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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들의 성소 못자리, 추억 품고 새롭게 태어난다

새롭게 탄생할 서울 대신학교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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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준공 당시 대신학교 대성당 내부
1994년 개축한 서울대교구 대신학교 대성당.
1960년 당시 가톨릭대학 별관. 서울대교구 대신학교 제공


서울 대신학교 대성당·대건관 재건축
마지막 미사에 신학생 100명 참여
2028년 6월 완공 예정




반세기 넘게 이 땅의 사제 양성 못자리였던 서울대교구 대신학교 대성당과 대건관(기숙사). 각각 1960년과 1972년 지어진 두 이웃 건물이 안전을 이유로 재건축에 들어간다. 완공은 2028년 6월쯤으로 예상된다.

올해 봄 철거를 앞둔 지난 12월 20일, 대성당·대건관 이사 현장에서 신학생들은 구슬땀을 흘리며 정든 공간에서 짐을 옮겼다. 대건관에 살던 3~5학년 신학생들은 교내 다른 기숙사인 강학관·수덕관에 나눠 지내게 된다. 이튿날인 12월 21일은 1~6학년 신학생 100명이 참여한 가운데, 대신학교장 민범식 신부 주례로 마침내 대성당에서의 마지막 미사가 거행됐다.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할 ‘기도와 추억의 장소’, 서울 대신학교 대성당과 대건관의 역사를 두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한국 유일 대신학교, 시설 부족으로 곤란

1959년 5월 20일, 대성당 공사가 시작됐다. ‘성신대학’에서 더 이해하기 쉽고 포괄적인 ‘가톨릭대학’으로 교명을 바꾼 지 3달 만이었다. 당시 가톨릭대학은 한국 교회 최초이자 유일한 대신학교였다. 1855년 배론(충북 제천)에 세워진 성요셉신학교를 모태로 삼은 데다, 대구 성유스티노신학교와 덕원신학교가 각각 일제와 북한 공산 정권에 의해 폐교된 까닭이었다. 대구·광주관구를 담당할 대건신학교(현 광주가톨릭대학교) 개교까지는 3년을 기다려야 했다.

문제는 전국에서 몰리는 신학생들을 감당하기엔 가톨릭대학의 시설(성당·도서관 등)이 부족하고 노후됐다는 것. 이런 가운데 1959년 3월 5일, 교황청 포교성성(현 복음화부) 장관 서리 아가지아니안 추기경이 가톨릭대학을 시찰했다.

한공렬 학장 신부를 비롯한 학교 담당자들은 성당 신축을 협의하고, 서울대목구장 노기남 주교에게 건의했다. 노 주교는 교구 재정이 어려웠던 터라 결정을 망설였으나 더는 미룰 수 없었다.



독일 교회가 성당 건립에 큰 도움

교황청과 해외 교회 도움을 얻기로 한 노 주교는 1959년 유럽을 돌며 지원을 요청했다. 1년에 걸친 대성당 건축 비용은 총 10만 달러(당시 한국 돈으로 약 1억 환)였다. 그중 6만 달러를 독일(서독) 교회 프라이부르크대교구가 지원했다. 교구장 쇼이펠레 대주교가 ‘한국 신학교 건립’을 위해 특별 헌금을 한 결실이었다. 매년 신학교를 원조한 교황청도 3만 달러를 지원했다.

대성당 머릿돌에는 이러한 사실이 라틴어로 기록돼 있다. ‘한국의 두 번째 박해(기해박해, 1839) 120주년에 이 주님의 집이 성좌(교황청)와 프라이부르크대교구 헤르만 쇼이펠레 대주교와 신자들의 기부로 건립됐다.’ 나머지 1만 달러는 1958년부터 꾸준히 한국 교회를 지원한 ‘오스트리아 가톨릭 부인회’가 보탰다.



성당과 도서관·식당으로 구성된 ‘별관’

마침내 1960년 5월 15일, 준공된 대성당 축복식이 주한 교황사절 람베르티니 주교 주례로 거행됐다. 노기남 주교와 평양대목구장 서리 겸 가톨릭 구제회 한국지부장 캐롤(안 제오르지오) 몬시뇰·장면(요한 세례자) 박사 등 300여 명이 참여해 새 성전 봉헌을 축하했다.

대성당은 연건평 1270평 규모의 철근 콘크리트조 5층(지하 3층·지상 2층) 건물이었다. 지상 2층은 성당과 교수연구실(1985년 성당 증축 과정에서 사라진 것으로 추정), 1층은 도서관이 자리했다. 지하 1층은 식당이었고, 나머지 지하는 창고 등으로 쓰였다.

이처럼 복합공간인 대성당은 1911년 준공된 본관과 구별해 ‘별관’ 또는 ‘신관’으로 불렸다. 본관은 원래 1909년 한국에 진출한 성 베네딕도회 상트 오틸리엔 연합회가 세운 백동 수도원 건물이었다. 1972년 캠퍼스 개발로 철거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현재 혜화동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에는 ‘백동 수도원 터’를 알리는 비석이 있다.



신학교 도서관을 위한 신자들의 애틋한 마음

별관(대성당) 건물은 언론에 ‘가톨릭대학 도서관’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경향신문은 “웅대한 현대식 도서관의 축성식이 거행됐다”며 “천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성당과 10개의 교수용 연구실로 돼 있다”고 보도했다.

학교는 그동안 소장한 자료와 책을 새 도서관으로 옮겼다. 책은 전국 신자들이 낸 헌금으로 구입했다. 9월 26일 한국 순교 복자 대축일(1984년 103위 시성으로 폐지) 다음 주일 헌금이 신학교 지원에 쓰인 덕분이다.

1959년 서울대목구 몇몇 본당은 ‘신학부 도서관이 새로 건축된다는 소식을 보고만 있을 수 없다’며 특별 헌금을 했다. 송월동(현 서대문)·해방동(현 해방촌)·당산동·삼각지본당 등이다. 제기동본당은 성당 신축으로 많은 빚을 졌는데도 42만 환을 쾌척했다. 그중 10만 환은 한 신자가 아들 돌잔치 비용을 절약해 기부했다.

도서관은 1972년 ‘신학교 캠퍼스 종합개발 계획’으로 신축된 건물로 이전됐다. 대건관(당시 이름은 ‘서울관구 신학원’)과 함께 준공된 이 도서관 건물은 오늘날 대학본부로 쓰이고 있다. 1995년 현재 도서관이 건립된 까닭이다. 도서관이 떠난 대성당 1층 공간은 최근까지 신학생 식당으로 사용됐다.



김대건 신부 성해 대성당에 안치

대성당 축복식 후인 1960년 7월 5일, 두개골을 비롯한 김대건 신부 유해가 대신학교 성당에 안치됐다. 인근 소신학교(성신중·고등학교) 성당에서 옮겨온 것이었다. 이날은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복자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현재는 기념일)이었다. 김대건 신부를 비롯한 기해·병오박해 순교자 79위는 1925년 7월 5일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시복됐다.

모든 한국인 사제의 선배인 김대건 신부가 성인품에 오르고 10년 뒤인 1994년 2월 24일, 성해가 대성당 보수 공사 중 새로 제작된 석관에 모셔졌다. 1901년 미리내에서 옮긴 성해를 용산 예수성심신학교 성당으로 이장할 때부터 사용한 목관이 부식돼서였다. 기존 목관과 대리석판은 현재 가톨릭대학교 전례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성해는 새로 지어질 대성당에 다시 안치될 예정이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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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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