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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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타상의 기적과 양심의 목소리 간직한 성모 순례지 베텐

[중세 전문가의 간 김에 순례] 60. 독일 베텐 성모 칠고 순례 성당과 은총 소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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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텐 성모 칠고 순례 성지. 매년 10만 명이 찾는 뮌스터교구의 대표 성모 순례지로 꼽힌다. 바로크 양식의 성모 칠고 순례 성당(왼쪽), 안토니오 소성당(가운데), 은총 소성당(오른쪽)과 순례자의 집으로 구성되어 있다. 성모 칠고 순례 성당은 1977년 바오로 6세 교황에 의해 준대성전으로 지정됐으며, 현재 뮌스터교구 베텐 본당으로 순례 사목을 병행하고 있다. 출처=장크트 마리엔 본당


한국 교회는 ‘하느님의 종’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의 시복시성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 성장에 대한 헌신, 군부 독재정권 시기 민주주의 정착과 인권 증진, 늘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벗’이 되고자 한 삶 때문일 겁니다.

김수환 추기경이 유학했던 독일 뮌스터에도 비슷한 삶의 궤적을 보여준 목자가 있습니다. 뮌스터교구장이었던 클레멘스 아우구스트 폰 갈렌 추기경으로, 나치 정권 시기 교회의 목자로서 사회적 약자 편에 섰던 분입니다. ‘뮌스터의 사자(獅子)’로 불린 그는 2005년 복자품에 올랐고, 시성 절차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목자의 기억이 서려 있는 독일 북부의 성모 순례지인 베텐에 가보려 합니다.


드라이브 인스루가 이뤄지는 성모 순례지

베텐 성모 순례지는 니더작센주의 클로펜부르크의 외곽에 있습니다. 클로펜부르크는 뮌스터에서 브레멘으로 가는 아우토반(A1)에서 가까워 접근이 쉽습니다. 7월 25일 성 크리스토포로 기념일에는 차량 순례가 이뤄지기도 합니다.

이 일대는 카롤루스 대제의 작센 전쟁 후 작센족 선교 거점과 본당망이 형성된 경계였습니다. 선교 변방이 경계의 요새 도시를 거쳐 오늘날 성모 순례지로 이어진 셈입니다.

북독일 특유의 넓은 평원과 완만한 숲길을 지나 동네로 들어가면 집들 사이로 순례지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순례 성당, 은총 소성당, 안토니오 소성당이 몇 걸음 거리에 모여있지요. 거대한 규모의 순례지를 기대했다면 모르고 지나칠 만큼 이곳은 아담합니다. 하지만 해마다 10만 명이 순례하는 뮌스터 교구의 중요한 성모 성지 중 하나입니다.

 
은총 소성당 기적의 피에타상(111cm). 소성당은 17세기 중반 뮌스터의 크리스토프 베르나르트 폰 갈렌 제후 주교의 지원을 받아 클로펜부르크 관할 구역의 관리인 칼 오트마르 폰 그로타우스에 의해 건축되었다. 19세기 중반만 해도 평평한 나무 천장에 초가지붕이었지만, 1975년에 지금 모습으로 대대적으로 개축했다.


죄스테강에서 발견된 피에타상

성담에 따르면 1380~1400년경 피에타상이 죄스테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모습으로 발견됐습니다. 사람들은 이를 기적으로 여기고 피에타상을 수레에 싣고 레테 가문의 소성당으로 옮기려 했습니다. 그런데 베텐 마을 어귀에서 수레를 끌던 말이 더는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이를 표징으로 받아들이고, 이 자리에 소성당을 세워 피에타상을 모셨습니다. 이후로 성모님의 도움과 위로를 청하는 이들이 모여들었다고 합니다.

은총상은 붉은 벽돌에 슬레이트 지붕으로 된 은총 소성당 제대에 모셔져 있습니다. 이 소성당은 1669년 뮌스터의 크리스토프 베르나르트 폰 갈렌 제후 주교가 봉헌한 곳입니다. 폰 갈렌 추기경과 같은 가문일 겁니다.

소성당은 30명 남짓 앉을 수 있는 작은 공간입니다. 제대 쪽 끝은 완전히 반원형이 아니라 팔각형의 8면 가운데 3면을 이어붙인 형태입니다. 직선으로 꺾인 벽면으로 시선이 제대에 집중되는데, 중세·근세 교회 건축에서 자주 쓰인 형태입니다. 베텐의 피에타상은 고통을 과장하기보다 자애로운 표정이 인상적입니다.

