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서울대교구 대신학교 대성당이 준공되고, ‘한국인 첫 사제’ 김대건 신부 성해가 안치된 지 8년이 지났다. 1968년 4월 9일, 초대 마산교구장이었던 김수환 주교(훗날 추기경)가 제11대 서울대교구장에 임명됐다. 그로부터 30년간 ‘김수환 추기경’ 시대에 대신학교는 많은 변천을 겪었다. 가장 큰 변화는 1971년 시작한 가톨릭대학 ‘신학교 캠퍼스 종합개발 계획’이었다.
가톨릭대학은 1962년 대건신학교(현 광주가톨릭대학교) 개교로 더는 한국 교회 유일한 대신학교가 아니게 됐다. 서울관구만을 담당함으로써 부담은 덜었지만, 여전히 시설이 낡고 부족했다. 1911년 성 베네딕도회 백동 수도원 건물로 지어진 본관을 계속 사용할 정도였다. 이에 학교는 교구와 협의해 교황청에 캠퍼스 개발을 위한 원조를 요청했고,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다. 1968년 신학교를 방문해 신축 의견을 제시한 교황청 포교성성(현 복음화부) 차관 피네돌리 대주교가 큰 힘이 됐다.
개발 계획에 따라 1971년 8월 1일, 가톨릭대학 신학부 새 건물 4개동이 공사를 시작했다. 새 본관과 도서관(현 대학본부)·교수관(현 주교관) 그리고 관구 신학원, 즉 오늘날의 대건관이었다. 준공 축복식은 1년 뒤인 1972년 9월 26일 한국 순교 복자 축일에 ‘은인’ 피네돌리 대주교 주례로 거행됐다.
대건관(관구 신학원)은 연건평 1604평, 지상 5층 규모 건물이었다. 205명을 수용할 수 있는 기숙사와 매점·의무실·이발소·과학실·사진실 등 편의 시설을 갖췄다. 방은 모두 107개(1인실 45개·2인실 44개·4인실 18개)였고, 층마다 샤워시설이 있었다.
대건관 입소 1기생인 백남용(서울대교구 성사전담사제) 신부는 “1인실에 살았는데, 옆방 방문은 절대 금지였다”며 “외로운 마음에 잠깐 로비로 나와 다른 신학생들과 만났던 순간이 기억에 남는다”고 회고했다.
신입생 수가 늘자 대건관은 1980년 남쪽 중앙에 5층 건물을 잇대어 건립했다. 이 증축을 통해 학생 70명·신부 4명이 쓸 수 있는 공간(240평)이 확보됐다. 그리고 1992년에는 기존 2~4인실을 모두 1인실로 개조했다. 이때부터 신학원 생활권은 그동안 추가로 지어진 기숙사(양업관·강학관·수덕관)와 대건관 동·서편 등 다섯 권역으로 나뉘었다.
서울대교구 대신학교 대성당 앞을 지키고 있는 성 김대건 신부상. (1971년 제작)
대신학교 대성당 앞 성 김대건 신부상
대건관이 착공된 1971년은 복자 김대건 신부 탄생 150주년이자 순교 125주년이었다. 서울대교구는 이를 기념해 김대건 신부의 얼굴 복원에 나섰다. 대신학교 대성당에 안치된 두개골을 실측하고, 12촌 친척의 인상을 참고해 초상화를 완성했다. 이 작업을 맡은 동양화가 정채석(비오) 작가는 6개월에 걸쳐 김대건 신부 석상도 제작했다. 높이 약 5m(좌대 포함)에 무게 3톤으로, 한국 교회에서 보기 드문 규모의 성상이었다. 당시 교구 교도소후원회(현 사회교정사목위원회) 김송절(클라라, 서울 명동본당) 회장이 제작비를 지원했다.
김대건 신부 축일이자 시복 46주년인 1971년 7월 5일 서울 절두산 순교성지 광장에 마침내 이 석상이 세워졌다. 앞선 초상화처럼 사제 각모(비레툼)와 수단을 착용한 모습이었다. 오른손은 높이 들어 강복을 주고 있었고, 왼손으론 가슴 높이에 십자가를 들었다. 석상 비문 내용은 절두산 성지 주임 겸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장 박희봉 신부가 썼다.
이 김대건 신부상은 설치 2년 만인 1973년, 성해가 안치된 대신학교 대성당 앞으로 이전 설치했다. 제막식은 그해 성소 주일인 5월 13일 김수환 추기경 주례로 거행됐다.
석상을 신학교로 옮긴 이유는 1972년, 갓과 도포 차림의 새 김대건 신부상이 절두산 성지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박정희 정부 산하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가 제작한 약 10m 높이의 동상이었다. 이 단체는 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 장군상을 필두로 위인 15명의 동상을 건립했는데, 김대건 신부도 ‘조국 근대화의 선구자’라는 이유로 포함됐다.
이처럼 김대건 신부 석상은 대성당·대건관과 함께 반세기 넘도록 대신학교를 지켰다. 두 건물 재건축 동안 자리를 옮겼다가 완공 이후 대성당 앞에 다시 설치될 예정이다.
방한 첫 미사를 주례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사제단.
