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목점과 염색업을 하는 부유한 상인 집안에 태어나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던 프란치스코에게 세상의 유혹을 떨쳐버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프란치스코가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 것은, 당시 황제를 지지했던 도시 페루자와 교황을 지지했던 아시시의 전쟁에 참전하면서부터입니다.
어린 시절 라틴어도 배우면서 남부러울 것 없이 성장한 프란치스코였지만 상인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중인이었지 귀족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그 당시 신분 상승의 유일한 방법은 전쟁터에서 공을 세워 기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1202년 부푼 꿈을 안고 페루자와의 전쟁에 참전하였지만, 포로로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인생의 밑바닥을 보았을 것입니다.
지하 감옥 안에서 1년 가까이 갇혀 있던 기간은 고통과 죽음이라는 인간의 참담하고 나약한 모습을 직접적으로 체험한 시간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이 순간 처음 밖으로 보이는 ‘나’가 아닌 내부의 자신에게 질문합니다. ‘나는 왜 세상에 태어났는가? 진정한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하지만 아직도 프란치스코는 답을 찾을 수가 없었고 귀족이 되고 싶은 열망을 끊어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도움으로 집에 돌아온 프란치스코는 새로운 꿈을 찾아 예루살렘으로 떠나기 위해 십자군들이 모이는 아시시 근처 도시 스폴레토로 향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잠을 자다 꿈꾸게 되는데 주님께서는 더 많이 베풀어줄 주인을 섬기지 않고 왜 종에게 자신의 삶을 바치려고 하는지 질문하십니다. 그러면서 다시 고향인 아시시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프란치스코는 꿈에서 들었던 음성대로 기사가 되겠다는 욕심을 포기하고 아시시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 꿈은 하느님이 프란치스코를 부르시는 중요한 첫 번째 때, 카이로스의 시간이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시간에 대한 개념으로 아이온(α??ν), 크로노스(χρ?νο?) 그리고 카이로스(καιρ??). 세 가지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아이온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영원성을 나타내는 신의 시간입니다. 크로노스는 양적인 개념으로 1년, 1시간, 1분 등 우리가 측정할 수 있는 세상의 시간입니다. 카이로스는 질적인 개념으로 측정할 수 없는 순간이나 때를 가리키는 시간입니다. 아이온은 사람의 능력으로는 만날 수 없는 영역이고, 크로노스는 유한한 존재로서 우리가 살고 있는 영역이며, 카이로스는 사람의 힘으로 만날 수는 없지만 절대자의 개입으로 아이온과 크로노스를 이어주어 새로운 순간을 경험하게 해주는 때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카이로스는 하느님의 개입으로 이루어지는 강요와 명령이 아니라 그분의 자비하심의 시작이고 그 완성의 때는 오로지 ‘사람의 응답’에만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올바른 선택을 위해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깨어있는 이성과 믿음인 것입니다. 기사가 되겠다는 욕심을 포기하고 아시시로 돌아가는 모습에서 프란치스코의 온전한 선택과 믿음, 그리고 주님의 부르심에서 완성된 충만한 시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프란치스코에게 무작정 아시시로 돌려보낸 것이 아니라 세상과 싸울 무기를 주셨습니다. 꿈속 예수님의 손이 향한 궁전 안에 있는 무기들은 사람을 죽이는 칼과 창이 아니라 악으로부터 평화를 지키는 십자 표시가 들어간 방패들이었습니다. 하늘나라를 위한 싸움의 무기는 세상의 칼이 아니라 믿음의 방패임을 프란치스코에게 명확하게 알려주고 계십니다.
“우리의 전투 상대는 인간이 아니라, 권세와 권력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령들입니다. 그러므로 악한 날에 그들에게 대항할 수 있도록, 그리고 모든 채비를 마치고서 그들에게 맞설 수 있도록,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한 무장을 갖추십시오. 그리하여 진리로 허리에 띠를 두르고 의로움의 갑옷을 입고 굳건히 서십시오. 발에는 평화의 복음을 위한 준비의 신을 신으십시오. 무엇보다도 믿음의 방패를 잡으십시오.”(에페 6,12-16)
고향으로 돌아온 프란치스코는 아시시 성 밖에 있는 허물어져 가던 다미아노 경당에서 하느님의 뜻을 청하며 기도하게 됩니다. 제대 위엔 예수님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 이콘 십자가가 있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영혼의 안식을 느끼며 십자가를 응시하였습니다. 그 순간 십자가로부터 울리는 음성을 듣게 됩니다.
“프란치스코야, 가서 허물어져 가는 나의 집을 고쳐세워라.”
이 말씀을 들은 프란치스코는 처음엔 문자적으로만 알아들어 자신이 기도하고 있는 반쯤 허물어진 다미아노 경당을 수리하라는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하지만 허물어져 가는 집을 고쳐 세우라는 것은 작은 성전인 개인의 회개와 큰 성전인 교회의 회개를 말씀하시는 것임을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프란치스코에게 회개하라는 이 말씀은 과거의 말씀이 아닙니다. 이 그림 <십자가의 기적>을 보고 있는 지금 그리고 여기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십자가 앞으로 몸이 기울어져 다가가는 프란치스코의 모습과 놀란 얼굴, 그리고 벌어진 손은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으로 우리 모두를 회개의 시간으로 초대하고 있습니다.
글 _ 이관술 요한 마리아 비안네(성지순례 가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