 
베텐 성모 칠고 순례 성당. 주 제대의 모자이크 벽화는 나치 집권기인 1942년 ‘은총의 보좌’를 주제로 제작됐다. 제대 앞면에 순교자였던 성 베누스토, 성 그라타, 성 마리아 고레티, 성 비오 10세 교황, 성 보니파시오의 성해가 담긴 성유물함이 안치되어 있다.


초인플레이션을 견디고 세운 순례 성당

순례 성당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급격히 늘어난 순례자들을 위해 1922~1929년에 새로 지어 봉헌한 건물입니다. 전후 독일은 막대한 배상금과 경제 붕괴로 일상이 무너진 때였습니다. 지폐를 땔감으로 쓰는 게 더 나았던 초인플레이션 속에서도 공사가 이어진 건 신자들의 성모님에 대한 남다른 신심 덕분이었을 겁니다.

성당 안은 외관과 달리 정돈된 분위기입니다. 본당과 후진, 교차랑은 아치형 천장으로 이어지고, 교차부 위로 돔이 솟아 공간의 중심을 잡고 있습니다. 시선은 제단 뒤 별무늬가 흩어진 금빛 바탕 위로 곧게 솟은 십자가를 형상화한 모자이크로 향합니다. 1942년에 제작된 벽화인데, 가장자리의 “때가 오고 있으니 바로 지금입니다”(요한 5,25)란 문구에서 전쟁의 불안 속에서도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약속에 매달리려 했던 마음이 읽힙니다.

 
순례 성당의 지하 소성당과 복자 클레멘스 아우구스트 폰 갈렌 성유물함(박스). 전쟁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공간으로 제2차 세계대전으로 사망·실종된 올덴부르크 지역 본당 신자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주교 지팡이 모양의 성유물함에는 추기경의 축복을 뜻하는 오른손 성해 일부가 모셔져 있고, “칭찬에도, 두려움에도 흔들리지 않고”란 사목 표어가 쓰여있다.


저항의 언어가 순례의 침묵과 맞닿는 곳

이곳은 복자 폰 갈렌 추기경에게 각별한 장소입니다. 그는 인근 딩클라게 출신으로, 이 지역 대표 성모 성지를 삶의 기억 속에 두고 살았습니다. 교구장으로 착좌한 후인 1934년 8월 12일 베텐 남성 순례를 주도했고, 2만 5000명이 참가한 이 자리에서 ‘게르만 신앙’으로 포장된 새 우상 숭배와 생명을 경시하는 나치 폭력에 맞서 성모님의 도움으로 양심의 기준을 다시 세우자고 촉구했습니다.

그가 첫미사 때부터 사용하던 성작을 이곳에 유증한 것도 이런 인연 때문일 겁니다. 지하 소성당에는 그의 성해 일부가 모셔져 있습니다. 주교 지팡이를 닮은 성유물함은 강론대에서 끝나지 않는 사목자의 책임을 말하는 듯합니다.

1937년 비오 11세의 회칙 「절박한 우려를 담아」는 나치의 검열을 피하고자 예외적으로 독일어로 발표되어, 독일 전역의 신자들에게 긴급히 전달되었습니다. 국가·민족·인종을 하느님 자리로 끌어올리는 우상화에 대한 경고, 그리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양심으로 판단하라는 촉구가 핵심이었습니다. 폰 갈렌은 그 가르침에 충실했고, 이후에도 침묵하지 않았습니다. 나치 당국이 그를 쉽게 체포하지 못한 배경에는, 그를 ‘순교자’로 만들면 더 큰 반발을 부를 수 있다는 계산이 있었던 듯합니다. 1946년 선종한 그는 전후 독일 가톨릭의 양심으로 기억되었고, 2005년 10월 9일 복자품에 올랐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이 뮌스터에서 배운 사회 교리의 언어와, 폰 갈렌 추기경이 강론에서 보여준 양심의 말은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았어도 한곳으로 수렴되는 듯합니다. ‘거룩함’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극단으로 기우는 시대, 말해야 할 때 말하고, 지켜야 할 것은 지키는 용기임을 베텐은 과장 없이 보여주는 듯합니다.

 


순례 팁

※ 뮌스터, 브레멘에서 클로펜부르크까지 각각 1시간 10분, 50분 소요. 기차로는 클로펜부르크역까지 와서 버스로 환승(9정거장)

※ 미사 전례 : 주일 및 대축일 10:30, 평일 08:00(화·목), 8:30(월), 10:00(화), 19:00(수·금·토). 순례자를 위한 레스토랑, 성물방, 피정의 집이 있다.

※ 혼자 가시기 힘든 분을 위해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에서 마련한 2026 유럽 수도원 성지 순례. 문의 및 신청: 분도출판사, 010-5577-3605(문자)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6-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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