대신학교 대성당에서 방한 첫 미사를 주례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신학생을 안아주며 격려하고 있다. 서울대교구 대신학교 제공
1968년 김수환 추기경(당시 대주교)이 신학생들의 삭발례 예식 중 가위로 머리카락을 깎아주고 있다. 서울대교구 대신학교 제공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대성당서 신학생 만나
1984년 5월 6일 한국 교회는 200년 만에 처음으로 성인 탄생의 기쁨을 누렸다. 김대건 신부를 비롯한 순교복자 103위가 교황 최초로 한국을 찾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로마가 아닌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성인품에 올랐다.
대신학교 대성당 역시 교황 사목방문의 영광이 깃든 장소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한국에 도착한 5월 3일 대신학교 대성당에서 이 땅에서의 첫 미사를 봉헌했다.
한국 주교단과 대신학교 교수와 신학생 5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교황은 라틴어로 미사를 주례했다. 아울러 강론을 통해 사제 성소의 존엄성과 사제직 수행을 위한 준비과정을 강조했다. 또 신학생들에게 손수 성체를 분배하고, 포옹하며 격려했다.
교황은 주교회의 의장 겸 서울대교구장 김수환 추기경에게 한국 교회가 마련한 특별한 선물을 받았다. 시성식 때 착용할 곤룡포를 본뜬 백색 구름무늬 황금색 제의였다.
이날 미사는 김 추기경을 비롯해 교황청 국무성 장관(현 국무원 총리) 카사롤리 추기경과 대신학교 학장 최윤환 신부·교황 통역 담당 장익(훗날 춘천교구장) 신부 등이 공동집전했다. 주한 교황대사 몬테리시 대주교와 교황 수행원들도 참여했다.
미사 복사를 섰던 두 부제는 교황에게 사제품을 받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이틀 뒤인 5월 5일 전국 교구·수도회 부제 36명과 함께 대구시민운동장에서였다. 주인공은 박찬윤(서울대교구) 신부와 고 서종민(수원교구) 신부다.
대성당에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흔적
두 차례(1984·1989년) 한국을 사목방문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이어,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 땅을 밟았다. 비록 대신학교를 찾진 않았지만, 대성당 안에는 당시 교황 방한의 흔적이 남아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8월 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를 시복할 때 사용한 제대와 독서대다. 이후 교구가 대신학교에 기증하면서 이곳에 설치됐다. 대성당 재건축 이후에도 계속 쓰일 예정이다.
대신학교는 이밖에 대성당 문과 유리화(스테인드글라스)·십자가의 길 등 기존 기물을 최대한 존치해 다시 사용한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한 창고도 마련했다.
새로 지어질 대성당과 대건관 모습은
한때 구름다리로 이어지기도 했던 두 이웃 건물, 대신학교 대성당과 대건관은 오는 4월 철거된다. 그리고 2028년 6월 완공을 목표로 재건축에 돌입한다. 설계는 간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가 맡는다. 신축 주한 교황대사관 등 여러 교회 기관을 설계한 곳이다.
새 대성당은 복합공간(별관)으로 지어졌던 기존 건물과 달리, ‘성전’ 구실에 충실하다. 2층은 회중석 400석 규모 성당, 1층은 순례자를 위한 별도 경당이 들어선다. 대신학교 대성당이 위치한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은 교황청 승인 국제 순례지인 ‘천주교 서울 순례길’에 포함된다.
이곳 경당에는 김대건 신부 성해가 모셔진다. 1960년부터 대성당 제대에 안치된 성해 일부로, 나머지는 재건축 후 기존 석관에 담긴 채 원래 위치로 돌아온다. 아울러 1층에는 교구 대신학교 양성소위원회 등 사무실도 자리한다.
새 대건관은 지상 6층 규모로, 3~5학년만 생활하던 이전과 달리 1학년부터 부제반까지 모든 신학생이 생활한다. 대건관과 양업관·강학관·수덕관에 나눠 살던 이들이 한집에서 더불어 살게 되는 것이다. 1~3학년은 공동 침실을, 4학년부터, 개인 침실을 사용할 예정이다. 기존 대성당 1층에 있던 학생식당도 대건관으로 옮긴다.
대성당·대건관을 역사 속으로 떠나보내는 이들
정든 공간과 작별하는 신학생들은 “오래된 건물이라 생활하면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그래도 추억이 많은 장소라 서운한 마음이 크다”고 입을 모았다.
임승준(시몬, 3학년) 신학생은 “힘든 시간도, 좋은 시간도 모두 대성당에서 기도하며 보냈다”고 했다. 인호진(레토, 4학년) 신학생도 “대성당에서 울었던 기억이 많다. 예수님 덕에 기뻐서 울고, 제 나약함 때문에 슬퍼 울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손민국(비오, 5학년) 신학생은 “대건관은 저희를 더 끈끈하게 해준 특별한 공간”이라며 “사라진다니 참 애틋하다”고 전했다.
대신학교장 민범식 신부는 재건축을 통해 ‘새 바람’이 불 것이라고 희망을 내비쳤다. 민 신부는 “모든 신학생이 모여 사는 북적북적한 분위기가 기대된다”며 “앞으로도 현 시대에 필요한 양성 방향을 따르고자 힘쓰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