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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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교 점령 하에도 성모 신심으로 신앙 지킨 스헤르토헨보스

[중세 전문가의 간 김에 순례] 59. 네덜란드 스헤르토헨보스 성 요한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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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반트주의 주도 스헤르토헨보스의 구시가지. 1185년 브라반트 공작 하인리히 1세에게 도시 권리를 받아 직물 산업으로 발전한 도시다. 주도지만 인구 약 16만의 작은 도시로 네 강의 운하가 구시가지를 감싸고 흐른다. 구시가지 중심에 성 요한 대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사람은 서울로, 말은 제주로 보내라는 말이 있습니다. 큰 도시에 사람과 정보가 모이고, 기회도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자연히 ‘최고’ ‘최대’라는 수식어는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 붙기 쉽습니다. 수도권 중심인 우리는 유럽 여행을 앞두고 ‘가장 큰 성당’이라면 으레 수도에 있을 것이라 짐작하고 찾아보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크고 작은 공국이 공존했던 유럽은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네덜란드의 경우 가장 큰 주교좌 성당은 암스테르담이 아닌 노르트브라반트주의 주도 스헤르토헨보스(’s-Hertogenbosch)에 있습니다.

 
덴 보스의 성 요한 대성당. 현재 위트레흐트 대교구 산하 스헤르토헨보스 교구의 주교좌 성당으로 길이 115m·폭 62m로 현존 네덜란드에서 가장 큰 주교좌 성당이다. 처음 지역 성당이었다가 1366년 의전사제단 성당으로, 1559년부터 스헤르토헨보스교구의 주교좌 성당이었다. 1629년 도시가 함락된 뒤 개신교 예배 공간으로 사용되다가, 1813년 나폴레옹에 의해 가톨릭에 반환되었다. 비오 11세 교황의 ‘덴 보스의 자애로운 성모님’에 대한 특별 공경으로 준대성전으로 지정됐다.


네 강이 모이는 덴 보스

스헤르토헨보스? 아마 처음 들어본 지명일 겁니다. 1185년 브라반트의 하인리히 1세 공작으로부터 도시 자치권을 받으며 모직 산업으로 발전한 남부 저지대의 도시입니다. 이름의 뜻은 ‘공작의 숲’인데, 네덜란드 사람들은 보통 ‘그 숲’이라는 뜻으로 덴 보스(Den Bosch)라고 줄여 부릅니다. 마스, 아, 돔멀, 디저 네 강이 이곳에서 만난다는 사실은 이 도시의 성격을 설명해줍니다. 물길을 통한 교역으로 먹고산 도시였고, 물길이 만든 늪지는 중세에 도시를 요새로도 만들어주었죠.

스헤르토헨보스 기차역에서 나와 수로를 건너면 구시가지가 시작됩니다. 상점가를 따라 걷는 것도 잠시, 곧 넓은 광장에 우뚝 선 성 요한 대성당이 나타납니다. 높이도 높이지만, 웅장한 고딕 성당의 외벽 조각과 공중 부벽이 빚어내는 엄청난 규모와 밀도에 압도됩니다.

성 요한 대성당은 13세기 초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에서 시작해 14~16세기 동안 고딕 성당으로 단계적으로 확장되어 1530년 무렵 완성되었습니다. 전체적으로 장엄한 고딕의 실루엣이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마치 시대가 다른 건물이 붙어있는 듯합니다. 외벽의 색이 한 가지가 아니고 석재의 결이 구획마다 다르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13세기 중반 초기 고딕 양식으로 쌓은 서쪽 벽돌탑은 본체와 질감이 달라 마치 한 번 더 올려세운 듯합니다. 성당 외벽은 밝고 어두운 석재가 뒤섞여 있는데, 19세기 후반 대대적으로 복원·교체한 흔적입니다.

 
성 요한 대성당의 본랑. 십자형 바실리카 평면 구조로 14~16세기 브라반트 고딕으로 확장되어 1530년경 완성됐다. 천장에 붉게 채색한 늑골이 교차하는 리브 볼트가 보이며, 볼트면에는 덩굴·꽃 문양이 남아 있다.


질서와 조화가 어우러진 성 요한 대성당

성 요한 대성당은 관광지이기 전에 기도가 끊기지 않는 장소입니다. 1629년 네덜란드 독립전쟁 중 오라녜의 프레데릭 헨드릭 공작이 이끄는 신교 군대에 의해 점령당하면서 난공불락 신화는 깨집니다. 공공장소에서 가톨릭 전례가 금지되고 주교좌 성당이었던 대성당마저 개신교 예배당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200년 가까이 물밑에서 가톨릭 신앙을 꿋꿋이 이어 나갔습니다. 그 원동력 중 하나가 깊은 성모 신심이었습니다.

