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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아기 예수님’ 순례지 체코 프라하 승리의 성모 성당

[중세 전문가의 감 김에 순례] 56. 프라하 승리의 성모와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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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 성모 성당(체코어: 코스텔 파니예 비테즈네)과 옛 맨발의 가르멜회 수도원. 말라 스트라나의 성 토마스본당 사목구에 속해 있지만, 운영과 사목은 맨발의 가르멜회가 맡고 있다. 2009년 9월 6일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승리의 성모 성당을 방문해 프라하의 아기 예수 성상 앞에서 전 세계 아이들을 위해 기도했다. 성당 남쪽에 붙어 있는 옛 수도원은 1784년 해산되어 현재는 교육·청소년·스포츠부 청사로 쓰고 있다.

연말연시 유럽의 도시 야경 가운데 프라하의 밤은 유난히 아름답기로 유명합니다. 카를교 위에서 바라보는 안개 낀 블타바강, 가로등이 길게 늘어선 돌길은 마치 별빛이 땅으로 내려온 듯합니다. 화려한 성탄 시장은 서서히 막을 내렸지만, 그 별빛은 동방 박사를 이끌었던 별처럼 우리를 한곳으로 이끕니다. 카프카가 그려낸 언덕 위 세속권력의 프라하성이 아니라, 더 낮은 자리에서 우리를 맞이하는, 작지만 참된 왕이 계신 곳입니다.

프라하 중심부의 순례지, 작은 성당과 대사관·카페가 모여 있는 프라하성 아래 구시가지인 말라 스트라나 지구에 자리한 승리의 성모 성당으로 ‘프라하 아기 예수님’으로 유명한 순례지이지요. 맨발의 가르멜회 수도자와 아기 예수의 가르멜회 수녀들이 함께 매년 수십만 명의 순례자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프라하의 아기 예수 측면 제대(1766)와 아기 예수상. 1556년 스페인 공작 가문이 보헤미아 귀족 집안과 결혼하면서 가져온 것으로, 1628년 폴릭세나 폰 로브코비츠가 가르멜회에 기증했다. 밀랍이 씌워진 48㎝ 크기의 조각상으로 왼손에는 십자가가 달린 보주를 들고 있으며 오른손은 축복을 내리는 모습이다. 전례력에 따라 흰색(성탄·부활), 빨간색(성령 강림·성 십자가), 자주색(대림·사순), 초록색(연중) 대관식용 외투로 갈아입힌다.

보헤미아 가톨릭 개혁의 상징

카를교를 건너 성과 반대 방향으로 트램 선로를 따라 잠시 걸으면 오른쪽으로 계단 위의 바로크 양식 성당이 나타납니다. 정면 중앙 벽감의 아기 예수님을 안고 있는 성모상이 이곳이 우리 목적지임을 알려줍니다. 원래 이곳은 신교 교회였습니다. 1611~1613년 독일어를 쓰는 루터교 신자들이 기존에 이용하던 작은 예배당을 허물고 로마식 바실리카 구조를 본떠 새로 지은 교회였지요.

1618년, 그 유명한 ‘프라하 창문 투척 사건’이 터집니다. 신교(프로테스탄트)인 보헤미아 귀족들이 가톨릭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탄압에 항의하며 총독과 서기를 프라하 왕궁 밖으로 내던져 버린 사건인데, 이 사건은 가톨릭과 신교의 국제적 충돌인 비극의 30년 전쟁으로 번집니다.

1620년 백산 전투에서 황제군이 승리하면서 프라하는 다시 가톨릭 도시가 됩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페르디난트 2세는 교회를 몰수하여 ‘기도와 관상’ ‘청빈’으로 가톨릭 내적 쇄신의 상징이었던 맨발의 가르멜회에 사목을 맡깁니다. 가르멜회를 통해 보헤미아 중심에 가톨릭 영성을 뿌리내리고자 한 것이죠. 1624년 백산의 승리를 감사하며 ‘승리의 성모와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성당’을 봉헌합니다.
승리의 성모 성당 정면. 1634년부터 발타사르 데 마라다스의 후원으로 새롭게 단장해 1664년 현재의 정면이 완성되었다. 이때 남쪽으로 수도원 건물과 연결되었고, 1669년에 오른쪽에 종탑 하나가 세워져 지금 모습을 갖췄다.
승리의 성모 성당 본랑. 맨발의 가르멜회는 17~18세기에 당시 최고의 조각가와 화가들을 초청해 여러 측면 제대를 제작했다. 주 제대는 백산 전투의 승리와 성모의 전구를 기념하는 성화로 장식되었고, 왼편 측면 제대들은 데레사·십자가의 성 요한 등 가르멜 성인으로 영성을 드러낸다. 오른편에는 ‘프라하 아기 예수’ 제대가 순례의 중심을 이룬다.

