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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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진단] 자기 돌봄이 필요한 시대

한정란 (베로니카, 한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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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헌법재판소는 태아 성별 고지를 금지한 의료법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며 부모가 태아의 성별을 알 권리를 보장했다. 그동안 성별 고지를 막아온 배경에는 오랜 남아선호 문화가 있었다. 상속이나 제사와 같은 중요한 집안일을 아들, 특히 장남에게 의존하는 전통은 자연스럽게 아들을 선호하는 문화로 이어졌다. 딸은 결혼과 동시에 다른 집안의 사람이 되는 ‘출가외인’으로 여겨진 반면, 아들은 재산을 상속받고 부모의 노후를 책임지는 역할을 맡았다. 성경에서도 ‘장자권’은 두 몫의 상속권과 영적 통치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제는 아들을 얻을 때까지 아이를 낳는 부모도, 노후를 자식에게만 의지하는 부모도 찾아보기 어렵다. 2023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자녀와 동거를 희망하는 비율은 1/4에 불과했으며, 그마저도 ‘장남’(19.0)보다는 ‘형편이 되는 자녀’(42.3)나 ‘마음이 맞는 자녀’(24.9)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노인들 스스로 장남이나 아들에게 의지하는 노후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았음을 보여준다. 실제 노인 절반 이상이 부부만 함께 살고, 1/3은 홀로 살고 있다. 그리고 합계출산율이 0.7~0.8명대에 불과한 추세가 지속되면 미래 노인세대의 현실은 더욱 가혹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듯 최근 ‘자기 돌봄(self-care)’이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기대수명이 늘어나면서 노년의 시간이 길어지고, 자녀나 가족이 아닌 스스로 노후를 돌봐야 하는 시대에 자기 돌봄은 필수적이다. 자기 돌봄은 단순히 자신을 챙기는 수준을 넘어 삶의 전 영역에서 건강과 안녕을 추구하며, 질병 발생 시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생활 태도를 의미한다. 인생의 절반 가까이를 노년으로 살아가야 하는 오늘날, 자기 돌봄은 자녀나 국가가 대신해 줄 수 없는 개인의 역량이다.

자기 돌봄은 크게 네 가지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신체적 돌봄’으로, 적절한 영양 섭취와 규칙적인 운동, 충분한 수면을 통해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다. 둘째는 ‘심리 정서적 돌봄’으로, 충분한 휴식과 적극적인 여가활동을 통해 내면의 긴장을 해소하고 정서적 안정을 회복하는 것이다. 셋째는 ‘관계적 돌봄’으로, 가족을 넘어 이웃과 공동체 안에서 지지적인 관계를 구축함으로써 고립되지 않고 사회적 유대감을 유지하는 것이다.

마지막은 ‘영적 자기 돌봄’으로, 기도와 명상, 자기 성찰,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내적 평안을 찾고, 자신의 가치와 신념에 맞는 삶을 실천하는 것이다. 나아가 하느님께서 부여하신 삶의 목적을 재발견하고 그 신념에 따라 살아가는 실천적 태도를 포함한다. 영적 자기 돌봄은 신앙인뿐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가장 본질적이고 중요한 돌봄의 영역이다.

독거노인 200만 명을 넘어선 100세 시대, 우리는 더 이상 자녀나 타인에게 기대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를 돌보고 책임지는 삶을 준비해야 한다. 자기 돌봄의 여정은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며 절대자 하느님의 자비에 기대는 데서 시작된다. 신앙 안에서 나를 정성껏 돌보는 일은 내 안에 머무시는 주님을 소중히 모시는 일과 같다. 나의 신앙적 가치와 삶의 태도를 점검하며,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진정한 자기 돌봄,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맞이할 노년을 복된 시간으로 바꾸는 가장 확실한 열쇠다.

한정란 베로니카(한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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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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