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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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아들 잃은 박완서의 절규 “하느님, 당신도 실수를 하는군요”

[빛과 소금, 이땅의 평신도] 문학을 통한 사도적 삶, 박완서 정혜 엘리사벳 - (1)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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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아들 호원태와 함께 보문동 집에서. 아들 원태는 평소 연극에 관심이 많아 생전에 연극 ‘세일럼의 마녀’에서 주연을 맡았고, ‘코뿔소’를 연출하기도 했다. 1988년 하나뿐인 아들을 잃고 묘비명 ‘평생 인간과 의학과 연극을 사랑하다 간 젊고 아름다운 영혼 여기 잠들다’를 손수 썼다. 박완서디지털문학관 제공


느닷없이 찾아온 참척의 고통
소설가로 성공 가도 달리던 1988년
폐암으로 남편 떠나고
스물여섯 살 아들 갑작스러운 죽음


죽고 싶다던 절규 끝에 움켜쥔 생
하느님 원망하며 종교 버릴 결심
기차역 계단서 죽음의 공포 느끼고
간사하고 위선적인 자신과 조우



‘하느님, 결국 당신은 안 계셨군요?’

밤낮으로 기도를 해도 하늘에 가 닿지 않음을 느낄 때 우리는 무력감을 넘어선 절망에 빠지고 만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기도에 절실함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자기 반성에 이어 종국에는 원망의 화살을 내가 아닌 하늘로 돌려버린다. ‘내가 아는 주님은 힘없고 아픈 이들 가운데 계시는 분이다. 약한 자의 편에 계시는 주님이라면 이렇게 불쌍한 나의 기도를 모른 척 지나치실 리가 없다. 그러니 결국 주님은 계시지 않는 것이구나.’ 생각하며.

온 나라가 서울올림픽이라는 세계적인 축제의 환희에 휩싸여있던 1988년, 박완서는 인생의 가장 큰 시련을 맞닥뜨린다.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을 연달아 잃었기 때문이다. 등단 이후 작품마다 평단의 찬사를 받았으며 대중적으로도 인기 작가로 손꼽히고 있었으니 소설가로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던 때였다. 화목한 가정에 4녀 1남의 자녀들은 모두 반듯하게 자라 어엿한 사회인으로 성장했다. 무엇하나 모자람이 없었고 외려 복이 너무 많아 불안할 정도의 삶이었다. 불현듯 찾아온 시련은 평탄한 일상을 단박에 무너뜨렸다. 창문 너머 바깥세상은 올림픽 성화의 불길이 타오르는데 그는 얼음장같이 차가운 방 안에 스스로를 가두었다. 남편은 폐암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세상을 떠났다. 평생의 든든한 울타리 같았던 남편을 보내며 나도 함께 데려가라 통곡했다. 그로부터 고작 석 달이 지난 어느 날, 아들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에 그는 정신을 놓고 말았다.

“나를 데려가라니 왜 그 아이를 데려갔소? 아직 날개 한 번 펼쳐보지 못한 우리 아들. 당신도 가고 그 아이마저 데려가다니, 나는 어찌 살란 말이오!”

아들은 이제 고작 스물여섯. 앞날 창창한 젊은 아들을 남편 곁에 묻고는 햇볕이나 잘 드는지 가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자식을 앞세운 어미를 세상이 모두 손가락질하는 것 같았다. 어릴 적 고향 마을에서 그런 어머니를 ‘자식 잡아먹은 사람’이라고 부르던 기억이 떠올라 그를 괴롭게 했다. 주변에서 건네는 위로의 말조차 고깝게 들려 곧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올림픽 경기에서 한국이 메달을 딸 때마다 들리는 이웃들의 환호성이 죄 많은 어미를 야유하는 소리처럼 들렸다. 얼마 후 맞이한 생일을 박완서는 생애 가장 욕된 생일날이었노라 고백한다. 자기의 탄생마저 저주한 구약 성경 ‘욥기’의 욥의 심정이 그러했을까.

 
1985년 남편 호영진(하상 바오로)씨의 회갑 잔치에서. 박완서디지털문학관 제공


‘내가 태어난 날이여, 차라리 사라져 버려라.’(욥기 3,3)

자식이 사랑스럽기야 누구인들 다르겠냐마는 5남매의 막내이자 하나뿐인 아들 ‘원태’는 어머니 박완서에게 보물이요 자랑이었다. 우리나라 최고 대학의 의학부를 졸업해 레지던트로 근무하고 있던 아들은 활달할 뿐 아니라 사려 깊은 젊은이였다. ‘원태’가 ‘마취과’를 선택했을 때 어머니 박완서는 못내 아쉬웠다. 소위 말해 잘나가는 과는 얼마든지 있을 텐데, 어미로서의 허영심에 영 흡족하지가 못했던 것이다.

