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청년대회 개최지를 가다] 1997 파리 세계청년대회 (3·끝) WYD를 통해 남겨야 하는 것, 사명
1997 파리 WYD가 남긴 신앙 결실
2027 서울 WYD의 이정표가 될 것
복음 전파·미디어 협력 중요성 강조
프랑스 가톨릭방송 KTO 에티엔 로레르 편집국장이 2025년 12월 3일 KTO 본사 자신의 사무실에서 1997 파리 세계청년대회(WYD)에 대한 기억을 나누고 있다.
“부모님 덕분에 가톨릭 신앙이라는 하느님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저를 길러주신 부모님 말입니다. 낳아주신 부모님은 아마 지금도 한국에 계실 겁니다. 저는 생후 6개월에 프랑스 가정에 입양됐습니다. 프랑스인으로 살아왔지만, 한국이라는 뿌리를 잊은 적은 없습니다.
제가 자란 작은 시골 마을에 아시아인은 저희 남매 세 명뿐이었습니다. 저처럼 입양된 누나 두 명과 가정을 이뤘지요.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왔는가’, ‘왜 우리만 다른 사람들과 모습이 다를까?’ 이런 질문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스무 살의 여름, 제 삶은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1997년 파리 세계청년대회(World Youth Day)가 열리던 해였습니다.”
1997년 8월 24일 아침, 훗날 프랑스 가톨릭방송 KTO 편집국장이 된 에티엔 로레르 국장은 파리 롱샴 경마장에서 눈을 떴다. “잠자고 있는 자여, 깨어나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하느님께서 너를 비추어 주시리라~♬” 전날 파리 WYD의 밤샘기도가 이어졌던 드넓은 롱샴 경마장에는 100만 명에 달하는 순례자의 잠을 깨우는 ‘성가 모닝콜’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세계청년대회는 교황과 마지막 날 파견미사로 대미를 장식하기 전날 현장에서 밤샘기도와 신앙 노숙을 하는 ‘비박’을 한다. 그 또한 침낭 속 100만 젊은이들과 성가로 눈을 뜬 것이다. 그 성가를 들으며 그는 말 그대로 내면 깊은 곳에서 진짜 ‘깨어나는’ 경험을 했다고 회상했다.
WYD가 선물한 깨달음, 삶의 전환
“그날 아침, 인종도 문화도 다른 100만 명의 젊은이들과 함께한 그 안에서 다시 깨달았습니다. 모두가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이며, 그분에게서 온 한 형제자매라는 사실을요.”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를 향한 여정에서 역대 WYD 개최지를 찾아 그 열매를 조명하는 cpbc 가톨릭평화방송·평화신문과 2027 서울 WYD 조직위원회 공동기획 ‘개최지를 가다’의 1997 파리 WYD 마지막 편에서는 ‘WYD로 무엇을 남겨야 하는지’ 살펴본다.
신앙 열기가 절정에 달한 WYD 현장은 한 젊은이가 마침내 ‘존재 자체로 사랑받고 있음’을 깨닫게 했다. 로레르 국장은 “교회를 더욱 사랑하고, 하느님 현존을 더욱 증거하며, 그리스도를 전하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면서 WYD에서의 체험이 교계 언론인이 되게 한 계기였다.
로레르 국장은 이후 베르사유교구 라디오 방송국에서 봉사자로 첫발을 내디딘 뒤, 파리대교구의 노트르담 라디오에서 10년간 일했다. 이후 파리 WYD의 유산인 가톨릭 방송국 ‘KTO’ 설립 후 일원이 된 뒤 2014년부터 편집국장으로 가톨릭 프로그램 제작과 소식을 전하는 책임을 맡고 있다.
뤼스티제 추기경이 남기고 싶었던 것
파리 WYD가 남긴 신앙의 가치는 개인의 감동에만 그치지 않았다. 당시 파리대교구장이자 1997 파리 WYD 조직위원장이었던 장 마리 뤼스티제 추기경(1926~2007)이 WYD를 통해 궁극적으로 지향했던 것은 프랑스 교회와 신자들의 변화였다. 추기경은 WYD의 결실이 ‘단 한 번의 대회’만으로 그치지 않으리란 걸 잘 알고 있었다.
