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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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는 행복한 중독”… 6000명의 아이 품은 배우

[삶의 자리에서] 배우 김나운 베로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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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명의 배우가 촬영을 하다 말고 빵집에 모여 빵을 먹고 있다. 과연 빵값은 누가 낼까?” 정답은 “지나가던 김나운.”

배우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이 농담에는 김나운(베로니카, 56) 배우의 퍼주는 인심이 그대로 담겨 있다. 늘 ‘베풀고 나누는 사람’이라는 것. 촬영장에서도 빈손인 김나운을 찾기란 쉽지 않다. 과일이든 간식이든, 누군가를 챙기기 위해 늘 바리바리 싸들고 다닌다. 믿기 어렵지만, 그의 집에 냉장고가 10대인 시절도 있었다. 좋은 연기를 보여준 후배에게는 얼굴을 본 적이 없어도 주소를 수소문해 제철 음식을 보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연기 너무 잘 봤습니다. 저는 배우 김나운입니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혹시 몰라 자신의 사진도 전송한다.

“스팸인 줄 알고 차단당한 적도 있어요.(웃음) 누군지 모를까 봐 사진까지 보냈죠. 100 스팸 문자라고 생각했다더라고요. 그렇게 친해진 배우들이 많아요.”

‘국민배우’, ‘왕이모’, ‘집밥의 고수’, ‘홈쇼핑의 여왕’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지만 그의 삶의 온도를 가장 기쁘게 끌어올리는 활동은 ‘나눔과 기부’다. CJ도너스캠프 아카데미의 멘토로 참여하며 자립을 준비하는 청년들을 응원하고, 청년들의 주거비·의료비·생활비·교육비 등 생활 안정을 위한 지원도 아끼지 않는다. 지금까지 그가 도움을 준 아이들은 600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CJ나눔재단에서 기부 금액 2억 5000만 원을 넘긴 최장기·최고액 기부자이기도 하다. 18년 동안 소외된 아이들을 꾸준히 도와온 그를 서울 중구 동호로 제일제당센터에서 만났다.

그에게 몇 명의 아동을 돕고 있는지 묻자, 미소를 머금었다. “정원에 들꽃이 만발했어요. 그 앞에 앉아 꽃송이를 하나하나 세는 사람이 있을까요? 아이들은 꽃과 같아요. 햇볕이 잘 들었으면 좋겠고, 물도 듬뿍 주고 싶죠. 저는 항상 그런 마음이에요.”

그는 16세에 데뷔해 소녀 가장으로 세 동생을 돌보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힘겨운 시절을 겪었던 만큼 어려운 상황에 놓인 아이들이 남 같지 않다. CJ도너스캠프와 CJ홈쇼핑이 공동 기획한 소외아동 돕기 모금 방송 ‘사랑을 주문하세요’ 패널로 출연하면서 알게 된 아이의 텅 빈 냉장고가 마음에 걸려 반찬을 가득 만들어 찾아간 적도 있다. 그가 식품 사업에 뛰어든 것도 아이들에게 따뜻한 한 끼를 먹이고 싶다는 마음에서였다.

“제가 밤새 반찬을 만들어도 세 집밖에 못 채워줬다면 이제는 식품 사업을 통해 100명의 아이들 집 냉장고도 채워줄 수 있는 거죠.”

그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와 함께 찾아갔던 한 친구의 집을 잊지 못한다.

“그때는 모두가 가난하던 시절이었어요. 저희 집도 넉넉지 않았고요. 그런데 저보다 더 가난한 친구와 짝이 된 거죠. 좀 지저분한 친구였어요. 그래서 아버지께 그 친구와 짝을 안 하겠다고 투정을 부렸어요. 그러자 아버지가 공책 세 권과 연필 세 자루를 사들고는 어딜 같이 가보자고 하시는 거예요.”

도착한 곳은 짝꿍 친구의 집이었다. 판잣집에 연탄불을 때는 허름한 방에서 친구는 어린 동생을 업은 채 라면을 끓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어린 나운이는 이유도 모른 채 눈물이 뚝뚝 흘렀다.

“너 지금 왜 눈물이 나는지 알아? 마음이 아픈 거다. 저 친구가 조금 지저분해도 그건 절대 흉이 아니야. 가난은 조금 불편한 거지, 흉이 아니란다. 그런 걸로 사람을 갈라서는 안 된다.”

아버지의 이 말은 마음 깊숙이 각인됐고 평생의 유산이 됐다. 짝꿍 친구는 이후 오히려 ‘수호천사’가 되어 늘 곁을 지켜주었다.

