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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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 피해 신앙 일군 교우촌, ‘가난한 이들’과의 신앙 공동체로 거듭나

[리길재 기자의 공소를 가다] 7. 원주교구 흥업본당 술미공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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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미공소는 조선 왕조 치하 박해 시기 서지교우촌 교우들이 내려와 형성한 유서 깊은 공소이다. 2011년부터 갈거리사랑촌 안에 새로이 마련한 술미공소 입구에는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이신 바뇌의 성모상이 자리하고 있다.
 
술미공소는 조선 왕조 치하 박해 시기 서지교우촌 교우들이 내려와 형성한 유서 깊은 공소이다. 2001년부터 갈거리사랑촌 안에 새로이 마련한 술미공소 입구에는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이신 바뇌의 성모상이 자리하고 있다.


박해 피해 숨어 살다 신앙 자유 얻은 후
산에서 내려와 정착한 유서 깊은 공소

장애인복지시설 ‘갈거리사랑촌’ 내에
공소 건물 신축, 2001년 축복식 거행




사랑촌 가족·신자 구분 없이 함께 신앙 키워원주교구 흥업본당 술미공소는 복자 최해성(요한)·최 비르지타와 함께 원주 부론면 서지교우촌 교우들이 1839년 기해박해를 피해 덕가산 자락에 숨어 살다 1886년 조불수호통상조약으로 신앙의 자유를 얻은 후 산에서 내려와 정착하면서 생긴 유서 깊은 공소다.

‘술미’의 ‘술’은 순우리말로 높고 신성하다는 뜻으로, ‘수리’의 준말이다. ‘미’는 ‘뫼’가 변형된 말이다. 따라서 술미는 높고 신성한 산이라는 뜻으로, 조선 왕조 치하 박해 시기 교우들이 얼마나 깊은 산골짜기에 숨어 살면서 신앙을 지켜왔는지 웅변해준다.



신해박해 고초 후 교우촌 일궈낸 최해성 일가

최해성(1811~1839)과 그의 고모 최 비르지타는 기해박해 때 순교한 최경환(프란치스코) 성인의 친척이다. 최경환 성인은 가경자 최양업(토마스) 신부의 아버지다. 최양업 신부의 증조부 최한일과 그의 동생 최한기가 1787년 한양에서 이존창(루도비코 곤자가)에게 세례를 받았다. 이후 얼마 안 가 최한일은 선종했다. 1791년 신해박해의 고초를 겪은 후 최 신부의 증조모는 12살 외아들 인주와 함께 충청도 홍주 누곡(樓谷), 곧 청양 다락골로 숨어들었다. 그리고 최한기의 가족들은 강원도 홍천으로 피신했다가 지금의 풍수원에 자리 잡았다. 최해성과 최 비르지타는 최한기 가족의 후손이다.

최해성 일가는 풍수원에서 원주 서지로 이주해 교우촌을 일궜다. 최해성은 1839년 박해가 몰아치자 부모와 가족을 배론으로 피신시키고 교회 서적을 가져오려고 집으로 갔다가 체포됐다. 그는 강원 감영으로 끌려가 쇠도리깨질을 당하면서도 배교하지 않았다. 그는 배교할 것과 교우들을 밀고할 것을 강요하는 관장에게 “원주 고을을 다 주신다고 해도 거짓말을 할 수 없고, 하느님을 배반할 수 없습니다”라며 신앙을 증거했다. 이 말을 들은 관장은 살이 너덜너덜해지고 뼈가 튀어나올 정도로 최해성에게 매질을 했다. 최해성은 1839년 9월 6일 참수형을 받고 28세 젊은 나이로 순교했다.

최 비르지타는 최해성과 함께 체포됐다. 그 역시 최해성과 같이 관장에게 “죽는 한이 있더라도 하느님을 배반할 수 없습니다. 남녀노소 막론하고 누가 하느님을 배반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배교를 거부했다. 최 비르지타는 4개월간 옥살이를 하다 교수형으로 56세 나이에 순교했다.



원주 순례길 중 순교 구간에 위치

서지마을은 19세기 말까지 교우촌을 그대로 유지했다. 하지만 기해박해를 계기로 몇몇 교우는 덕가산으로 숨어들어가 화전을 일구고 살다가 신앙의 자유를 얻은 후 술미공소와 대안리공소, 후리사공소를 이루었다. 또 일부는 부론면 장뜰, 숯가마골, 왜가마골, 두둑골로 이주해 그곳에서 신앙생활을 이어갔다.