뤼스티제 추기경 개인비서를 지낸 낭테르교구장 마티유 루제 주교는 “뤼스티제 추기경님은 젊은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엄청난 열정을 쏟으셨던 분”이라며 “파리 WYD 개최를 끌어내고 대회를 이끄신 추기경님은 이후에도 WYD 정신을 중요하게 여기고 활용하셨다”고 전했다.
프랑스 교회 낭테르교구장 마티유 루제 주교가 2025년 12월 5일 교구 젊은이의 희년 미사를 주례하며 기도하고 있다
기자가 루제 주교를 만난 2025년 12월 5일 파리 근교의 대형 스포츠 경기장에서는 ‘교구 젊은이의 희년’ 미사가 한창이었다. 교구 가톨릭학교 학생 2600명이 아름다운 하모니로 주님을 찬미하고 있었다. 뤼스티제 추기경의 정신에 따라 WYD의 열매가 이어지고 있는 보석 같은 순간이었다. 루제 주교는 “젊은이들은 내면 깊은 곳의 갈증, 즉 본질적인 것을 향한 목마름이 있다”며 “WYD는 단순한 축제가 아닌 매우 영적인 자리”라고 설명했다.
1997년 8월 19일 뤼스티제 추기경은 에펠탑 인근에서 거행된 파리 WYD의 본대회 개막미사 현장에서 이미 깊은 감동에 젖어있었다. 훗날 그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추기경은 이렇게 답했다. “개막미사를 위해 마르스 광장에 도착했을 때, 제대 아래로 젊은이들이 거대한 바다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때 든 생각은 그저 ‘이제 됐다’는 것이었죠. 젊은이들은 응답했고, 앞으로 그들이 교회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이죠.”
프랑스 가톨릭방송 KTO 직원이 영상을 편집하고 있다.
1997 파리 WYD의 ‘살아있는 유산’ KTO
뤼스티제 추기경은 파리 WYD 직후인 1999년 젊은이를 향한 교회 사명을 잇고자 현대적 소통 방식을 채택하는 결단을 하기에 이른다. 프랑스 가톨릭방송국 ‘KTO TV(La Tvision Catholique)’를 설립한 것이다. KTO는 현재 교회 뉴스는 물론, 문헌·교리·교육 관련 프로그램을 활발히 제작·방송하고 있으며, 제작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은 정기 간행물도 발행하고 있다. KTO의 필리핀 드 생피에르 최고 경영자는 “오늘날 인터넷이 매우 발달했지만, 30년 전엔 모든 프랑스 사람이 텔레비전을 봤다”며 “뤼스티제 추기경님은 ‘예수님을 알리고자 한다면, 그들이 소통하는 곳으로 들어가 말해야 한다’고 하셨다”면서 KTO 설립 배경을 전했다.
뤼스티제 추기경은 세계 방방곡곡을 다녔던 인물이다. 그는 미국을 방문했을 때 ‘미디어 시대가 됐다’는 사실을 더욱 깨달았다. 마침 당시 프랑스는 방송국 설립이 자유화돼 다양한 민영방송이 생겨났다. 생피에르 경영자는 “만약 뤼스티제 추기경님께서 지금 시대에 사셨다면, 스마트폰의 다양한 소셜 미디어 플랫폼을 개발해 복음을 전하자고 하셨을 것”이라고 했다. 교회와 젊은이를 연결하는 끈, 즉 파리 WYD의 유산을 잇고 젊은이들이 살아가는 이 시대와 만날 수 있는 미디어의 중요성을 일찍이 꿰뚫어본 것이다.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와서 보아라.”(요한 1,38-39) 파리 WYD의 주제성구다. 로레르 국장은 “가톨릭 미디어는 더 많은 사람이 ‘와서 보고 싶다’는 마음을 갖도록 길을 여는 것”이라며 KTO가 이어온 사명을 전했다.
로레르 국장은 “뤼스티제 추기경님께서 은퇴하실 때쯤 ‘하느님께 영광을 드립니다. 오늘날에 하신 하느님의 놀라운 업적을 저는 보았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셨다”고 돌아봤다. 당시 젊은 기자였던 그는 이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그는 “하느님의 놀라우신 업적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위해 봉사하고, 인생의 계획을 세우면서 선택해나가는 모든 과정에서 드러난다”며 “이런 것들을 발견할 때 교계 기자라는 것이 무척 행복하다”고 했다.
