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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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기, 다시 쓰는 가족] 자녀를 위한 기도 “하느님의 영광은 살아 있는 인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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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로 살아오며, 가톨릭 기도서에 나오는 ‘자녀를 위한 기도’를 바쳐 왔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도, 조금 자랐을 때도, 제 마음이 불안할 때도 이 기도를 바쳤습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자녀를 길러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소서.”


어느 순간부터 이 기도문의 전반부에 있는 이 문장이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자녀를 길러’라는 구절에서, ‘과연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고 하느님께 맡겨야 할 일은 무엇일까’ 하는 질문이 마음에 자리 잡았습니다.


아버지가 되고 나서 제가 ‘아이를 기른다’고 말해 왔습니다. 실제로 아내가 아이를 낳았지만 아버지인 제가 먹이고, 가르치는 일에 동참했으니까요. 두 딸의 아버지로서 꽤 오랫동안 아주 자연스럽게 ‘제가 기르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정말로 내가 이 아이들을 키운 것일까, 아이들과 함께 그 시간을 지나온 것뿐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아이들의 성장 과정에서 제가 분명히 해냈다고 말할 수 있는 일보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서성였던 순간이 훨씬 더 많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아플 때, 힘든 일을 겪을 때, 불안해하며 잠들지 못하던 밤들 앞에서 저는 준비된 아버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럴듯한 조언을 건네지도 못했고, 상황을 단번에 해결해 주지도 못했습니다. 그때 저는 그저 아이들 곁에서 함께 머무르기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자라 있었습니다. 어느 날 문득, 자기 생각을 갖고 자기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이 가고 있는 이 길은, 애초에 내가 대신 걸어줄 순 없는 길이었구나!’ 하는 깨달음 말입니다.


아내는 어릴 적 자주 넘어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누구도 대신 걸어 주지 않았고, 넘어지지 않게 미리 막아 주지도 않았답니다. 다만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을 뿐이었다고요. 그 짧은 이야기가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자녀를 기른다’는 것은 아이가 가야 할 길을 앞장서서 열어준다거나 대신 그 길을 걸어 준다기보다 하느님께서 이미 시작하신 길이 드러나도록 아이 곁에 머무는 일일 것입니다.


기도문은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소서.” 이 문장은 자칫 아이가 무언가 대단한 일을 이루기를 바라는 말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초대 교회의 신학자였던 성 이레네오는 “하느님의 영광은 살아 있는 인간이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삶이 특별한 성취를 이루는 삶이 아니라, 내가 나답게,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내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삶이라는 뜻으로 들립니다.


가족이란 서로의 삶을 대신 살아 주는 공동체가 아니라, 가족구성원 각자가 자기답게 살아도 괜찮다고, 하느님 앞에서 자기 삶을 살아도 괜찮다고 조용히 말해 주는 관계일 것입니다. 자녀를 위한 기도의 전반부는, 부모에게 더 많은 책임을 지우는 말이 아니라 오히려 짐을 내려놓게 하는 기도처럼 들립니다. 아이의 삶을 대신 완성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 하느님께서 이미 그 삶 안에서 일하고 계신다는 믿음 말입니다. 이 기도는 응답을 서두르지 않은 채, 우리 삶 한가운데 놓여 있습니다.



글 _ 유형선 아우구스티노(가족인문학연구소 공동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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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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