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28일
기획특집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칼럼 - ‘공동의 집’ 지구를 위해] (13) 생태 위기 시대, 구원으로 가는 길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자기-비움’으로 번역되는 ‘케노시스(Kenosis)’는 삼위일체론과 그리스도의 성육신 교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개념이다. 필리피서의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필리 2,6-7)라는 구절이 케노시스 신학의 핵심 본문으로 여겨진다.


“인성을 취하지 않았다면, 구원은 없다(Quod non est assumptum, non est sanatum)”는 초대 교회의 격언은 이러한 케노시스적 구원론을 집약적으로 드러낸다.


프랑스 출신의 저명한 학자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 1947~2022)는 행위자-연결망 이론(Actor-Network Theory)을 창시하며 신유물론 학파 성립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브뤼노 라투르는 2021년 8월, 독일 오스나브뤼크에서 열린 가톨릭 신학 관련 콘퍼런스에서 ‘생태변환과 기독교 우주론’이라는 글을 발표하면서 우리 시대, 즉 인류세 혹은 신기후 체제에서 구원은 ‘높은 곳으로의 상승주의’가 아니라 ‘아래로의 방향 전환’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신기후 체제와 성육신 사이에 이상한 친근성이 있다. 생태 위기는 성육신이 이미 가리킨 방향을 연장시킨다. 구원은 낮춤, 케노시스를 향한다.”


그러면서 인간중심주의는 인간이 창조주에 대해 갖는 의존과 수십억 년에 걸쳐 거주 가능한 세계를 구축해 온 생명체들에 대한 의존 속에서 자기 한계를 드러낸다(김홍중, 「가까스로- 있음: 브뤼노 라투르의 파국의 존재론」, 306-7쪽 참고). 


인간이 만물 중생의 지배자라는 위치를 버리고 동등한 가이아(Gaia)의 시민으로 스스로 재규정하는 문명적 자기 비움이 요청된다며 여기에 인간 구원이 달려있다고 그는 본 것이다. 이는 그의 사유가 단순한 학문적 프로젝트를 넘어, 인간 문명의 회심(metanoia)을 요구하는 윤리적·영적 요청으로 확장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인간의 케노시스적 ‘자기 비움’은 정치·법·경제 질서에서 어떻게 수용될 수 있을까? 케노시스는 성자가 전능의 형식 자체를 포기하고 피조물의 조건을 떠안음으로써 신성을 드러낸 존재론적 사건이다. 그렇다면 케노시스적 자기 비움이란 단순한 태도의 변화나 도덕적 겸손이 아니라, 존재 방식(mode of being)의 변형을 뜻한다. 이것이 라투르가 말한 ‘성육신이 이미 가리킨 방향의 연장’이란 표현의 핵심 의미다. 


인간의 육체는 생태계·지질·미생물·대기·물의 상호작용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점에서 성육신은 더 이상 인간만을 중심에 둔 구원 사건으로 이해될 수 없고, 오히려 지구적 물질성 전체를 끌어안는 신적 자기 비움으로 재해석될 수 있다. 


이 맥락에서 인간은 자연 위에 군림하는 주체가 아니라 지질·기후·생명 과정 속에 얽혀 들어간 존재로 자신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인간이 유일한 권리 주체라는 지위를 내려놓고 법질서 안에서 자연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은 비인간 존재에 대한 비대칭적 우월성을 포기하는 ‘법의 케노시스’가 가능해질 것이다. “인성을 취하지 않았다면, 구원은 없다”라는 격언은 생태 위기의 시대에 다음과 같이 재독해될 수 있다.


“지질·기후·비인간 생명과의 상호 의존성이 구원의 장 안으로 ‘취해지지 않는다면’, 인간 구원 역시 성립할 수 없다.”



글 _ 박태현 요셉 다미아노(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지구법학회장)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6-01-28

관련뉴스

말씀사탕2026. 1. 28

에페 5장 21절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서로 순종하십시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