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뭐든 원인에 따라 결과가 그대로 나온다는 의미일 겁니다.
이런 관점에서 그리스도인의 ‘자녀 성교육’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자녀에게 가장 효과적이고 이상적인 성교육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상대방을 소중하게 대하라는 가르침일까요? 연애는 하되 결혼 전까지 임신은 안 된다는 경고일까요? 물론 이런 말들도 어른인 부모가 자녀에게 충분히 할 수 있는 걱정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부모가 자녀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성교육은 다름 아닌 ‘부모가 혼인하고 자녀를 출산하고 사는 모습, 그 모든 것’입니다.
나와 배우자가 신앙 안에서 대화하며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과 오고 가는 시선들, 서로가 서로를 대하는 태도와 그 행간의 온도 등 그 모습 전체가 바로 우리 자녀들에게 가장 좋은 성교육인 것입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책임과 존중, 사랑을 배웁니다. 이것이 교회와 사회 성교육의 근본적 차이이자 다른 지향점, 다른 목표입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성교육은 대부분 기능적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즉 ‘임신 및 출산을 막는 것’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지요. 그러나 그런 교육은 많은 정보가 넘쳐나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아이들은 하느님이 가르쳐주신 생명의 소중함이나 남녀의 성의 의미, 타인에 대한 존중, 배려심을 배우기도 전에 그릇된 부채감, 삐뚤어진 유희를 먼저 마주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설프게 ‘안되는 것’을 먼저 배운 아이들의 성 의식은 불안하고 위태롭게 커갑니다. 어쩌면 우리 사회에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는 성과 관련된 끔찍한 사건들은 이런 원인이 빚은 결과의 단면일지도 모릅니다.
사람은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의식적으로’ 행동하게 됩니다. 그러나 어느 한순간이 아닌 매일 일상을 ‘의식적으로’ 살아가기란 불가능합니다. 자녀가 나를 바라본다고, 부모의 모습이 성교육이라고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하느님은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참 좋았다’고 하셨습니다.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하시고 가르쳐주신 진리대로 살아가는 부모의 그 삶이 바로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성교육이니까요.
오석준 신부(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