력의 억제력, 특히 핵 억제력이라는 발상은 법과 정의와 신뢰가 아니라 공포와 무력 지배 위에 세워진 국가 간 관계의 비합리성에 바탕을 둔 것”이라며 “성 요한 23세 교황님께서 이미 그 시대에 말씀하신 대로 사람들은 언제든 폭풍전야처럼 끔찍한 폭력이 덮쳐 올까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또한 2024년 전 세계 군비 지출이 전년 대비 9.4 증가해 총 2조7180억 달러에 이르렀다는 수치를 제시한 뒤 “우리는 20세기에 힘들게 얻은 교훈을 지키고 수많은 희생자를 잊지 않는 기억의 문화를 증진하기보다 학교와 대학교, 언론매체에서 위기의식을 퍼뜨리고 무장 방어와 안보의 개념만 부추기는 조직적인 선동과 교육 프로그램을 방관하고 있다”고 한탄했다.

 

 

교황은 오늘날 급격한 기술 발전과 인공지능의 군사적 활용이 무력 분쟁의 비극을 더욱 악화시켜 왔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촉구하면서, “삶과 죽음에 관한 결정이 점점 더 기계에 ‘위임’되고 있기 때문에 정치·군사 지도자들 사이에서도 책임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모든 문명의 근간을 이루는 인본주의의 법적, 철학적 원칙들을 유례없이 파괴적으로 저버리고 있다는 뜻이다. 교황은 이런 이유에서 “무기를 내려놓게 하는 평화, 곧 열린 마음과 복음적 겸손에서 비롯되는 평화를 위해 힘을 합쳐야 한다”고 재차 호소했다.


 

 

무기를 내려놓게 하는 평화

 

 

교황은 ‘완전한 무장해제’를 최초로 소리 높여 외친 교황으로 성 요한 23세 교황을 다시금 언급하며, 회칙 「지상의 평화」 113항 “전쟁 목적을 위한 군비 경쟁의 중지와 그 실제적 축소를 실현해야 하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무장해제가 완전하게 이뤄지는 일입니다. 인간들의 마음에서 무기를 제거하고 전쟁에 대한 심리적 압박감을 제거하지 않고서는 무장해제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를 인용했다.

 

 

이어 “고통받는 인류를 위해 종교가 해야 하는 본질적인 역할은 생각과 말까지도 무기로 삼고자 하는 유혹이 날로 자라나지 않게 막아내는 일”이라며 “올바른 이성과 위대한 영적 전통들은 우리에게 혈연이나 민족을 넘어설 것을, 그리고 자신과 비슷한 사람만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은 거부하는 집단을 넘어설 것을 가르쳐 준다”고 말했다. 

 

 

교황은 국제 정치적 차원에서 상호 신뢰, 조약의 성실성, 체결된 조약 의무 이행에 대한 충실성 등이 외교와 중재, 국제법이 맡은 무장해제의 길이라고 말하면서도 “슬프게도, 초국가적 기관의 정당성을 박탈하는 것이 아니라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는 이 시기에, 어렵게 맺은 조약들을 위반하는 일이 늘어나 무장해제를 위한 이 길이 너무도 자주 훼손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불안과 분쟁의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삶을 이어가고 악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을 던진 교황은 “어떤 가치들을 보호한다는 미명 아래 절망의 씨를 뿌리고 끊임없는 불신을 조장하는 전략에 대항해 시민사회 안에서 자기 인식, 책임 있는 연대의 형태들, 비폭력적인 참여의 경험, 크고 작은 수준에서 회복적 정의의 실천을 북돋워야 한다”고 당부했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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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5-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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