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단 카리타스 관계자들이 전쟁과 기후 재난으로 식량·물 부족으로 고통받고 있는 이들을 위해 긴급 지원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한국카리타스인터내셔널 제공
세계 28개국서 54개 해외 원조 사업
전쟁·분쟁·자연재해 지역 우선 지원
전체 지원액 절반 아시아 지역에 전해
한국카리타스인터내셔널이 2025년 한 해 동안 전 세계 28개국에서 54개 해외 원조 사업을 펼치며 총 50억 7000여만 원을 지원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1993년 ‘해외 원조 주일’이 제정된 이래 연간 가장 큰 지원 규모다. 전 세계가 전쟁과 기후위기에 신음하고, 우리 사회 역시 고물가와 실업난 속에 어려움이 적지 않다. 그런 가운데 신자들과 함께 맺은 열매이자 한국 교회가 지구촌을 향해 지닌 연대 정신의 결과이기도 하다. ‘제34차 해외 원조 주일’(25일)을 맞아 한국 카리타스가 지난 한 해 동안 전 세계에 전한 도움의 여정을 되돌아보고, 올해 지원 계획도 들어봤다.
카리타스 봉사자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배고픔에 지친 현지 아이들을 위한 분유를 나눠주고 있다. 한국카리타스인터내셔널 제공
지구촌 아픔에 닿은 온정의 손길
현지 NGO ‘움 살라무나 협회’가 운영하고 있는 가자지구 이즈디하르 알 아와르(Izdihar Al-Awwar) 센터는 전쟁 속 가장 취약한 환경에 있는 장애 아이들과 어머니들에게 다시 꿈꿀 수 있게 하는 안식처다. 팔레스타인 소녀 니마는 지체장애로 걷지도 말하지도 못한다. 수년간 이어진 폭격 속에 집과 더불어 아버지마저 잃었다. 언제 생명을 잃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모녀에게 손을 내민 곳이 바로 이즈디하르 센터다. 센터는 모녀에게 쉴 곳을 제공하고 니마에게 놀이치료를 통한 재활도 지원하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가 예루살렘 카리타스를 통해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2022년 발발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평범한 대학생이던 우크라이나 청년 올렉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놨다. 러시아군 점령 지대에 살았던 올렉은 어느 날 길을 가다 러시아 군인들에게 체포됐고, 이후 오랜 노역과 고문·성폭력에 시달렸다. 그는 포로 교환을 통해 고국으로 귀환할 수 있었지만, 몸과 마음에 입은 극심한 상처로 힘겹게 살고 있다. 영혼까지 피폐해진 올렉에게 손길을 내민 것은 현지 카리타스 소속 심리상담사였다. 올렉은 상담을 통해 조금씩 용기를 되찾았다. 지금은 자신과 같은 상처를 입은 이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며 지원에 앞장서고 있다.
이 이야기들은 지난해 한국카리타스인터내셔널이 전 세계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펼친 지원·연대의 결과다. 한국 카리타스는 전쟁과 기후위기로 당장 생명의 위협을 받는 이들을 돕고, ‘전쟁 후의 전쟁’으로 빈곤의 굴레에 갇힌 난민들을 지원하며 희망을 전하고 있다.
33년간 누적 지원금 825억여 원
2025년 한국카리타스인터내셔널은 ‘해외 원조 주일’ 제정 이래 처음 연간 해외 원조 지원금 50억 원 규모를 달성했다. 한국 카리타스의 지난 33년간 누적 해외 원조 지원금은 825억여 원에 이른다.
2025년 해외 원조 사업은 △긴급구호 △개발협력 두 분야로 추진됐다. 긴급구호 분야에서는 미얀마 강진과 필리핀 태풍 피해, 우크라이나 전쟁 피해자 지원 등 33개 사업에 약 23억 6000만 원이 지원됐다. 개발협력 분야를 통해서는 팔레스타인 분쟁 피해 취약 가정 지원 및 미얀마 난민 캠프 청년 리더 양성, 스리랑카 차 농장 지역 여성들의 건강·위생 증진 사업 등 21개 사업에 약 27억 1000만 원이 전해졌다.
전체 지원액의 절반은 아시아 지역에 전해졌다. 미얀마와 필리핀, 태국 국경 지역 등에서는 전쟁과 자연재해로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을 위한 긴급구호와 식량 지원이 이뤄졌다. 중동 지역에서는 가자지구를 중심으로 분쟁 피해 주민들을 돕는 사업이 진행됐고, 아프리카와 유럽, 중남미 지역에서도 취약계층과 난민 지원이 이어졌다.
스리랑카 카리타스의 교육 지원 사업에 참여한 한 어린이가 감사 인사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한국카리타스인터내셔널 제공
전쟁 난민·기후 재난 피해자 지원 앞장
긴급구호 사업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분쟁 피해 및 난민 지원이다. 극심한 전쟁과 분쟁, 불신 속에 최악의 인도적 위기를 겪고 있는 가자지구를 비롯해 우크라이나·미얀마·콩고민주공화국 등에서 피란민들의 생존과 존엄을 지키기 위해 총 10개 사업에 약 12억 1000만 원 규모 지원이 이뤄졌다.
