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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나에게 그리스도”… 그리스도인 일치 꿈꾸는 수도자들

[일치주간 특집 이탈리아 보세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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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세 수도원의 특징은 서로 다른 교파의 남녀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수도 생활을 한다는 것이다. 남자 수도자들이 시간 전례를 하고 있다.

 

 


그리스도교 남녀 수도자 모여

‘교회 일치’ 지향하는 공동체1965년 설립, 60년째 이어져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주 비엘라 지방 마냐노에 자리한 ‘보세 수도원(Bose Monastic Community)’은 교회 일치의 오랜 전통을 살아가는 매우 특별한 공동체다.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18~25일)을 맞아 “모두가 하나 되게 하소서”라는 주님 뜻을 실현하기 위해 서로 다른 그리스도교 신앙을 존중하며 하나 된 삶을 살아가는 일치의 모범 보세 수도원 공동체를 소개한다.

토리노에서 북동쪽으로 약 60㎞ 떨어진 마냐노는 중세 마을의 고풍스러운 모습과 알프스의 만년설, 부르치나 자연 보호 구역과 비베로네 호수의 아름다운 자연을 간직하고 있다. 마을 외곽 11세기 초 성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이 지은 산 세콘도 성당 근처에 바로 보세 수도원이 있다.

보세 수도원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그리스도교 수도회와 완전히 다르다. 남녀 수도자들이 함께 살고 있을 뿐 아니라 각자 믿음에 따라 가톨릭·정교회·개신교·콥트 교회에 속해 있다. 한마디로 교회 일치를 지향하며 초기 수도생활의 모습으로 살려는 ‘초교파 수도 공동체’다.

보세 수도원은 서방 교회 성 베네딕도 수도 규칙과 동방 교회 대 바실리오 주교의 수도 규칙의 전통을 공유하며 오늘날 수도생활에 맡겨진 소명을 찾아가고 있다. 이곳 수도자의 삶을 지탱하는 네 기둥은 기도와 노동, 거룩한 독서(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 그리고 환대다. 하지만 이 네 가지 삶의 방식 중심에는 ‘성경’, 구체적으로 ‘복음 말씀’이 자리한다. 수도생활의 일상이 성경 말씀,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함께하는 실천의 삶이 되도록 묵상에 힘쓴다. 철저히 복음 정신대로 살기 위해 초기 그리스도교 수도자들이 그러했듯이 모든 것을 버리고 공동체 안에서 순명과 청빈, 정결의 삶을 사는 건 기본이다.

보세 수도원의 독창성은 ‘교회 일치의 삶’을 지향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세례’에 기초한 생활방식 속에서 수도자들은 교회 일치를 열망한다. 그래서 보세 수도원에선 매일 성찬례가 거행되지 않는다. 성체를 모셔둔 감실도 없기에 성체조배 역시 보세에서는 행해지지 않는다. 또 가톨릭교회의 ‘원죄’ 교리를 가르치거나 언급하지 않는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으로 설립된 보세 수도원에서 여자 수도자들이 찬미가를 부르고 있다.

 


이러한 삶의 방식에 대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보세 공동체는 교회 일치를 위한 길을 여는데 헌신하며,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 되게 해 주십시오’(요한 17,11) 하신 예수님의 기도처럼 그리스도교 신앙과 사랑의 친교를 위해 기도와 만남, 대화의 장소가 돼왔다”고 평가했다.

보세 수도원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폐막한 1965년 12월 8일 시작, 꼭 60년 됐다. 토리노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가톨릭 평신도 엔조 비앙키가 보세 마을 외곽 농가를 빌려 은수생활을 시작했다. 전기도 상·하수 시설도 없는 단칸집에서 3년 동안 홀로 성경을 읽고, 기도와 묵상을 하면서 가끔 찾아오는 방문자들을 환대했다. 이 시기 비앙키는 서방 교회 시토회와 트라피스트회 수도원, 동방 교회 그리스 아토스 수도원, 그리고 교회 일치 수도 공동체 떼제를 체험하면서 수도생활에 대한 소명을 키워갔다.

보세 공동체가 처음부터 환영받는 공동체는 아니었다. 지역 교회 주교는 공개적인 전례를 금지했다. 가톨릭 신자가 아닌 이들이 전례에 참례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다 1968년 6월 29일 토리노대교구 미켈레 펠레그리노 추기경이 방문해 전례 금지를 해제하고 공동체를 축복함으로써 교회 일치 수도회로 성장할 수 있었다.

