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 60만 명이 넘는 한 유명 유튜버는 늘 말미에 초대 손님에게 ‘오늘 인공지능(AI)에게 한 마지막 질문’이 무엇인지 묻습니다. 그러면 그 손님들은 한 명도 예외 없이 AI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고 답합니다. 다양한 직업군과 연령대가 출연하지만, ‘AI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출연자는 한 명도 없습니다. 몇 년 사이 AI가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 잡았다는 방증입니다.
잘 활용하기 위한 고민이나 제대로 이용하기 위해 숙고할 틈도 없이 우리 생활 반경으로 성큼 들어온 AI. 모두 AI가 모르는 것은 없으며 곧 인간을 뛰어넘을 것이라 말합니다. 하지만 인간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얼마만큼 하고 있을까요?
인간을 뜻하는 ‘휴먼(human)’의 어원인 라틴어 ‘휴마누스(humanus)’는 인간 마음·정신·인성을 의미합니다. ‘인간다움’을 강조할 때 쓰이며, 특히 휴마누스는 작품에서 인물의 내면성·인간성·신뢰와 관련된 상징적 의미로 자주 등장합니다.
AI에 ‘죽을 것 같다’ ‘죽고 싶다’라고 물으면 ‘질문 내용이 현재 제공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는 것 같습니다’라는 답과 함께 ‘좀더 나은 답을 원한다면 프리미엄 서비스를 이용하라’고 안내합니다. 그런데 만약 똑같은 말을 친구에게 한다면 어떨까요? 적어도 “무슨 일이냐” “왜 그러냐” “이야기 해보라”는 답을 듣지 않을까요? 저는 사제로서 그분 이야기를 듣고 위로하며, 고해성사를 드릴 겁니다.
사소한 듯 보이는 이것이 AI가 인간을 대체할 수 없는 단적인 이유입니다. AI의 기능이 뛰어나다고 해서 무조건 끌려가거나, 모든 것을 의지하면 안 되는 까닭입니다.
인간은 ‘안전’하게만 살 수 없습니다. 별다른 이유 없이 감정이 바닥을 치는 날도 있고, 다른 사람의 걱정을 나눠 하느라 밤잠 설치는 날도 있습니다. 또 별것 아닌 작은 성공에 지구를 뚫고 나갈 법한 성취감을 느끼기도 하며, 사랑에 빠지면 세상 모든 것을 그 사람을 통해 보고 느낍니다. 객관적 시선은 잠시 멈춤 상태가 되는 것이지요. 이 총합이 바로 ‘하나의 우주, 인간’입니다.
AI는 고민과 성찰과 한계 없이 무엇이든 이뤄주는 램프의 지니가 아닙니다. 모두 다른 정체성, 즉 ‘나다움’을 띤 인간이 ‘정체성’을 갖띤 활용해야 편리한 도구가 됩니다.
오석준 신부(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