생피에르 경영자는 2027 서울 WYD를 위해 cpbc와도 협력하고 싶다고 전했다. 그는 “서울 WYD를 계기로 같은 미디어 사명을 수행하는 cpbc와 함께한다면 기쁠 것”이라며 “KTO는 2002년 이후 WYD를 생생히 취재해온 만큼 그 경험을 공유할 수 있길 바란다”고 전했다.
프랑스 슈망뇌프 공동체 ‘찬미의 밤’에서 청년들이 서로를 위해 기도해주고 있다.
프랑스 슈망뇌프 공동체 '찬미의 밤'에서 청년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주님을 찬양하고 있다.
청년들의 보금자리, 교회
미디어가 청년들을 위한 소통의 길을 열었다면, 젊은이들은 그 길 위에서 실존적인 만남을 갈구하고 있다. ‘신은 존재하는가’라는 근원적 질문은 여전히 젊은 세대 사이에서 풀리지 않는 화두로 남아있다.
아이나 니씨가 프랑스 슈망뇌프 공동체의 '찬미의 밤'이 끝나고 그리스도교 청년들이 겪는 어려움을 공유해주고 있다.
2025년 12월 2일 파리 가톨릭대학교 가르멜의 성 요셉 성당에서 만난 아이나 니(24)씨는 “지금도 사람들에게 저를 가톨릭 신자라고 소개하면 ‘신은 없다’면서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가 많다”며 “그럴 때마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종교가 터부시되고 있음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프랑스 북부 릴에서 공부하던 시절 기숙사 생활을 하며 슈망뇌프 공동체를 알게된 그는 이 신앙 공동체 안에서 미사와 나눔, 봉사 등을 통해 영적인 목마름을 채워가고 있다.
“누구나 함께할 수 있어요! 종교가 없어도 됩니다!” “외로우신가요? 여기 한 번 와 보실래요?” 이날 저녁 성당 앞에서는 젊은이들이 손팻말을 들고 지나가던 다른 청년들을 불러모았다. 이들은 매주 화요일 오후 8시마다 열리는 슈망뇌프 공동체의 ‘찬미의 밤’에 젊은이들을 초대하고 있다. 신앙을 묻기보다 먼저 초대를 건네는 것이다. 이는 WYD 이후 젊은이들에게 다가가는 프랑스 교회의 방식이다.
프랑스 슈망뇌프 공동체 청소년사목담당인 에마뉘엘 드 랭글 신부가 2025년 12월 2일 '찬양의 밤'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슈망뇌프 공동체 청소년 사목 담당 에마뉘엘 드 랭글 신부는 “‘새로운 길’이라는 뜻의 슈망뇌프 공동체는 교회 일치 운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며 “찬미의 밤에는 가톨릭 청년이 많이 오지만, 종교에 관계없이 모든 청년이 주님을 만날 수 있다”고 소개했다.
찬미의 밤에는 매주 100명 내외의 젊은이가 참여하고 있다. 주님을 찬하고 내면 깊은 곳의 고민을 털어놓으며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 시간만큼은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오직 예수님 성화를 묵상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가볍게 몸을 흔들며 춤을 추기도 한다. 예수님과 만나고 대화하는 저마다의 방식을 청년들 서로가 존중하는 시간이다.
랭글 신부는 “프랑스 다른 지역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유학 온 청년들도 많이 찾는다”며 “학생들은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영적으로 안식과 조언을 갈망하는데, 여기에 공동체가 함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슈망뇌프 공동체 외에도 프랑스 교회에서는 각 교구와 다양한 단체가 이처럼 젊은이들을 위한 활동을 활성화하고 있다”고 했다.
프랑스 교회는 이렇게 파리 WYD 이후에도 젊은이들을 계속 품고 있었다. 이러한 노력 덕분인지 최근 프랑스에서는 젊은 신자가 늘었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젊은이가 교회를 찾는다면 교회는 늘 문을 열어두고, 그들을 맞이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이다.
마다가스카르에서 프랑스로 유학 온 치모카 헤리아리티아나(25)씨와 그의 남자친구 안드리 라보비(25)씨가 프랑스 슈망뇌프 공동체의 '찬미의 밤'이 끝나고 소감을 전하고 있다.
