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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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 해마다 배추 200포기·김장 재료 봉헌

금융기관 지점장서 농부로 변신해 나눔 실천하는 이승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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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가까이 정성껏 길러온 배추와 무, 쪽파 등을 기부해오고 있는 이승조씨.


가을걷이가 한참 지난 경기도 안산의 한 들판. 이승조(베네딕토, 66)씨의 저온 창고에는 배추와 갓 담근 김장김치가 저장돼 있다. 농장 한편에는 그가 직접 수확한 쌀이 놓여있다. 이씨는 지난 20년간 해마다 200포기에 가까운 배추를 정성껏 길러 어려운 이웃을 위한 김장 재료로 봉헌해왔다. 올해도 그가 정성으로 키운 배추들이 김장 재료에 버무려져 지역 사회에 따뜻한 온기를 전했다.

이씨는 안산에서만 14대째 살고 있는 자타공인 ‘안산 토박이’다. 그는 금융기관 지점장까지 지내며 19년간 금융계에서 탄탄대로를 걸었지만, 2002년 금융산업 구조 개편의 파고를 겪으며 정든 직장을 떠나게 됐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고향을 한 번도 떠나본 적이 없어요. 직장이 멀어도 안산에서 출퇴근했죠.”

그는 퇴직 후 본격적으로 농사일을 시작했다. 21살 어린 나이에 부모를 모두 여의고 홀로 서야 했던 그에게 흙은 정직한 보답을 내어주는 마음의 안식처였다. 1981년 세례를 받은 그는 금융기관 재직 시절부터 ‘소득의 십일조’를 항상 봉헌해왔다. 본당을 옮겨 다닐 때마다 신축 기금을 봉헌하는 것은 물론 교무금도 거르지 않았다.

농사를 제대로 시작한 그는 배추를 통해 나눔의 삶을 확장했다. 수원교구 고잔본당 신자인 그는 인근 본오동본당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 전진구(미카엘) 회장의 권유로 배추 기부를 시작했다. 처음엔 소박했던 나눔이 해를 거듭하며 규모가 커졌다. 이제는 직접 재배한 배추뿐만 아니라 김칫소에 들어가는 무·갓·쪽파 등 1000포기 분량의 김장 재료를 기부하고 있다. 고춧가루와 새우젓을 제외한 거의 모든 채소를 그가 책임지고 있는 셈이다.

“영하로 기온이 떨어진다는 예보가 있으면 밤잠을 설쳐요. 무는 한 번 얼면 버려야 하거든요. 추위가 온다고 하면 보온 비닐로 덮어 놓고, 또 걷어내기를 반복합니다. ‘내가 지금 뭐하는 건가?’ 싶을 때도 있지만, 그 김치를 맛있게 드실 어르신들을 생각하면 멈출 수가 없어요. 미리 뽑아놓으면 맛이 떨어지고, 무를 따로 보관할 공간이나 일손도 부족하거든요. 실어 나를 차량은 더더욱 없고요.”

그의 1.2톤 트럭은 김장철만 되면 성당과 밭을 오가는 ‘사랑의 전령사’가 된다. 직접 기른 배추가 부족할 때는 선후배 농민들에게 수소문해 질 좋은 배추를 사다가 나르기도 한다. 농작물을 기부하는 일은 단순히 돈을 기부하는 것과 다르게 몸이 고생스럽다. 때로는 애써 키운 배추를 등산객이 몰래 뽑아가 속상할 때도 있다.

십일조를 신앙인의 의무라 여겨온 그에게 배추 기부는 어느덧 멈출 수 없는 습관이 됐다. 전진구 회장이 “형, 내년에도 도와주실 거죠?”라고 부탁해온 세월이 벌써 20년이다. 그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그리고 농기계가 움직이는 한 이 일을 계속할 생각이다.

“나눔은 특별한 자랑이 아니라 신앙인의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해요. ‘하느님이 갚아주시겠지’라는 보상은 기대하지 않아요. 맛있게 담근 김치를 배달할 때 좋아하시는 독거 어르신을 보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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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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