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첸시오 아 바오로회는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 가톨릭 평신도 신심 단체다. 1833년 프랑스 파리에서 프레드릭 오자남과 젊은 대학생들에 의해 시작된 이 단체는 예수님께서 가난한 이들의 친구가 되어주셨듯 그들 곁으로 찾아가 삶을 함께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아왔다.
프랑스 시민혁명이라는 격변의 시대 속에 신앙의 도전을 받았던 청년 오자남은 말보다 행동으로 복음을 증명하고자 했다. 친구들과 가난한 이웃의 집을 두드렸고, 그 만남 안에서 신앙은 다시 살아 숨쉬기 시작했다. 그 정신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나의 삶 안으로 스며들었고, 가톨릭평화신문을 통해 빈첸시안으로 살아온 지난 25년의 세월을 돌아보게 된다.
흰 눈이 세상을 덮었던 어느 겨울, 대전교구 공세리성당 교육관에서 만난 한 노인의 말이 아직도 마음에 남아있다. 백발의 그는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이 있는 목소리로 “교회는 가난한 이들을 우선으로 선택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수원교구 본오동본당 신자들은 그런 신앙을 삶으로 살아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 말은 가르침이기 전에 증언이었다. 이미 그의 삶이 그 말을 증명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청소부 할아버지’라 불렀다. 성당 안팎은 물론 동네 곳곳을 쓸고 닦으며, 가난한 이웃을 위한 일이라면 마다치 않던 분이었다. 세상 눈으로 보면 실패한 사업가의 초라한 노년일지 모르지만,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면 참 거룩한 사람이었다. 빈첸시안의 모범을 몸으로 살아낸 김진두(미카엘) 회장님은 나의 대부님이다.
그분은 이제 하늘에서 나의 삶을 바라보고 계실 것이다. 대부님이 떠나신 후에도 나는 대모님과 함께 빈첸시오회의 길을 이어오고 있다. 이사를 하루 앞둔 날, 대모님이 건네주신 감사카드와 봉투 앞에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말할 수 없이’라는 짧은 글과 함께 담긴 마음은 지금도 나의 발걸음을 지탱해주는 든든한 영적 후원이다.
빈첸시오회는 본당 안에서 가장 작은 공동체일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하는 일들은 결코 작지 않다. 시간과 가진 것을 내어놓아 어려운 이웃에게 사랑을 전하고, 그 과정에서 서로가 거룩해져 가는 길. 그것이 빈첸시안의 삶이다. 그리고 오늘도 나는 그 길 위에 서 있다.
가난한 이웃 곁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가는 그 길 위에서, 신앙은 여전히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