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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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벨룽족의 노래’ 울려 퍼진 도나우강 성모 성지 마리아 타펄

[중세 전문가의 감 김에 순례] 57. 오스트리아 마리아 타펄 통고의 성모 바실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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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니더외스터라이히주의 마리아 타펄 바실리카의 남측 전경. 1660년부터 건축되어 1724년에 봉헌되었으며, 1947년 12월 15일 비오 12세 교황에 의해 준대성전으로 지정됐다. 성당 왼쪽은 사제관, 오른쪽은 초등학교이며, 광장 앞의 시설은 제2차 세계대전 전쟁 희생자 추모관이다. 1969년부터 오블라띠 선교수도회에서 본당 및 순례 사목을 맡고 있다.
눈 덮인 마리아 타펄 바실리카. 해발 450m(강 기준 233m) 니벨룽겐가우 언덕에 자리하고 있어서 성당 마당에서 도나우강 너머 넓은 구릉지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강을 따라 서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멜크 수도원이 어렴풋이 보인다.

새해가 되면 해맞이 장소를 찾아갑니다. 가장 먼저 수평선이 열리는 동해로 가기도 하지만, 저는 집 가까이 인왕산에 올라 동이 트는 순간을 맞이하곤 하지요. 만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새해를 맞이한다면 어디를 가야 할까 생각해보니 떠오르는 곳이 있습니다. 새해를 내 결심으로만 시작하지 않고, 성모님과 함께 하느님이 내 삶에 들어오실 길을 열 수 있는 곳, 도나우강이 내려다보이는 성모 순례지 마리아 타펄(Maria Taferl) 바실리카입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신 신비가 성모님의 “예”를 통해 이루어지듯이, 성탄 팔일 축제 마지막 날인 1월 1일에 그 고백으로 한 해를 시작할 수 있는 곳이지요.
마리아 타펄 바실리카의 주 제대와 은총의 피에타상. 성모 신심의 중심이 된 은총의 피에타를 모신 참나무 자리에 주 제대를 조성했다. 성당의 주 제대가 동쪽이 아니라 북쪽에 자리한 것도 이 때문일 수 있다. 1734년 파사우 출신의 조각가 요제프 마티아스 괴츠가 설계했으며, 린츠의 건축가 요한 미하엘 프룬너와 금세공인 요한 페터 슈벤터의 참여로 1739년에 완성되었다.

‘니벨룽족의 노래’ 울려 퍼진 도나우강 성지

마리아 타펄 바실리카는 오스트리아 니더외스터라이히주, 도나우 계곡의 능선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빈에서 서쪽으로 한 시간 거리로 멜크 수도원과도 지척이라 좋은 하루 순례 코스입니다. 도나우 강변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강이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길이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중세 산티아고 순례길과 예루살렘 순례길이 여기서 잠시 겹칩니다. 순례자들은 레겐스부르크·빈에서 강을 따라 마르바흐 마을까지 와 이곳 언덕에서 잠시 머물렀을 테지요.

멀리서부터 마리아 타펄 바실리카의 쌍탑 정면이 보입니다. 언덕에 도착하면 몇 계단 위로 펼쳐진 넓은 성당 광장에 놀랍니다. 광장에서는 도나우강 너머 니벨룽겐가우 지역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이 일대는 1200년 무렵의 영웅서사시 ‘니벨룽족의 노래’의 무대였습니다. 남편 지크프리트를 잃은 크림힐트와 아틸라 대왕과의 혼인을 중개한 뤼디거 폰 베헤라렌(현재의 푀흐라른) 백작의 근거지였지요. 크림힐트는 뤼디거의 보호를 약속받고 남편의 복수를 꿈꾸며 이곳에서 ‘훈족의 땅’으로 떠나지요. 비극적인 인간사의 길목이었던 곳이 시간이 흘러 구원을 위한 순례지가 된 겁니다.
성모 승천을 주제로 한 돔 천장화. 성모 승천이 중심축이 되어 성모 마리아의 삶의 여덟 장면을 담고 있으며, 네 복음사가를 그린 묵중한 네 기둥이 돔을 받치고 있다.

일상의 공동체 신앙이 성모 신심으로 발전

마리아 타펄은 생활 속의 신앙이 꽃 피던 자리에 여러 기적이 겹치며 순례지로 발전한 곳입니다. 16세기부터 강가 본당 사람들은 성탄 팔일 축제 월요일 미사를 봉헌한 뒤 이곳까지 행렬해 한 해의 안녕을 빌었습니다. 이곳에는 속이 빈 오래된 참나무가 있었고, 그 안에는 나무 십자가가 놓여 있었다고 합니다.