“어머니, 마취과 의사는 주로 수술장에서 환자의 의식과 감각이 없는 동안 환자의 생명줄을 쥐고 있다가 무사히 수술이 끝나고 의식이 돌아오면 별볼일이 없어지기 때문에 환자나 환자 가족으로부터 고맙다든가 애썼다는 치하를 받는 일이 거의 없지요. 자기가 애를 태우며 생명줄을 붙들어준 환자가 살아나서 자기를 전혀 기억해 주지 않는다는 건 얼마나 쓸쓸한 일이겠어요. 전 그 쓸쓸함에 왠지 마음이 끌려요.”(「한말씀만 하소서」 중)

부모를 잃으면 고아요, 남편을 잃으면 과부, 아내를 잃으면 홀아비라 하지만 자식을 앞세운 사람을 이르는 말은 없다. 그만큼 인간의 언어로 그려내기 어려운 아픔이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그 슬픔을 짐작게 하는 ‘참척(慘慽)’이라는 말이 있다. ‘참혹할 참(慘)’과 ‘슬플 척(慽)’을 붙여 만든 것이다. 참척의 고통에 몸부림치며 박완서는 신앙에 강한 배신감마저 느낀다. 인간을 가장 사랑하시어 하느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셨다는데 어찌 인간에게 이러한 고통을 주실 수 있단 말인가. 기도방 안에 모셔져 있던 십자고상도, 친구가 위로의 뜻으로 건네준 묵주도 내동댕이치며 종교를 버릴 결심을 하기에 이른다.

“원태야, 우리 원태야, 내 아들아. 이 세상에 네가 없다니 그게 정말이냐? 하느님도 너무 하십니다. 그 아이는 이 세상에 태어난 지 25년 5개월밖에 안 됐습니다. (?) 그 아이를 데려가시다니요. 하느님 당신도 실수를 하는군요. 그럼 하느님도 아니지요. (?) 당신의 거룩한 모상(模相)대로 창조된 인간을 이렇게 막 가지고 장난을 쳐도 되는 겁니까.”(「한말씀만 하소서」 중)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꿈인지 생시인지, 눈을 뜨고 있어도 꿈속 같고, 꿈을 꾸어도 잠든 것 같지 않은 아득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부산에 살고 있는 큰딸이 그를 찾아온다. 아버지에 이어 남동생마저 떠나버린 집에 어머니 홀로 남은 것이 걱정되어 얼마간이라도 부산의 집으로 모시기로 한 것이다. 곡기를 끊는 심정으로 몇 날 며칠 끼니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한 상태였다. 부산행 열차 시간에 맞춰 급히 기차역의 계단을 내려가다 그만 두 다리가 휘청였다. 순간 계단에서 발을 헛디디지 않으려고 반사적으로 두 손이 계단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우르르 오르내리는 사람들 사이로 발아래 계단이 활처럼 휘면서 맹렬한 속도로 달려드는 것 같은 공포감이 느껴졌던 것이다.

‘죽고 싶다고 내내 절규했던 나의 속마음은 얼마나 간사하고 위선적이었던가!’

내 자식보다 못한 남의 자식을 보며 겉으로는 위로를 건넸지만 속으로는 잘난체했던 지난날. 잘난 이를 보면 입에 발린 축하를 건네며 실상으로는 ‘기껏 저 정도 일에 기뻐하다니 얼마나 불쌍한가’하는 생각으로 혀를 찼던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하느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게 교만이라는데 그래서 이런 벌을 받는 것일까?

그때 이해인 수녀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마음도 추스를 겸 기간이 얼마가 되든 상관없으니 원하는 대로 수녀원에서 지내보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박완서는 광안리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성 베네딕도 수녀원’으로 향한다.




작가 박완서(정혜 엘리사벳, 1931~2011)

1931년 현재 개성 인근의 경기도 개풍군에서 출생하여 일곱 살에 서울로 이주. 1950년 서울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하였으나 곧 한국전쟁이 발발해 학업을 중단하였다. 전쟁 중에 미8군 PX에서 일하며 화가 박수근을 만나게 되고 훗날 박수근을 소재로 한 소설 「나목」으로 ‘여성동아’ 장편 소설 공모전에 입상하며 등단하였다. 1970년 박완서 나이 40세 때의 일이다. 1984년 ‘정혜 엘리사벳’이라는 세례명으로 천주교 세례를 받았다. 1988년 남편과 아들을 잇따라 잃는 아픔을 겪었다. 이때의 절망과 고통을 일기 형식으로 엮어낸 묵상집이 「한 말씀만 하소서」다. 등단 이후 40여 년간 끊임없는 작품 활동으로 660여 편의 에세이를 비롯해 80여 편의 단편과 15편의 장편소설, 동화, 산문집, 콩트집 등 다양한 분야의 작품집을 남겼다. 여러 작품에서 종교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으며 솔직하고 깊이 있는 묵상집은 종교를 넘어 비종교인에게도 감동을 전했다. 전쟁과 삶, 억압받는 여성 등 다양한 사회 문제를 때로는 날카롭게 꼬집고 때로는 따스한 문체로 그려내어 사후 10여 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한국인이 사랑하는 작가로 손꼽힌다. 생전 이상문학상·현대문학상·동인문학상·만해문학상·황순원문학상·호암문학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사후에 정부는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였다.

 


정혜린 클라라(프리랜서 작가)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가톨릭평화신문 공동기획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6-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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