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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국교회 유일 농아 수도자 인보 성체 수도회 심재기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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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듣지 못해요. 하지만 더 많은 걸 들을 수 있어요. 나와 하느님은 서로 단 한 번도 침묵한 적이 없어요. 지금도 우리 사이에는 참 많은 이야기가 오가요. ‘너만이 나를 들을 수 있어’, ‘그런 너를 내가 많이 사랑해’라고요….”


언어라고 하면 흔히 ‘소리 내어 말하는 것’만 떠올린다. 그렇기에 침묵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상태’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한국교회 유일의 농아(聾啞) 수도자 심재기 수녀(루치아·91·인보 성체 수도회)는 ‘손짓의 언어’인 수어로 언어와 침묵의 본질을 새롭게 일깨워준다. 


심 수녀는 “진짜 침묵은 나를 비워내어 상대로 가득 채우는 사랑이며, 진짜 언어는 상대를 소외시키지 않고 말을 건네는 사랑”이라고 말한다. 소통의 중심이 청인에게만 맞춰진 교회 안에서 스스로 입교해 57년간 수도자로 살아온 그의 삶과 영성은 고정관념을 깨뜨린다.


1934년 강원도 강릉. 듣고 말할 수 없는 아이로 태어난 그 순간부터 하느님은 끊임없이 심 수녀에게 말을 걸었다. 수어조차 배울 기회가 없어 가족과도 소통이 어려웠던 그는 “오래전부터 나를 부르는 알 수 없는 목소리가 있었다”며 “그 목마름을 따라, 나를 시집보내려는 부모를 훌쩍 떠났다”고 고백했다.


1956년, 심 수녀는 고(故) 김학순(악셀) 수녀를 통해 서울 대신학교에서 고(故) 한공렬(베드로) 대주교를 만나게 된다. 당시 대신학교 제4대 학장이었던 한 대주교는 식복사로 일하던 그의 수도 성소를 향한 열망을 알아보고 입회를 추천했고, 인보 성체 수도회는 기꺼이 그를 받아들였다. 1969년, 마침내 심 수녀는 정식으로 수도회에 입회했다.


청인들 사이에 홀로 농아로 살아야 했던 그는 늘 외로움을 안고 살았다. 늦은 나이에 배웠기에 표준 수어가 여전히 서툴렀고, 동료들과는 간단한 손짓으로만 소통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을 그분께서 끊임없이 보내주셨다”는 심 수녀의 회상대로, 하느님은 침묵하지 않았다. 그의 표현대로 ‘바늘과 실’ 같았던 고(故) 신봉립(안토니아) 수녀는 2018년 선종하기까지 단짝이 돼 수도복 바느질 소임을 40년 이상 함께했다. 


심 수녀를 위해 둘만의 수신호도 만들어 이야기를 나누고, 둘만이 있는 바느질 방에서조차 단 한 번도 얼굴을 붉힌 적 없이 늘 웃으며 격려했다. 동료 수녀들도 두 사람의 수신호를 익히고 다 같이 수어를 배우는 등 다정하게 동참했다.


신 수녀 선종 후에도 하느님은 여전히 심 수녀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지금도 심 수녀에게는, 수어를 하는 전미숙 수녀(소화데레사·인보 성체 수도회 서울 수도원 원장)와 평신도 봉사자 한 명이 단짝이 돼 보살피고 함께 기도한다.


심 수녀는 51년간의 바느질 소임 동안 남들이 귀찮아하는 잔손질, 신경이 더 쓰이는 끝마무리 손질까지 기쁘고 정성스럽게 수도복을 만들어 ‘나를 비우고 상대로 채우는 침묵’의 모범을 가족 수녀들에게 보였다. 지금도 마른 행주질, 기도 시간 촛불 켜기 등 공동체를 소소하게 챙기는 노후 사도직을 해내는 심 수녀는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는 언어’, 수어로 진심을 전한다.


“세상에서 아름다운 것들은 오직 가슴으로만 느낄 수 있대요. 나를 수도자로 불러주신 하느님, 그리고 수도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받아주신 수도회와 수녀님들께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요.”


박주현 기자 ogoya@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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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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