원주교구는 2022년 총 234㎞에 달하는 순례길 ‘님의 길’을 조성, 개통했다. 박해·순교·세상의 빛을 주제로 한 3개 노선의 ‘님의 길’ 중 순교를 주제로 한 37.8㎞ 구간이 ‘최해성 요한님의 길’이다. 서지마을(교우촌)에서 시작해 원동성당까지 가는 이 순례길에 술미·대안리·후리사 공소가 자리하고 있다.

술미에 교회 인가를 받아 공식으로 공소가 설립된 것은 1957년이다. 대안리공소에서 분리돼 ‘대수리공소’라 했다. 처음에는 공소 건물이 없어 교우 가정에서 주일마다 공소 예절을 했다. 1960년대 대수리 마을에 있는 초가 한 채를 매입해 ‘술미공소’로 이름을 바꾸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공소 건물이 너무 낡고 술미와 대수리가 떨어져 있어서 1983년부터는 두 곳에서 각각 공소 예절을 했다.

 
술미공소는 박해 시기 서지교우촌 마냥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가장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만이 현존하는 곳이다. 술미공소는 미사와 공소 예절, 성경 읽기, 갈거리사랑촌 가족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행한다다.
술미공소 벽면에 장식된 십자가의 길 14처.


장애인복지시설에 공소 건물 봉헌

현재 술미공소는 원주시 흥업면 대안로 738 갈거리사랑촌에 자리하고 있다. 1990년 원주에서 부부의원을 운영하던 곽병은(안토니오)씨가 술미 마을 건너편 갈거리에 장애인복지시설 ‘갈거리사랑촌’을 설립해 운영하기 시작했다. 갈거리사랑촌 가족들이 술미공소에서 공소 예절을 함께하다 10여 년 후 아예 갈거리사랑촌 내에 공소 건물을 신축하고 2001년 김지석 주교 주례로 축복식을 했다. 시설이 너무 낡아 폐가로 방치되어 있던 옛 술미공소는 2013년 일부 수리했으나 지금은 사용하지 않고 있다.

갈거리는 대안3리 술미 마을 앞 동쪽 덕가산 지류와 명봉산 지류가 합류해 대안리와 매지리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곳에 자리한 마을이다. 갈거리 또한 순우리말로 가르다에서 나온 ‘갈’과 장소, 터를 가리키는 ‘거리’가 합쳐진 말이다.

도로에서 다리를 건너야만 술미공소가 있는 갈거리사랑촌으로 들어갈 수 있다. 갈거리사랑촌은 박해 시기 서지교우촌처럼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가장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만이 현존하는 곳이다. 세상에서 가난한 이들을 갈라놓는 곳이 아니라 그들을 세상과 만나게 하고 공존하게 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 갈거리사랑촌 안에 있는 술미공소가 그 만남의 현장이다. 갈거리사랑촌 가족과 술미 신자들, 그리고 이곳을 찾는 누구나 함께 구분 없이 전례 안에서 같은 신앙을 고백한다.

술미공소에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입구에 있는 ‘바뇌의 성모상’이다. 바뇌에서 발현하신 성모 마리아는 당신이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라고 밝히셨다. 성경은 가난한 이들이 “주님을 맞아들일 만한 백성”이라고 한다.(루카 1,17 참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들이 지상에서 누리는 기쁨에 그치지 않고 하늘 나라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셨다.(마태 5장 ‘참행복 선언’ 참조) 술미공소 입구를 지키고 있는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이신 바뇌의 성모상은 하느님을 신뢰하는 가난한 이들이 하느님을 뵙는 참 행복을 누릴 것이라는 주님의 선언이 지금 이 자리에서 실현되고 있음을 웅변하고 있다.

술미공소는 샌드위치 패널로 소박하게 지어졌다. 한 달에 한 번 매월 첫째 주 토요일 오후 4시에 미사가 봉헌되고, 매 주일 오전 8시 30분에 공소 예절이 있다. 장애를 안고 있는 어르신이 대부분인 갈거리사랑촌 가족들은 공소에서 성경 읽기를 하면서 신앙을 키워가고 있다.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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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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