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있는 곳은 전라남도 곡성, 섬진강 변 깊은 숲 속이다. 곡성이란 지명처럼 골짜기에 자리 잡은 고장이기에 하늘을 올려다보면 둥그렇게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곳에 거처를 마련한 지 25년이 되었다. 온전히 혼자서 살았던 시절은 15년여이고 나머지 10년은 도깨비 마을이란 이름을 걸어 놓고 어린이들과 시끌벅적 노는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12월이 되면 모든 일정이 끝나고 다시 고요한 산으로 되돌아간다. 덩달아 나도 고요해진다. 호기롭게 산에서 살겠다고 들어왔을 때 처음으로 나를 압도했던 건 하늘이다. 특히 밤하늘은 너무나 엄숙하고 경건해서 나를 옴짝달싹도 못 하게 만들었다.
방에 들어가 앉으면, 통창으로 바깥 풍경이 방으로 들어온다. 산과 하늘이 반반씩 어우러진 꽤 멋진 풍경이다. 어스름이 내릴 즈음 산을 바라보고 있으면 산이 시꺼멓게 한 덩이가 된 다음, 하늘에도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다. 하늘이, 천천히, 어두워진다. 이곳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인지라 내가 전등을 켜지 않는 한 어둠은 한 점의 방해도 받지 않고 공평하게 내린다.
산에서 어둠을 처음 맞이했을 때, 장엄한 상황에 압도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난 날마다 어스름을 기다렸다. 내가 한없이 하찮은 존재라는 걸 즉시 자각하게 만들어줬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결에 난 어스름이 내리는 시간을 좋아하게 되었다. 나도 함께 고요해지는 시간이 된 것이다. 내 마음속에 떠도는 수많은 생각을 해감하여 걸러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거대하고 공평하게 내리는 어둠 앞에서 한없이 겸손해지고 한없이 작아졌다. 바로 이 시간이 나에게 온전히 하느님을 영접하는 시간이 된 것이다. “하느님, 하느님 앞에서는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둠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달빛도 없는 날은 눈을 뜨고 있어도 감고 있는 것처럼 캄캄합니다. 마당이 천 길 낭떠러지라도 된 듯 조심히 발길을 옮깁니다. 겨울은 별빛이 유난히 더 밝습니다. 우리 집 마당에서는 오리온 별자리가 가장 밝게 빛납니다. 동방 박사들이 따라갔던 별이 저기 어디쯤 빛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별빛을 따라가다 보면 베들레헴의 구유에 누이신 예수님께 도착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오늘 밤, 별빛을 따라 강으로 내려가 봅니다. 밤길에서는 빤히 아는 길일지라도 더욱 먼 길처럼 느껴집니다. 내 발소리가 터벅터벅 따라붙고 숨소리까지 쌕쌕 들립니다. 밤 짐승 소리나 가랑잎 떨어지는 움직임에도 섬뜩해집니다. 나를 지켜보고 있는 사람도 없지만 짐짓 놀라지 않은 척, 내가 나를 속이기도 합니다. 섬진강에 가 닿습니다. 하늘이 넓어지자, 더욱 많은 별빛이 쏟아져 내립니다. 강에서는 강물이, 하늘에서는 은하수가 흐릅니다. 고개를 들어 맘껏 별빛을 받아냅니다. 이 세상 사람만큼 많은 저 별들! 하느님이 우리에게 내려주신 별입니다.
“하느님, 저 수많은 별 중에서 동방박사들이 따라갔던 별은 어느 별일까요?”
“저를 인도해줄 별은, 제가 찾아내야겠지요?”
“우러러 당신의 하늘을 바라봅니다. 당신 손가락의 작품들을 당신께서 굳건히 세우신 달과 별들을.”(시편 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