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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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그리스도교 영성] 문학과 그리스도교 영성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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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주의의 영어 단어인 ‘mysticism’에 대한 성 존 헨리 뉴먼 추기경의 유명한 유머가 있다. 이 단어는 안개를 의미하는 ‘mist’와 분열을 뜻하는 ‘schism’으로 이루어졌는데, 신비주의란 안개 속에서 시작해 분열로 끝난다는 것이다. 


농담처럼 들리지만, 명확하지 않은 개인의 영적 체험이 교회의 가르침에서 벗어나 고립될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다. 신학이 시대와 장소를 넘어서는 보편적 가르침이라면, 영성은 각 개인의 실질적 경험에 대한 성찰이다. 그런 의미에서 신학자들은 영성에 대해 염려스러운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신학과 영성은 각자의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매우 밀접한 관계를 형성한다. 신학이 하느님에 대한 체계적이고 보편적인 이해와 그리스도교 진리를 다룬다면, 영성은 그러한 이해와 진리를 각 개인이 일상에서 실천하고 살아가는 영역이다. 영성은 신학의 가르침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공간이다. 


또한 신학은 역사를 단일하며 보편적인 현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지만, 영성은 구체적 역사 안에서 드러나는 하느님 현존에 대한 개인의 살아 있는 경험이다. 영성은 신학의 보편적 역사성을 살아 숨 쉬게 한다. 


따라서 신학의 보편성과 영성의 개별성은 이분법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작용을 통해 서로에게 매우 중요한 영향을 주고 받는다. 신학의 보편성을 통해 영성의 개별성은 그리스도교 진리의 빛 안에 머물게 되고, 동시에 신학의 보편적 가르침은 영성의 다양한 개별적 체험을 통해 확장되고 깊이를 더해갈 수 있다.


문학과 신학의 관계도 영성과 신학의 관계와 비슷하다. 문학의 기원을 종교적 신화와 의식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길가메시 서사시」는 최초의 서양 문학작품이면서 최초의 종교적 신화로 여겨진다. 발터 부르케르트는 언어와 신화, 의례를 연구하면서, 언어가 시작되었을 때, 의례와 언어는 동시에 발생하였다고 주장한다. 즉 초기의 언어적 예술은 의례적 행위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종교 작가들에게 문학은 신앙을 확인하고 증언하는 중요한 방식의 역할을 했다. 물론 종교에 적대적인 작가들은 문학을 통해 신앙에 도전하였다. 


동시에 하느님의 계시인 성경도 문학과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하느님의 계시에 관한 교의 헌장」은 성경이 문학의 영향을 받았음을 명시하고 있다. “성경 저자들의 진술 의도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것들 중에서 ‘문학 유형’들도 고려해야 한다. 왜냐하면 진리는 본문에서 역사적, 예언적, 시적 양식 또는 다른 화법 등 여러 양식으로 각각 다르게 제시되고 표현되기 때문이다.”(12항) 즉 문학의 요소들이 하느님 말씀의 의미를 표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T. S. 엘리엇은 문학이란 현재 있는 그대로의 삶을 다루고, 신학은 마땅히 있어야 할 모습을 다룬다고 이야기한다. 불완전하고 이기적 존재인 인간의 삶은 뭔가 결점과 어두운 면이 있다. 반면 신학은 그리스도교 진리의 선한 빛을 제시한다. 인간 삶의 본질에 대한 날카로운 성찰이, 그냥 성찰에서 멈춘다면 인간 성장은 기대하기 힘들다. 또한 진리의 빛이 현실의 인간 삶을 품지 못하고, 이상화된 모습만을 비춘다면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문학의 영역과 신학의 영역 사이에 존재하는 이런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상호 보완적 관계 형성이 요청된다.



문학과 그리스도교 영성의 주된 관심사는 바로 개인 삶의 경험이다. 색칠되고 꾸며진 경험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날 것으로서의 경험. 왜냐하면 하느님은 흠 없이 가공된 모습이 아니라, 아담과 하와를 찾으시는 것처럼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찾고 계시기 때문이다. 윌리엄 제임스는 종교의 본질이 교리나 제도보다는, 개인의 감정과 행동 등의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경험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도 계시는 마지막 사도의 죽음과 함께 완결되었다는 전통적 명제보다는, 역동적이고 지속적으로 작용하는 영향으로 이해하는 관점을 드러낸다. 계시가 끊임없이 역동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모든 인간은 죽는 순간까지 길 위의 순례자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 영성은 그리스도교 진리 안에서 개인의 경험을 이해한다는 측면에서, 문학과 차별화된다. 하지만 문학에서 묘사되는 개인의 경험이 그리스도교 신앙의 언어를 직접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리스도교 영성에서 드러나는 경험과 크게 다른 것은 아니다. 신앙인의 인간 본성과 비신앙인의 인간 본성은 근본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이다. 이교도였던 사마리아인이 오히려 선한 빛의 길을 걷고 있는 인물이었다. ‘익명의 그리스도인’을 강조하였던 칼 라너는 ‘근본적인 인간의 경험들(foundational human experiences)’ 안에서 초월성을 제시하였다. 즉, 그리스도의 복음을 직접 듣지 못했거나 교회 밖에 있는 사람도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무의식적으로 절대자에 대한 초월적 경험이 가능하다.


서양의 고대부터 중세, 르네상스, 근대,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근본적인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는 다양한 문학작품들에 관한 연구는 그리스도교 영성의 폭과 깊이를 더욱 풍부하게 하고 한층 강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비록 그리스도교의 종교적 언어를 직접으로 사용하지는 않지만, 문학 작품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근본적인 경험들은 그리스도교 영성의 핵심적인 가치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호머의 「일리아드」는 용서를,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우정을,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순명을,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은 사랑을,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캣츠비」는 자존감을 흥미롭게 깊은 통찰력으로 묘사하고 있다. 특별히 오늘날 현대 사회는 인공지능(AI)의 급속한 발달, 공동체 의식의 약화, 노인 문제, 인구 소멸, 물질주의와 자본주의 등의 심각한 문제들을 대면하고 있다. 이런 문제들은 궁극적으로 인간 존재의 의미와 직결된다. 그리스도교 영성의 시각에서 바라본 다양한 문학작품들의 세계가 의미 충만한 새로운 문을 열어 주길 희망한다.



글 _ 김치헌 바오로 신부(예수회·서강대학교 영문학부 교수) 
1996년 예수회에 입회해 2007년 사제품을 받았다. 영국 런던대학교 히쓰롭 칼리지에서 영성신학 석사 학위, 워릭대학교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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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5-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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