기후위기로 인한 가뭄과 홍수, 지진과 화산 폭발 피해 지역 긴급 지원도 함께 진행됐다. 전쟁 중 발생한 강진으로 고통을 겪은 미얀마를 위해 특별모금 캠페인을 진행, 3억여 원을 현지에 지원했다. 화산 폭발로 피해가 심한 인도네시아에도 지정기탁기금을 통해 긴급지원했다.
전 세계적 식량 위기에 대응하는 긴급 식량 지원사업도 지속했다. 특히 12개국에 파견된 한국 선교사들과 현지 교회들을 통해 동티모르·몽골·미얀마·베트남·인도네시아·모잠비크·에티오피아·케냐·볼리비아 등 18개국 주민과 아동들에게 식량을 제공, 굶주림으로 위협받는 생명을 지키는 데 힘을 보탰다.
구조적 빈곤에 맞선 노력
개발협력 사업은 교육·돌봄·자립을 중심으로 전개됐다. 방글라데시·스리랑카·카메룬·아이티 등에서는 교육 기회가 박탈된 아동과 청소년을 위한 교육·영양 지원을 목표로 10억 7000여만 원 규모의 8개 중·장기 교육 사업이 진행됐다.
키르기스스탄과 몽골에서는 극빈 가정 통합 지원, 자선센터 ‘자비의 집’ 지원 등을 펼치며 청소년들이 빈곤에서 벗어나도록 도왔다. 스리랑카·팔레스타인·우크라이나·이라크에서는 취약계층 여성의 역량강화사업 및 인신매매 피해구조 지원, 전쟁·테러 피해자들을 위해 약 7억 원을 지원, 전쟁 후유증에서 벗어나도록 힘썼다.
한국 카리타스는 또 미얀마·팔레스타인·에콰도르·이라크에서 전쟁 피해 난민 지원과 만성적 기아 문제 해결을 위한 식량 안정사업, 보건위생 증진사업에 약 11억 원을 지원했다. 특히 스리랑카 차 농장에서는 보건 의료·위생 증진 사업을 병행하면서 제대로 일할 환경을 조성하는 데 힘을 쏟았다.
‘무관심의 세계화’ 맞서 이슈 밖 분쟁 지역 ‘선제 지원’ 나설 것”
(재)한국카리타스인터내셔널·(사)한국카리타스협회 사무국장 신동민 신부가 15일 서울 광진구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열린 인터뷰에서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인터뷰 / 한국카리타스인터내셔널 사무국장 신동민 신부
“해외 원조 주일은 단순한 모금의 날이 아니라, 세계 분쟁과 가난의 현실을 교회에 알리는 중요한 날입니다. 한국카리타스인터내셔널은 올해에도 ‘무관심의 세계화’에 맞서 지상에 하느님 나라를 건설할 수 있도록 그늘 속에 있는 이들을 도울 것입니다.”
(재)한국카리타스인터내셔널·(사)한국카리타스협회 사무국장 신동민(사진) 신부는 15일 인터뷰에서 2026년을 맞아 ‘가난한 이들에게 희망을’ 주제 캠페인을 지속하며 더 적극적으로 지구촌 각종 피해 지원과 문제 극복에 나서는 교회가 되겠다고 밝혔다. ‘요청을 기다리는 지원’이 아니라, 이웃을 먼저 찾는 ‘선제 지원’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신 신부는 특히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난 분쟁’에 주목했다. 팔레스타인과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콩고민주공화국·수단·미얀마 등 언론의 관심에서 벗어난 지역 지원까지 모든 이웃에 관심을 지속하겠다는 것이다.
신 신부는 “가속화되는 ‘무관심의 세계화’ 속에 사람들은 이슈 밖으로 밀려난 분쟁 지역과 가난한 이웃들을 더 빨리 잊어가고 있다”며 “코로나19 이후 각국의 이기주의와 패권주의가 강화되며 분쟁과 가난의 악순환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신 신부는 “그렇기에 선제 지원은 교회의 의무”라며 “주님께서 세상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곳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듯이 한국 카리타스는 세상에서 잊힌, 고통이 오래된 곳일수록 관심을 놓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교회는 세상 고통에 침묵할 수 없다”며 “단순히 먹을 것을 주는 차원을 넘어 이웃들이 자립하며 존엄을 지키고 살아갈 기반을 만들어주는 것이 한국 카리타스의 목표”라고 말했다.
신 신부는 “한국 카리타스는 여러분의 사랑을 대행하는 역할을 수행한다”면서 “해외 원조 주일 헌금을 봉헌할 때에도 전 세계인의 생명을 살리는 데 나의 정성이 전해진다는 마음으로 자부심을 갖고 동참해주길 바란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