가르멜회의 영성이 어린 공간

성당은 단일 신랑의 로마식 바실리카 구조입니다. 주 제대에는 삼위일체 하느님께 승리를 전구하는 성모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림 속 전경에는 페르디난트 2세 황제와 아들 페르디난트 3세가 무릎을 꿇고 있고, 맞은편에는 가르멜회 도미니코 수사가 또 다른 ‘승리의 성모’ 성화를 들고 서 있지요. 배경으로는 프라하 성벽 바깥에서 벌어지는 전투 장면이 펼쳐져 있습니다.

고개를 들어보면 천장에는 최후의 만찬·십자가형·광야의 구리 뱀·마지막 심판 등 구원사를 그린 프레스코가 이어집니다. 이곳이 단순한 성화 감상 공간이 아니라 신자들에게 성체와 구원의 교리를 가르치기 위한 반종교개혁의 강단이었음이 드러납니다. 성당 좌우로는 측면 제대들이 나란히 있는데, 왼편에는 맨발의 가르멜회를 주제로 공동 창립자인 십자가의 성 요한, 스카풀라 전통과 관련된 성 시몬 스톡, 아빌라의 성 데레사 제대가 자리 잡고 있어, 이곳이 아기 예수님 신심뿐 아니라 가르멜 가족의 집임을 조용히 알립니다.
안토닌 스테벤스가 그린 주 제대의 제대화(1641)와 프라하의 아기 예수 박물관에 전시된 한복(2011). 박물관에는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봉헌한 관을 비롯해 마리아 테레지아 황후가 봉헌한 예복, 한국·필리핀·이탈리아·폴란드 등에서 봉헌한 전통 예복 등 총 100벌의 예복과 전 세계 크리스마스 구유 세트가 전시되어 있다.

프라하의 아기 예수로 보여 주신 사랑

오른편 중앙의 금빛 측면 제대에 프라하의 아기 예수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세 살 아이의 모습으로 우리가 평소 보는 그리스도왕 성상 형상입니다. 1628년부터 수련자 소성당에서 모시고 있다가 1631년 11월 신교 군대가 프라하를 점령해 수도원을 약탈하고 파괴하는 와중에 아기 예수상도 팔이 부러져 사라졌지요.

1637년 수도자들이 프라하로 돌아왔을 때, 룩셈부르크 출신 가경자 치릴로 신부는 수련자 시절 아기 예수상을 기억합니다. 잔해 속에서 팔이 부러진 채 먼지에 덮인 상을 발견하고는 은인의 도움으로 성상을 수리해 다시 모셨습니다. 치릴로 신부는 기도 중 “나를 경배하는 만큼 내가 너희를 축복하겠다”는 아기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합니다. 1641년 은인의 도움으로 아기 예수상을 수리해 성 십자가 소성당으로 옮기면서 일반 신자들의 순례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이후 아기 예수상 앞에서 치유와 보호의 은총을 체험했다는 증언이 퍼집니다.

1651년부터는 아기 예수상을 모시고 프라하 여러 성당을 도는 거동 행렬이 시작되었고, 1655년에는 프라하 주교의 공식 대관이 이뤄집니다. 1741년에 현재의 자리로 옮겨 지금까지 예수 신심의 중심지가 되고 있습니다.

가르멜회 영성이 어린 작은 공간에서 아기 예수의 얼굴을 바라봅니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 하느님과의 우정을 회복하는 집을 다시 세우려 했고, 리지외의 데레사는 그 집 안에서 “매우 작은 사랑의 행위들”로 하느님께 나아가는 작은 길을 발견했습니다. 아기 예수님은 바로 그 작은 길을 눈앞에 보여 주는 표징이 아닐까요.

2009년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이곳에서 박해받는 어린이를 위해 기도하시면서 아기 예수님의 모습이 하느님의 가까우심과 사랑을 일깨운다며, 모든 인간이 재산이나 출신, 문화의 차이를 넘어 하느님 자녀로서 서로 존중하기를 호소하셨습니다. 아기 예수님의 성상처럼 모든 이의 얼굴 안에 하느님 모습이 빛나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하느님이 우리 품에 안길 아이로 자신을 낮추신 신비 앞에서, 새해에는 지금 내 자리에서 시작할 수 있는 작은 사랑 하나를 실천해보려 합니다.
 
<순례 팁>

※ 프라하 공항에서 성당까지 10㎞, 프라하 중앙역에서 4.6㎞. 트램(12, 15, 20 등) 이용.(Kostel Panny Marie Vít?zné, Karmelitská, Malá Strana, CZ-Praha 1)

※ 미사 전례 : 주일 및 대축일 10:00(순례 미사)·12:00·18:00·19:00, 평일 09:00(월~금)·18:00(목·토). 주 제대 옆 프라하 아기 예수 박물관이 있다. 5월 첫째 주일 아기 예수 성상 대관식.

※ 혼자 가시기 힘든 분을 위해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이 마련한 2026 유럽 수도원 성지 순례. 문의 및 신청 : 분도출판사, 010-5577-3605(문자)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5-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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