 

 

보세 수도원 성당. 시토회와 트라피스트회의 영향을 받아 특별한 장식이 없이 단순하다.


이와 함께 1968년 8월 스위스 개혁 교회 목사 1명과 스위스 그랑샹 교회 일치 수도 공동체 개신교 수녀 1명, 가톨릭 신자 1명 등 3명이 보세에 합류했다. 이로써 교회 일치를 지향하는 남녀 수도 공동체의 조건을 갖추게 됐다. 보세 수도원은 2023년 7월 비엘라교구장 인가로 교구 소속 자치 수도원이 됐다.

교회 일치를 지향하며 초기 그리스도교 수도생활을 따르겠다는 소박한 시작은 60년이 지난 오늘, 서로 다른 그리스도교 교파 남녀 수도자 80여 명이 함께 사는 큰 수도회로 성장했다. 또 현대 사회의 도전에 직면해 ‘복음적 사랑의 증인’이 된 보세 수도원은 이탈리아 아시시, 오스투니아, 시비텔라 산 파올로에도 수도원을 세워 그리스도교 일치를 위한 교회의 소중한 보석으로 빛나고 있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박재찬 신부 지도 아래 ‘토마스 머튼 영성 배우기’ 피정자로 2025년 7월 보세 수도원을 방문했다. 보세 수도자들의 삶은 수도생활의 본질을 향해 나아가는 단순함 자체였다. 새벽 5시 30분에 깨어 오전 6시, 낮 12시 30분, 저녁 6시 30분 매일 3번 30분간 ‘시간 전례’를 한다. 남녀 수도자들은 모두 ‘관상 수도자’를 상징하는 흰색 수도복을 입고 전례에 참여한다. 성당 안 제대를 중심으로 남자 수도자들은 왼편, 여자 수도자들은 오른편에 자리한다. 찬미가와 시편 노래로 이어지는 성무일도로 시간 전례를 한다. 미사는 목요일과 주일 매주 두 번 거행된다.

커피와 빵 몇 조각으로 간단한 아침 식사를 마친 수도자들은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자신에게 맡겨진 수도원 작업장에서 노동한다. 올리브 농장과 포도원, 과수원에서 과일과 채소를 재배하고, 공방에서 십자가와 각종 성상, 초, 도자기, 이콘 그림을 제작한다. 또 출판사와 손님방에서 일하고, 어떤 이는 성경과 교부학, 히브리어와 아람어 등을 연구하고, 수련자들을 교육한다.

보세 수도원은 여느 수도원처럼 자급자족한다. 일터에서 생산한 모든 것을 무인 판매소에서 판매해 수익을 올린다. 이와 함께 여러 수입원으로 얻은 재화는 수도원과 가난한 이들을 위해 쓰고 있다.

손님, 곧 방문자 ‘환대’는 이곳 수도생활의 주요한 실천 활동이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마태 25,35)고 말씀하신 예수님 최후의 심판 장면을 상기하면서 방문자를 ‘그리스도의 현존’으로 모신다. 특히 교회와 세상의 문제로 기도 안에 머물 자리가 필요한 이들에게 특별한 정성을 기울인다.

환대는 매일 낮 1시와 저녁 7시에 12명이 들어가는 작은 방에서 함께하는 식사에서 잘 드러난다. 음식은 영양가 높은 친환경 재료로 신선하고 푸짐하다. 방마다 2명의 수도자가 손님을 안내해 함께 식사한다. 한 명은 식사 준비를 돕고, 다른 한 명은 손님들이 서로를 더 잘 알아가도록 대화를 이끈다.

오후 5시부터 한 시간 동안은 ‘거룩한 독서’를 한다. 영적 사막 한가운데에서 복음의 샘물로 영원한 생명을 지탱하기 위함이다. 우리 일행을 안내한 마태오 수사는 “규칙적인 수도생활은 우리가 소명에 충실하도록 해준다”며 “수도생활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통찰력을 제공한다”고 강조했다.

보세 수도원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에 따라 설립돼 시대 흐름에 맞춰 동·서방 수도 전통에서 영감을 얻어 발전해왔다. 보세 수도원은 서로 다른 신앙과 전통을 지닌 그리스도인들이 기도와 노동, 환대와 섬김을 통해 조화롭게 화합하는 모범을 보여준다.

리길재 전문 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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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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