마다가스카르에서 유학 온 치모카 헤리아리티아나(25)씨와 연인 안드리 라보비(25)씨는 “우리는 찬미의 밤에 참여해 침묵 속에 성찰하는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이들은 “주일 미사 때 전례에 참여하는 것도 좋지만, 이곳에서는 또래 에너지를 물씬 느낄 수 있다”면서 “젊은이의 희년에 로마 순례도 다녀왔는데, 서로 얼굴도 모르던 세계 젊은이들이 ‘예수님’ 한 분을 함께 찬양하면서 한자리에 모인 것만으로 매우 놀랍고 기뻤다”고 2027 서울 WYD에 대한 기대감을 전했다.
와서 보아라
이제 2027 서울 WYD다. 전 세계 젊은이 신앙인들의 관심이 쏠리는 곳은 한국 교회다. 보편 교회 청년들은 공통된 신앙 안에서 영적 갈증과 외로움을 해소할 축제의 장을 기다리고 있다. 서울 WYD를 준비하며, 파리 WYD에 주목해야 할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젊은이들과 지난 WYD에 서너 차례 참가하고, 2027 서울 WYD 조직위원회 사무총장을 지낸 양주열 신부는 “처음 WYD가 시작된 유럽 교회는 박해받은 역사를 지니고 있는 만큼 유럽의 WYD 목적이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이후 브라질 등 남미 교회가 개최한 WYD는 예수님을 믿지 않아 박해 받은 역사 속에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가를 질문하고 답하는 과정’에 초점이 맞춰졌다고 양 신부는 해석했다.
이제 시선은 아시아로 향하고 있다. 전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이자 비그리스도교 국가에서 WYD가 최초로 열린다는 점에서 한국 교회는 ‘보편 교회와 어떤 메시지를 나눠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피할 수 없다.
양 신부는 “아시아 교회, 그중에서도 한국 교회야말로 예수님의 ‘인간성’을 보여주기에 가장 적합한 조건을 지니고 있다”며 “인공지능(AI) 시대에 다시금 인간다움이 위협받는 오늘날, 비그리스도교 국가이자 분단 국가 속 한국 교회는 보편 교회에 소외된 젊은이, 이웃, 타 종교인과 함께하는 새로운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리나라는 K-팝 등 문화 강국으로 부상하며 전 세계에서 가장 ‘트렌디’한 나라로 평가받지만, 어쩌면 당시 프랑스 사회보다 더욱 세속화된 한국 사회에서 인간의 몸으로 오신 주님의 메시지는 선명하게 대비될 수밖에 없다.
양 신부는 “서울 WYD는 인간으로 오신 하느님이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세례를 받고 복음을 선포하신 그 ‘인간다움’의 가치를 성찰하는 보편 교회의 장이 될 수 있다”며 “유럽 교회가 선포한 그리스도, 남미 교회가 확인한 그리스도에 이어 아시아 교회의 WYD가 예수님의 인간성을 모두의 마음에서 꽃피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 정신을 구현할 수 있는 것은 개최지 한국 교회 청년들이며, 함께할 세계 젊은이들이다.
30년 전 교황의 초대
“사랑하는 한국 젊은이 여러분, 하느님께서 여러분들과 함께하시고 여러분들로 하여금 그분께서 베푸신 이 은혜에 형제적 증인이 되길 바라며 평화의 건설자가 되기를 빕니다.”
1997년 8월 24일 파리 WYD 파견미사에서 느닷없이 한국어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천천히 또박또박 한국어로 인사를 전했다. 당시 교황은 WYD에서 주요국 언어로 인사를 하곤 했는데, 특별히 한국 젊은이들을 위해 한국어를 연습해 전한 것이다.
교황의 짧지 않은 한국어 인사에 당시 소수의 한국 젊은이들뿐 아니라 전 세계인이함께 감동했다. 교황의 인사는 젊은이들을 향한 복음 선포가 더 이상 유럽 교회에만 머무르지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30년 전 교황이 예견한 대로 2027 서울 WYD에서 전 세계 젊은이가 형제요, 평화의 건설자로 만나게 됐다.
박예슬 기자 okkcc8@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