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31일
기획특집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함께 살기, 다시 쓰는 가족] 기도하는 마음으로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하느님께서는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강복하소서. 당신 얼굴을 저희에게 비추소서.”(시편 67,2)


소피아와 베드로는 부부입니다. 결혼 3년 만에 딸을 얻었습니다. 소피아는 어려서부터 남동생들 뒷바라지에 지쳐 오직 딸, 딸, 딸을 원했고 아들을 거부했습니다. 그토록 원했던 딸이었기에, 마리아라 부르며 귀하게 키우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가난한 살림살이에 딸 하나면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피임 시술을 차일피일 미루던 중 원치 않은 아이가 생겼습니다. 맞벌이해도 빠듯한 형편인데 가족이 늘어난다니! 소피아를 더욱 혼란스럽게 했던 것은 바로 태몽이었습니다.


임신 사실을 몰랐던 임신 초기, 주말 한낮에 소피아와 마리아는 잠깐 낮잠에 빠져들었습니다. 꿈에서 소피아는 마리아를 안고 아파트 베란다에서 바깥을 내다보았습니다. 


그때 갑자기 하늘에서 크고 아름다운 봉황 한 마리가 날아와 소피아와 마리아의 품으로 파고들었습니다. 가까이서 보니 봉황은 눈동자의 검은자위가 없었습니다. 잿빛 눈동자를 가진 봉황을 안고서 “눈!”이라 소리치면서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소피아는 곧 이 꿈이 태몽임을 직감했습니다. 혹시라도 잿빛 눈동자를 가진 아이를 낳을까 두려웠습니다. 베드로 몰래 임신 중지를 결심했습니다.


병원에 가기로 한 날. 채비를 마치고 집을 나서려는데, 분명 일터에 있어야 할 시간임에도 갑자기 베드로가 소피아 앞에 나타났습니다.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다는 듯, 소피아에게 큰절을 올리고 평생을 성실하게 살아갈 것을 약속했습니다. 그리하여 소피아는 임신 중지 결심을 접은 것이었지요.


저, 클라라는 그렇게 태어났습니다. 저는 기억을 못 하지만, 소피아와 베드로의 말대로라면 갓난아기였을 적에 저는 그들의 첫 아이 마리아와는 많이 달랐다고 합니다. 지금의 제 모습으로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아이, 눈을 맞추지 못하는 아이였다고 합니다. 눈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자라는 동안 신체적 결함이 포착되곤 했습니다.


하느님, 왜 저를 이렇게 만드셨나요? 청소년기 내내 이 질문에 사로잡혀 지냈습니다. 교복을 입고 흰 양말에 검정 구두를 신던 시절, 아침이면 반짝반짝 광택이 나던 검정 구두를 기억합니다. 한 번도 제 구두를 제 손으로 닦아본 적이 없었으므로 구두라는 것이 원래 하룻밤이 지나면 자동으로 자체 발광하는 물건인 줄 알았습니다. 어른이 되고 나서 구두가 닳고 색이 바랜다는 사실을 알았고 베드로가 매일매일 제 구두를 닦았다는 것을 깨닫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아빠 베드로는 중학생 때 어머니 마리아를 여의었습니다. 어머니를 너무나 일찍 데려가신 하느님을 한동안 원망했다고 합니다. 어머니 없이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몰랐으니까요. 그러나 곧 살아생전 어머니께서 기도하시던 모습이 떠올랐고 그 모습 그대로 하루하루 기도하는 마음으로 정성껏 살아내기로 결심했답니다. 그런 베드로를 제 아빠로 둔 덕분에 저는 기도가 무엇인지 자연스레 체득한 것 같습니다.


기도란 한 뼘 거리를 두는 사랑입니다. 너무 뜨겁지도 않고 너무 차갑지도 않으면서 한결같이 저를 비추는, 어느 맑은 날 밤의 달빛처럼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제 발 아래를 밝혀주는, 그리하여 제가 넘어지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그 무엇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구두를 닦는 마음으로, 매일매일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겠습니다.



글 _ 김정은 클라라(가족인문학연구소 공동운영자)
유형선(아우구스티노)·김정은 부부는 ‘인문학’을 통해 가족의 위기를 통과해 왔다. 온 가족이 함께 쓰고 읽어 온 경험을 바탕으로 「가족에게 권하는 인문학」, 「오늘, 가족 독서를 시작합니다」 등을 펴냈으며, 가족인문학연구소를 운영 중이다. ‘함께 살기, 다시 쓰는 가족’은 부부가 번갈아가며 1회씩 연재한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5-12-30

관련뉴스

말씀사탕2025. 12. 31

토빗 5장 14절
잘 오셨소. 형제여, 하느님의 구원을 받기 바라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