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어느 지표로 보나 전 세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초저출생 국가다. 높은 양육비와 교육비, 장시간 노동·주거 불안정 등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기르기 어려운 경제적 상황과 경직된 성 역할, 일-가정 양립의 어려움 등 젠더 불평등이 그 요인으로 제시된다.
2024년 우리나라에서 합계 출산율이 눈에 띄게 높은 지자체는 화성시·아산시·영광군 등이다. 그 지역에 좋은 일자리가 많고 출산 및 양육 지원 정책이 견고하다는 점에서 저출생은 생물학적 이상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사회·경제·문화적인 문제로 유발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나 부동산 문제 해결이 난망하다 보니 저출생 해결법으로 의료가 동원된다.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울 때 미봉책으로 의료가 동원되는 예는 많다. 노인 돌봄 실패엔 안락사 법제화가, 태아와 영유아 돌봄 실패엔 낙태 합법화가 추진되는데 이 정책들은 삶 대신 죽음을 권리로 포장한다. 저출생에 대해서도 불임시술 지원이라는 기형적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부부 대상으로 인공 혹은 체외수정(이른바 시험관 아기)뿐 아니라 미혼 여성의 난자 냉동보관까지 지원한다. 당연하게도 이 정책으로 저출생 문제가 개선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러한 정책은 난임에 대한 사고방식에 부정적 영향을 주었다. 많은 이가 난임은 이유야 무엇이었건 늦게 아이를 가지려 한 개인의 건강 문제이고, 해결책은 시험관 아기뿐이며 누구나 쉽게 성공한다고 착각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불임시술 성공률이 고작 30 중반이며, 시술 자체가 여성의 정신과 신체에 매우 해롭다는 사실은 외면하게 되었다. 이렇게 난임에 대한 왜곡된 관념이 난무하는 시대에 여의도성모병원 나프로(NaPro) 임신센터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난임에 접근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자연적인(NAtural), 가임력(PROcreative),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인 나프로 임신법(NAPRO-technology)은 가임력을 정상화하여 건강한 자연임신을 돕는 방법이다. 성 바오로 6세 교황이 회칙 「인간생명」에서 인공적인 피임방법이 반생명적이라는 입장을 발표한 이후 1985년 미국에 설립된 교황 바오로 6세 연구소는 피임이 아닌 책임 있는 부모가 되는 방법으로 점액관찰법을 개발했다. 나프로 임신법의 토대다. 여기에 산부인과를 중심으로 비뇨의학과·전문간호사·심리상담사가 협업해 난임부부에게 근본적이고 전인적인 난임 치료를 제공한다.
초진 후 부부가 함께 나프로 임신법 교육을 받으면서 난임 원인을 찾는 검사를 받는다. 이후 진단에 따라 임신을 저해하는 원인들에 내·외과적인 맞춤 치료를 진행해 가임력 회복과 자연임신을 유도하는 것이다. 모든 검사와 치료는 여성의 몸에 해롭지 않은 방식으로 구성되며, 부부에 대한 전문적인 심리상담 등 정서적 지지가 이루어진다. 나프로 임신법이 여성의 건강을 회복시키는 기술이다 보니 반복 유산·자궁내막증·다낭성 난소증후군·생리 전 증후군 등 여성 질환 치료에도 활용할 수 있다.
2025년 나프로 임신센터는 서울성모병원을 포함한 가톨릭중앙의료원 산하 4개 병원으로 확산했다. 저출생 극복을 위해서는 아기를 낳아 기르기 좋은 세상이 되는 것이 최우선이지만, 그러한 세상을 기다리는 중에 당장 도움이 필요한 분들께 나프로 임신법이라는 기쁜 소식이 전해지길 기원한다.
임선희 마리아(가톨릭대 생명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