김나운씨는 CJ나눔재단뿐 아니라 두 곳의 고액 기부자 모임에서도 나눔을 이어가고 있다. 2020년 사랑의 열매 사회복지 공동모금회의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해 2억 5000만 원 이상을 기부했고, 2021년에는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그린노블클럽’ 회원이 됐다. 2022년에는 ‘제2회 대한민국 착한 기부자상’을 받았다. 그는 나눔의 DNA를 아들에게도 물려주고 싶어, 아들과 함께 저축과 기부를 생활습관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불교 신자였던 김씨는 2012년 세례를 받았다. 대모였던 고 김지영(마리아 막달레나) 선배 배우의 오랜 기도 결실이었다. 2009년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의 삶도 그가 신앙을 선택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김지영 원로 배우는 25년 전 처음 나운씨를 서울 여의도동성당에 데려갔고, 하루도 빠짐없이 그를 위해 기도했다. 김씨가 세례를 받던 날에는 직접 대모가 돼줬고, 세상을 떠나며 생전에 끼던 묵주반지와 묵주를 그에게 남기며 깊은 정을 나누었다.

그는 배우라는 직업이 나눔과 기부와 맞닿을 때 “배우여서 참 좋다”고 했다.

“오늘처럼 인터뷰하고 나서 누군가가 제 이야기에 공감해 기부에 동참해준다면, 그 순간 저는 배우라는 일을 하길 정말 잘했다고 느껴요.”

선후배들 사이에선 ‘봉사활동 내비게이션’으로도 통한다. 봉사나 기부를 하고 싶어하는 동료들에게 대상과 지역, 일정 등을 국내외를 넘나들며 소개해준다. 최근에는 아프리카 우물 사업에도 힘을 보태고 있다. 언젠가 아프리카에 100개의 우물을 파주고 싶다는 꿈도 갖고 있다.

그에게 기부는 ‘나 좋자고 하는 일’이다.

“세상에서 제일 쉽게 행복을 가장 크게 얻을 수 있는 일이에요. 이 세상에 태어나 할 수 있는 가장 보람있는 일이고, 내가 사는 이유를 느끼게 해줍니다. 기부하고 나서 아이들 소식을 들을 때, 우물이 생긴 아프리카 주민들이 깨끗한 물을 마시며 기뻐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면 정말 눈물이 나요. 그 귀함, 보람, 행복, 그거는 정말 대단합니다. 그래서 기부를 안 해본 분들에게 항상 말해요. ‘어쩌려고 저렇게 안 하지? 한번 해보면 정말···!’ 뒷말은 차마 못 하겠어요.(웃음)”

그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 달에 1만 원만 기부해보라”고 권한다. “그 보람은 말로 표현이 안 돼요. 첫눈 내리는 날의 설렘이나 첫사랑과는 비교가 안 됩니다. 물론 첫사랑과 결혼은 했습니다. 하하.”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도 이십 대 때부터 봉사와 기부활동을 이어왔고, 덕분에 지금은 그 병원에서 평생 무료 주차 혜택을 받고 있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당시에는 아들과 함께 교황을 만나는 잊지 못할 경험도 했다. 당시 세 살이던 아들이 명동대성당에서 열린 미사 일정 중 비를 맞고 있던 경호원에게 우산을 빌려주자, 경호원이 아들을 번쩍 안아 교황에게 축복받을 기회를 만들어줬다. 교황이 아들을 축복하던 순간은 사진으로 남았고, 이후 달력 이미지로도 활용됐다.

그는 성경에서 가난한 과부의 헌금에 관한 일화(루카 21,1-4)를 가장 좋아한다. “가난한 과부가 은화 몇 닢을 내놨지만 그것이 과부의 전 재산이었죠. 예수님은 그걸 굉장히 칭찬하셨어요. 얼마가 되었든 나누는 그 손 자체가 귀한 거예요.”

암환자 쉼터인 마뗄암재단 이사로도 활동 중인 그는 매달 마지막 주일마다 가톨릭 배우 모임 ‘광대승천 제네시오’ 후배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한다. 그는 힘든 시기를 보내는 아이들에게 “배우나 연예인이 아닌 가장 편안한 ‘이모’, 그냥 공기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에게 꿈을 묻자, 함박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기부 액수로 한 번 최고를 찍어보고 싶어요. 아시아 1위, 뭐 이런 거요. 정말 큰 좋은 일이 생겼을 때 그걸 전부 다 기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요. 로또를 사야 할까요?”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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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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