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주일은 ‘하느님의 말씀 주일’이면서 ‘해외 원조 주일’이다. 한국 가톨릭교회는 1992년 주교회의 추계 정기총회를 통해 힘들고 고통받는 이웃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촉구하고자 오늘의 2차 헌금을 해외 원조 기금으로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국경과 민족, 문화와 종교를 넘어 모든 인류가 하느님 안에서 한 형제자매임을 고백하며, 특히 개발도상국과 분쟁·재난 지역에 있는 이웃들을 위한 기도와 실질적인 도움을 요청한다.
핵심은 단순한 동정이나 일회성 시혜가 아니다. 문제를 연대(solidarity)와 공동 책임의 차원에서 바라보도록 초대하는 데 있다. 이는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라는 복음을 삶으로 실천하는 길이며, 부유한 교회와 가난한 교회가 서로 돕고 연결되어 있음을 체험함으로써 ‘보편 교회의 일치’를 살아내는 방식이다.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 신자로서 보다 정의로운 세상을 향한 책임을 자각하게 하는 것 또한 해외 원조 주일의 중요한 목적이다.
세속적으로 부유한 이들이 가난한 이들을 일방적으로 돕는 날도 아니다. 주님을 같이 믿는 형제자매들에게 주님의 뜻으로 도움의 손길을 내밀 때, 그들이 하느님께 간절히 바쳐온 기도가 현실이 된다. 그리고 그들의 깊어진 신앙과 감사의 기도는 주님 안에서 우리 역시 함께 받는 숨겨진 선물이 된다. 종교와 문화, 인종이 다른 이들에게 건네는 작은 정성이 그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작은 기쁨이라도 채워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보답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가 흔히 듣는 ‘레퀴엠(Requiem)’은 죽은 이를 위한 음악이다. 레퀴엠은 가톨릭 장례미사에서 불리는 통상문과 고유문을 바탕으로 한 음악 형식을 말한다.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모차르트의 ‘레퀴엠’이다. 비밀스러운 작곡 위촉과 작곡가의 비극적인 죽음이라는 드라마틱한 배경 속에서 탄생한 이 작품은 미완으로 남은 부분을 제자 쥐쓰마이어가 완성했음에도 역사상 최고의 레퀴엠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다.
모차르트의 레퀴엠과 쌍벽을 이루는 작품이 바로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이다. 라틴어 대신 독일어 성경의 가사를 사용한 이 작품은 다른 레퀴엠과 달리 죽은 이를 위한 음악이라기보다 고통받는 살아있는 이들을 위한 공감과 위로를 담고 있다. 브람스는 인간의 상실과 슬픔 앞에서 심판·저주·공포의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음악의 시작과 끝을 모두 살아있는 이들을 향한 위로로 채웠다.
브람스의 음악은 흔히 절대음악, 낭만적인 선율, 풍부한 화성, 그리고 클라라 슈만과의 길고 열렬한 사랑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그의 내면에는 언제나 힘든 이웃에 대한 깊은 관심과 배려가 자리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죽음에서 비롯된 개인적 상실을 출발점으로 삼았지만, 그는 자선을 ‘시혜’나 ‘공덕’이 아니라 고통받는 이 곁에 함께 머무는 공감과 연대로 재정의했다. 브람스 자신이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본질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냈다고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카라얀이 지휘하는 ‘독일 레퀴엠’
//youtu.be/jeCtv_2Zgu0?si=ne5RIvVvjttEXK84
해외 원조 주일은 “우리가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를 묻는 날이 아니라 “우리는 얼마나 나누고 있는가”를 묻는 날임을 상기하자.
작곡가 류재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