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범 에지디오(아동문학가, 작곡가)
구글 제미나이 제작
2025년, 큰일을 했다고 스스로에게 칭찬을 해줬다. 조선 천주교 박해 이야기를 소재로 「천주의 아이들」이란 청소년 소설과 유아 초등생을 대상으로 한 그림책 「옹기에 그린 십자가」를 출간했다. 내가 쓸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1827년 일어난 정해박해 터인 전라남도 곡성, 덕실 옹기 교우촌에서 가장 가까운 집이 우리 집이기 때문이다. 할머니 때부터 천주교 신자 집안이었으니 나도 혹시 교우촌과 인연의 끈이 연결되어 있는 걸까? 하지만 나는 우리 집안에서 유일하게 군에 입대하기까지 신자가 아니었다. 3대가 모두 함께 성당에 다녔지만 나만 꿋꿋하게 무신론자로 버텼다. 그러다가 군에 입대하고 주님의 날에 고참들 눈치가 보기 싫어 성당에 나갔다.
군에서는 종교 활동 중 성당이 가장 인기가 없었다. 잠이 들만 하면 일어서게 하거나 꿇어 앉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사탕과 초코파이의 성령으로 세례를 받게 되었다. 에지디오란 세례명을 받았다. 성 에지디오의 축일은 9월 1일로 병자·불구자·걸인들의 수호성인이다. 깊은 숲 속에 초막을 짓고 은수생활을 하셨던 분이라고 해서 내 맘에 쏙 들었다.
이렇게 세례를 받은 나는 하느님께 성큼 다가섰고, 대학생 때 흘러간 옛이야기처럼 들었던 정해박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순교자의 아들인 한백겸이란 교우촌 옹기장이가 술을 먹고 행패를 부린 것에 화가 난 주막 주인의 밀고로 사건이 시작되었고, 잡혀 온 교우촌 신자들은 대부분 배교했다는 부끄러워할 만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왜? 잊히지 않지? 난 공부를 시작했다.
「한국천주교회사」를 쓰신 프랑스 출신 선교사 달레 신부님도 정해박해가 탐탁지 않으셨던가 보다. ‘조선의 모든 박해 중에서 통탄할 만한 일’이라고 기록해두셨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나를 교우촌 마을에서 태어나게 하신 건 이유가 있었던가 보다. 달레 신부님은 정해박해가 일어난 2년 뒤인 1829년에 태어나신 분이다. 그땐 인터넷이 있었던 시절도 아니고. 난 의심이 많은 성격이다. 우리 마을 이야기인 정해박해를 꼼꼼하게 살펴보리라!
자료를 찾는 과정에서 세계문화유산이 된 「일성록」과 전라감영의 관찬서에는 정해박해가 명백히 다르게 기록되어 있었다. 「한국천주교회사」에서 등장한 인물의 이름과도 달랐지만, 무엇보다 잡혀 온 교우촌 사람들이 ‘강한 믿음으로 동료 교인을 서로 보호하였고 배교자가 없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나에게는 얼마나 고맙고 자랑스럽고 반가운 기록이었는지 모른다. 이를 바탕으로 「천주의 아이들」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더 나아가 「한국천주교회사」와 「일성록」의 기록을 병기해야 한다는 의견도 냈다.
세상 일이 늘 그러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나를 고깝게 바라보는 사람들이 꽤 있다. 「한국천주교회사」를 부인하느냐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 정해박해 당시 교우촌 사람들의 강한 믿음을 알리자는 말이다. 하느님 뜻을 알리고, 교우촌 사람들의 명예를 되찾아주자는 말이다.
난 매일 부러 정해박해 터를 지난다. 그때 그 시절의 교우촌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산등성이에서 옹기 조각을 쉽게 주워 모을 수 있는 곳이다. 옹기 교우촌, 난 오늘도 하느님과 함께한 그들의 삶을 되새기며 내 마음을 다잡아 본다. “당신들의 숭고한 삶을 널리 알리는 일을 하겠습니다. 아멘!”

김성범 에지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