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부터 9월까지 서울 대림동, 자양동, 명동 등 중국계 체류자 밀집 거주지역과 관광지에서는 이들을 겨냥한 혐오 시위가 잇따랐다. 도시 곳곳에는 ‘중국 유학생은 100 잠재적 간첩’과 같은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내걸렸다. 이처럼 ‘혐중’ 정서가 사회 속으로 확산하고 있지만, 중국계 체류자들은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중에는 소수이지만, 신앙생활을 함께하는 공동체도 있다. 이들이 ‘희망’의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지 살펴본다.
12월 17일 찾은 대림동은 다시 일상을 찾은 모습이었다. 대림동에서 만난 중국계 상인 오은정(가명) 씨는 “이곳은 공짜를 바라지도 않고, 성실히 일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인데 왜 여기 와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이날 만난 주민들은 모두 시위대의 팻말에 담긴 주장과는 관계없이 그저 하루하루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전했다.
혐중 시위는 대중을 향해 외치는 일반적인 시위와 달리, 대상 집단을 겨냥한다는 점이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차별하지 않는다는 착각」의 저자 홍성수 교수(토마스 아퀴나스·숙명여자대학교 법학부)는 “중국인 밀집 거주지나 주요 관광지에서 시위를 여는 것은 이들을 직접 공격하겠다는 의미”라며 “이미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을 겨냥한다는 점에서 특히나 고약하다”고 비판했다.
홍 교수의 말처럼 중국계 체류자는 한국 사회의 주요 구성원이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의 2025년 11월 통계월보에 따르면 중국계 체류자 수는 약 96만 명으로 전체 체류 외국인의 35.4를 차지하고, 장기 체류자는 약 87만 명에 달한다. 이들 중에는 200여 명의 가톨릭신자도 포함돼 있다. 이 가운데 20여 명은 매주 미사를 참례하며, 신앙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바로 동리춘 신부(베드로·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가 지도하는 ‘중국어 미사 공동체(Chinese Mass Community)’이다.
장벽을 넘어, ‘믿음의 집’으로
‘중국어 미사 공동체’는 혐오 정서뿐 아니라 언어, 중국 내 소수 종교라는 장벽을 넘어 낯선 땅에서 신앙과 일상을 이어갈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공동체를 찾은 2025년 12월 21일. 공동체 20여 명은 서울대교구 광희문성지 ‘광희문 순교자 현양관’에서 주일미사를 봉헌하고, 주님 성탄 대축일 맞이 선물 교환식을 열었다. 성탄의 기쁨을 나누기 위해 직접 준비한 선물을 교환하면서 그동안 어떤 일상에서 어떤 고충이 있었는지 서로 나눴다.
현재 공동체는 매주 주일 이곳에서 동리춘 신부 주례로 중국어 미사를 봉헌하고 있으며, 매월 셋째 주 일요일에는 미사 후 축일 축하식을 열고, 사순·대림 시기 피정과 연 2회 성지순례를 마련하고 있다. 한국인 봉사자와 신부도 공동체와 동행하고 있다.
단펑핑(마리아·서울대교구 대림동본당) 씨는 중국 내 교우촌에서 태어나 한 달 만에 세례를 받을 정도로 독실한 신자다. 그러나 2010년 가족들과 함께 한국에 온 뒤로는 언어 문제로 성당에 가기 힘든 적도 있었다. 단 씨는 “중국어 미사가 생긴 뒤로는 강론도 더 잘 이해되고, 한국 신부님들과 중국어 잘하는 한국 교우들 덕분에 신앙생활이 편해졌다”고 털어놓았다.
2023년 한국으로 유학 온 왕신우(요한 사도·서울대교구 왕십리본당) 씨는 전통적인 가톨릭 가정에서 자랐다. 한국 생활에서 불안감을 느꼈던 때도 기도할 수 있는 성당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 정도로 신앙은 그에게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존재다. 이런 왕 씨에게 공동체는 “비록 규모는 작지만 유학과 직장 생활, 일상에서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곳”이자 “외국에 살고 있지만 교회가 가족처럼 품어 준다는 느낌을 받게 해주는 ‘믿음의 집’”이다.
이처럼 공동체는 구성원들에게 낯선 환경에서도 신앙의 보편성을 체험할 수 있는 정서적 안식처로 역할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아직 남아있는 어려움이 존재한다. 미사를 집전할 수 있는 고정적인 장소가 없다는 점과 중국계라는 정체성이다.
‘희망’의 새해를 위해
공동체는 현재 미사 장소를 찾기 전까지 서울 보문동 노동사목회관, 서울대교구 주교좌명동대성당 꼬스트홀 등을 옮겨 다녀야 했다. 현재 머무는 광희문성지 역시 언제까지 사용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동 신부는 “성지 경당은 규모가 작고 공동체의 장기적인 발전에 어려움이 있어 더 나은 공간을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대교구 혜화동본당이 1996년부터 이어오고 있는 필리핀어 미사는 하나의 참고 사례로 거론된다. 서울대교구 이주사목위원회에서 중국인 상담을 담당하는 김수정(루치아) 간사는 “필리핀 공동체의 사례처럼 본당에서 미사가 없는 시간대를 중국인 공동체를 위해 내어주길 바란다”며 “본당들이 이주민을 향해 열린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고 전했다.
정체성의 문제도 여전히 남아 있다. 한국어에 능숙한 서명석(베드로·서울대교구 대림동본당) 씨는 본당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어도 중국인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선뜻 다가가기 어려울 때가 있다. 왕 씨 또한 한국 신자도 아니고, 완전히 고향 본당 신자도 아닌 중간에 서 있는 듯한 정체성의 흔들림을 경험했다.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 「최종 문서」 112항은 이주민들과의 영적·문화적 차이를 존중하는 접근법으로 다문화 공동체를 건설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홍성수 교수도 “중국어 미사 공동체는 이주민을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긍정적 사례”라며 “혐오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이들이 함께 살아가는 이웃임을 반복해서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혐중 시위가 삶의 터전을 위협했지만, 취재 과정에서 만난 이들은 하나같이 “그런 행동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며 “일상에서 만난 한국인들은 모두 친절하고 따뜻했다”고 전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이웃으로 우리에게 찾아온 이들에게 내미는 ‘희망’의 손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