십자형 바실리카 형태인 성당 내부는 질서 있고 조화롭습니다. 주 제대까지 길게 뻗은 본랑, 기둥 사이로 흘러드는 빛, 교차랑 돔 위로 치솟은 천장, 모든 게 14세기 말부터 16세기 초까지 여러 증·개축 과정에서도 통일감을 잃지 않았습니다. 17세기 초에 설치된 오르간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에 이곳이 전례와 음악이 함께 살아 있는 공간임을 느끼게 됩니다.

 
교차랑 위 돔 천장에 그려진 ‘전지(全知)의 눈’. 원래 이 자리에는 높이 약 96m의 가운데 탑이 있었지만, 1584년 낙뢰로 붕괴해 지금의 돔으로 대체됐다. ‘눈’은 하느님의 섭리, 곧 세상을 사랑으로 돌보며 지켜보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뜻한다.


자애로운 성모자상의 기적

순례자들의 발걸음은 성모 소성당으로 향합니다. ‘조테 모더(Zoete Moeder)’, 즉 ‘자애로운 성모’라고 불리는 성모자상이 모셔진 곳입니다. 정문 왼쪽인 서탑 옆에 붙은 작은 공간입니다. 웅장한 성당에 비해 단출한 공간이라 앞에 초를 봉헌하며 기도하는 사람들이 없다면 모르고 지나치기 쉽습니다.

성모 소성당에 푸른 책이 한 권 놓여 있습니다. 성모자상에 얽힌 기적을 차곡차곡 기록한 ‘기적의 책’인 ‘미라켈북’입니다. 책을 펼치면 마치 도시의 연대기처럼, 한 장 한 장이 사람들의 사연으로 채워집니다. 어떤 이는 병에서 낫기를 청했고, 어떤 이는 항해와 전장에서 무사히 돌아오길 빌었습니다.

서두에는 성모자상을 모시게 된 사연이 서사시로 적혀 있습니다. 1380년 겨울 공사 중에 성모자상이 발견됩니다. 아기 예수상의 팔이 떨어져 나갔고, 너무 볼품없어서 장작이 될 뻔했습니다. 다행히 현장 책임자였던 수사가 성모상임을 알고 성당에 모십니다. 막상 성당에 두자 못생겼다고 사람들의 조롱이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시야에서 치우려 하자 들 수 없을 만큼 상이 갑자기 무거워져 결국 성당 안에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어 조롱하던 이가 병을 얻었다가 성모님의 꾸지람과 회개 뒤에 치유를 받았다는 이야기도 실려 있습니다. 그 후 1603년까지 성모님의 전구로 일어난 480여 건의 기적이 공증을 거쳐 이 책에 담겼습니다. 중세 후기 유럽인의 신심이 얼마나 ‘문서화’에 익숙했는지 여기서 드러납니다. 덕분에 중세의 기적에 대한 기억이 현재 순례자의 기도로 계속 갱신될 수 있지요.

 
성모 소성당의 ‘덴 보스의 자애로운 성모자상’. 참나무로 만든 높이 108cm의 목조상으로, 1280년경 제작되었다. 최초의 모습과 달리 이후 다듬어서 그렇게 못생겨 보이지 않는다. 옆의 푸른 책이 ‘기적의 책’으로, 정식 명칭은 「스헤르토헨보스 성모님의 기적들 1381-1603」이다. 1381년부터 1603년까지의 기적 증언을 모아, 순례 신심이 ‘이야기’가 아니라 ‘문서’로 축적되었음을 보여준다.


1629년 도시가 점령될 때, 성모자상은 안전을 위해 브뤼셀로 옮겼고, 1853년 말에야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매년 5월 성모 성월이면 많은 이가 도보와 자전거로 찾아와서 성모자상 앞에서 인사하며 그때 기쁨을 되새기곤 하지요.

중세 도시는 기적을 ‘소문’으로만 두지 않았습니다. 누가, 어디서, 무엇을 겪었는지 기록했습니다. 개인의 간절함이 문서가 되면, 그것은 곧 공동체의 기억이 됩니다. 덴 보스의 미라켈북은 그 과정을 눈앞에서 보여줍니다.

이곳에 이처럼 큰 성당이 지어지게 된 배경에는 도시의 성장과 부가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제 기억에는 돌로 지어진 성당의 크기가 아니라, 그 앞에서 축적된 기도의 시간과 간절함이 남아 있습니다. 돔 천장에서 내려다보는 하느님의 눈에도 그렇게 보이지 않을까 합니다.

 


<순례 팁>

※ 암스테르담이나 로테르담에서 기차로 약 1시간, 에인트호번, 위트레흐트에서 약 30분 소요.

※ 미사 전례 : 주일 및 대축일 10:00· 12:00, 평일 08:30(월-금), 12:30(토, 성모 신심 미사), 후진의 가시관 성유물, 수난 소성당의 날개 제대, 순례자 여권 스탬프!

※ 혼자 가시기 힘든 분을 위해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에서 마련한 2026 유럽 수도원 성지 순례. 문의 및 신청: 분도출판사, 010-5577-3605(문자)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6-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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