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예수님과의 첫 만남은 십자가의 고상이 아닐까?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무슨 연유인지도 모르게 숙연해지는 느낌과 나의 잘못을 낱낱이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내 글솜씨로는 표현하는 게 한계가 있어, 조선 시대 문장가 연암 박지원의 글을 소개해본다.
연암은 1780년 북경의 천주당에서 예수님을 만났고 ‘열하일기’에 이렇게 표현해 놓았다. “사람의 지혜와 생각으로는 헤아릴 바가 아니고, 언어와 문자로도 형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그리고 예수님과 눈을 맞추며 느꼈던 감정을 솔직하게 독백하였다. “내가 숨기고 있는 것을 꿰뚫어보는 것 같아 부끄러웠다. 내가 입으로 말하려 하자, 그가 깊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갑자기 뇌성벽력을 지르는 것 같았다. 나는 그가 두려워서 처음에는 멈칫거리다가 물러나 피하려고 하였다. 그가 정말 나를 사랑하는 것 같기에 숨을 죽이고 용모를 가다듬고 앞으로 나아갔다. 오색의 구름 속에 붉은 옷을 입고 반듯하게 서 있는 사람, 이것이 바로 야소(耶蘇)의 모습인가?”(김혈조 역, 「열하일기」에서 발췌)
이 글을 보면 연암도 평생 예수님을 가슴에 품고 살았을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작년 가을 해미국제성지를 방문했을 때 복도에서 만난 ‘마르첼리노의 기적’이란 그림을 보고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도원에 살던 어린이 마르첼리노가 다락방에 있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힘겨워하는 모습을 보고 예수님께 빵과 포도주를 가져다 드린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예수님도 마르첼리노가 가져다주는 빵과 포도주를 매번 달게 드시고 마르첼리노의 소원을 들어준다. 나는 마르첼리노 그림 앞에서 ‘아, 하느님!’하며 내 가슴을 스스로 꼬옥 껴안았다. 연암도, 어느 사람일지라도 마르첼리노처럼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을까?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는 예수님 말씀을 가슴 깊이 되새기게 한 그림이었다.
내가 첫 번째 연재를 할 때 말한 것처럼 난 예수님상을 여러 번 만들었다. 테라코타이거나 도조 작품이다. 헐벗고 배고픈 예수님 상을 만들기도, 부처님과 함께 계시는 예수님 상을 만들기도, 두 팔을 펼쳐 모두를 품어주는 상을 만들기도 하였다. 그중에서도 난 웃는 예수님 상을 가장 좋아한다. 내가 생각한 만큼 파안대소를 못 한 게 아쉽지만 충분히 즐거워하시는 모습이다. 예수님이 이제는 즐거워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조각하였다.
나의 예수님은 도깨비 마을 마당에 커다랗게 자란 금목서 앞에 모셨다. 도깨비 마을은 이름에서 풍기는 것처럼 일부 개신교에서는 배척하는 곳이기도 하다. 아이들과 방문을 약속했다가 목사님의 반대에 취소된 적도 있고, 국비 사업이 결정되었다가 반납된 적도 있다. 그렇지만 모두 그렇다는 건 아니다.
어느 날 도깨비 마을에 목사님이 어린이들을 데리고 온 적 있었다. 뛰어놀던 어린이가 나를 바라보더니, 큰소리로 외쳤다. 예수님이다! 모두 나를 바라봤고, 목사님과 나의 눈이 마주쳤다. 우린 배시시 웃었다. 내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할 막중한 순간이었다.
어제 저녁 ‘마르첼리노의 기적’으로 인형극본 ‘예수님도 엄마를 사랑해요?’를 썼다. 무대에 올릴 기회가 나에게 주어지기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