1633년 1월 14일 한 목동이 땔감을 마련하려 숲에 들어가 겉보기엔 말라 죽은 듯한 참나무를 찍다가 도끼가 미끄러져 발의 동맥을 다치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그제야 자신이 베려던 나무가 바로 그 참나무임을 알아차리고 용서를 빌었고, 피가 멎어 3주 뒤 상처가 아물었다는 사연이 순례의 불씨가 됩니다. 1642년에는 오랫동안 우울증과 자살 충동에 시달리던 쉬나글 판사가 꿈에서 집에 있던 피에타상을 참나무로 가져가 낡은 십자가를 대신하라는 말을 듣고 실천한 뒤 치유를 체험합니다. 그로부터 9년이 지나 거의 말라가던 참나무가 다시 푸른 잎을 틔웠다는 이야기도 뒤따릅니다. 1658년 이후에는 치유와 기도 응답뿐 아니라 빛의 현상, 천사들의 행렬 목격담까지 전해졌고, 1659년 파사우 교구의 조사 뒤 순례지로 공인받습니다. 그해 4월 25일, 마침내 통고의 성모 성당 건축의 초석을 놓게 되지요.

성당은 참나무와 은총의 피에타상을 중심에 두고 단계적으로 지어졌고, 1724년 6월 초기 바로크 양식의 성당이 봉헌됩니다. 18세기 중반에는 18만 명의 순례자, 기공 100주년인 1760년에는 30만 명 이상의 영성체와 700회가 넘는 행렬이 기록되었습니다. 고해성사는 새벽부터 밤까지 이어졌고, 대규모 행렬은 수천 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1860년에는 황실 가족이 순례했으며, 19세기 중반까지 기적 사례를 모은 책들이 국내외로 계속 출간되어, 마리아 타펄은 오스트리아에서 마리아첼 다음가는 성모 순례지로 자리 잡았습니다.
단일 신랑의 짧은 교차랑 구조인 마리아 타펄 바실리카. 1713~1718년 기존의 석고 장식을 걷어 내고, 안토니오 베두치의 밑그림대로 벽면과 천장을 하나의 천상 무대로 구현했다. 교차랑 위의 돔 천장에는 성모 승천과 성모의 삶, 신랑의 천장에는 성 요셉의 영광이 묘사되어 있다.

성가정의 삶처럼 다시 일상으로

성당은 단일 신랑의 공간 안에 주 제대를 중심으로 좌우의 큰 측면 제대가 서로 마주 보는 구조입니다. 교차랑 앞에 서면, 이곳이 마치 하늘을 한 겹 덧댄 무대처럼 느껴집니다. 제단화와 천장화는 각각의 장면으로 끝나지 않고, 이야기의 흐름이 둘레로 퍼졌다가 다시 중심으로 돌아오도록 짜여 있습니다.

주 제대에는 은총의 피에타상이 모셔져 있고, 그 위로는 십자가의 승리가 펼쳐집니다. 왼쪽 제단화는 골고타 십자가 아래의 장면을 드러내어, 주 제대에서 마주한 피에타의 의미를 ‘현장’처럼 되돌려 줍니다. 반대편 오른쪽 제단화는 성가정을 통해 이곳이 은총의 자리임을 다시 확인시킵니다. 왼쪽이 상처의 현장을 보여주며 현실의 고통을 직면하게 한다면, 오른쪽은 고통 이후에도 우리 일상을 지켜주는 따사로움을 건네지요. 그리고 성모 승천과 성모님 삶을 그린 돔 천장 프레스코화와 신랑 천장에 펼쳐진 성 요셉의 삶과 영광은 순례가 성당 문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자리에서 계속되어야 함을 성 요셉과 성모 마리아의 삶으로 조용히 일러주는 듯합니다.

성담(聖譚)을 읽을 때마다 저는 기적을 초자연적인 사건으로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특히 전쟁과 역병으로 점철된 17세기는 ‘불안의 언어’로 가득했던 시대였습니다. 저 아래 보이는 도나우강 유역 사람들은 이 언덕에서 그 불안을 내려놓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습니다. “네 길을 주님께 맡기고 그분을 신뢰하여라. 그분께서 몸소 해 주시리라.”(시편 37,5) 성모님이 그러하셨듯 매일 “예”라고 응답하며 희망 속에 의연히 나아가는 것이 올 한 해 그분 뜻에 사는 길일 겁니다.
 
<순례 팁>

※ 빈에서 자동차로 크렘스를 경유하는 도나우강 루트(A22+B3) 추천. 기차로는 빈→장크트푈텐→푀흘라른 이동(1시간 10분) 후 버스(788번, 13분)나 택시 이용.

※ 미사 전례 : 주일 및 대축일 07:00· 08:30·10:00·11:30·18:00, 평일 07:30· 10:00(월~금)·18:00(목).

※ 혼자 가시기 힘든 분을 위해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이 마련한 2026 유럽 수도원 성지 순례. 문의 및 신청: 분도출판사, 010-5577-3605(문자)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5-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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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45장 1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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