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강은 강원도 횡성 태기산에서 시작해 원주 서쪽 호저면과 지정면·문막읍을 휘돌아 여주와 맞닿은 부론면에서 남한강과 하나가 된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토정비결」을 쓴 조선 중기 학자 토정 이지함 선생이 굽이쳐 흐르는 섬강 주변으로 병풍처럼 펼쳐진 기암괴석의 절경에 취해 두꺼비 모양을 한 큰 바위 절벽에 ‘병암’(屛岩)이란 글자를 새기고 이를 기억하기 위해 강 이름을 ‘섬강’(蟾江) 곧 ‘두꺼비 강’이라고 했다고 한다.
토정이 이토록 바위에 글을 새기고 강 이름을 지을 만큼 빼어난 산수를 지닌 곳이 바로 서원주에 위치한 지정면 간현리이다. 이곳 정취에 푹 빠진 이는 토정만이 아니다. 강원 관찰사를 지낸 송강 정철도 간현리 섬강 나루를 건너며 ‘관동별곡’ 중 한 수를 지었다. 조선 선조 때 이조판서를 지낸 이희 역시 이 일대 경관이 일색이어서 더 나아가지 않고 자리 잡고 남은 생을 보냈다. 그리고 이곳이 얼마나 좋았으면 자신의 호를 간현 마을 늙은이란 뜻의 ‘간옹’(艮翁)이라 지었을까.
간현 마을의 자연 경관이 빼어난 것은 비단 섬강 때문만은 아니다. 달빛을 머금고 도도히 흐르며 들숨 날숨으로 생명을 내뿜는 섬강의 은은한 숨결도 사람들을 취하게 하지만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소금산, 곧 ‘작은 금강산’이 계절에 따라 변하는 자태가 절색이다.
마을을 감싼 북산과 남강이 이렇게 아름다운데 어찌 사람들이 머물지 않으랴! 그래서 마을 이름도 ‘머무는 고개’라는 뜻을 담은 간현(艮峴)이다. 자연 경관이 수려한 만큼 마을 이름이 담고 있는 뜻도 다양하다. 괘이름 간(艮), 재(고개) 현(峴). 그대로 뜻풀이를 하면 ‘동북향의 고개’라는 뜻이다. 팔괘 중 하나인 간은 ‘그치다·머물다·좋다·아름답다·어질다’는 뜻도 품고 있다고 한다. 또 이곳 일대에 숫돌이 많이 나와 ‘숫돌고개’라 해서 간현이라 부른다고도 한다. 숫돌고개란 지명은 전국 곳곳에 많이 있다. 경기도 고양의 숫돌고개처럼 숫돌이 많아서 부른 지명도 있지만, 대부분은 ‘골짜기 속에 자리한 마을’을 가리키는 ‘속골’에서 유래한다. 속뜻이 어떠하든 지정면 간현 마을은 소금산과 섬강 가운데 자리해 누구든 머물고 싶어하는 절경 산수의 고장이다. 이곳 원주시 지정면 간현리 925-1에 원주교구 서원주본당 간현공소가 있다.
간현 마을에 언제 가톨릭 신앙이 전래했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다만 일제 강점기에 홍재서(안드레아)가 삼척에서 이주해와 신앙생활을 했다고 전해진다. 간현 마을에 복음을 본격적으로 전하고 가톨릭 신앙을 싹 틔운 이는 안정희(마리아 막달레나)이다. 그는 경기도 양도에서 지정면 월송리 송호 마을로 시집와 보따리 약장사를 했다. 그러던 중 1946년께 인근 장승바위골 토막집에 살던 김연옥(수산나)을 만나 가톨릭 교리를 배웠다. 1956년 원동 주교좌 성당에서 세례를 받은 그는 간현과 무장리 신평·가곡 마을로 보따리 장사를 다니며 손님들에게 전교했다.
안정희는 장사해 모은 돈으로 교리서 등 가톨릭 서적을 사 천주교에 관심을 보이는 이들에게 무료로 나눠주었다. 그리고 월송리 송호 마을 자기 땅과 집을 교회에 기증해 공소로 사용했다. 이렇게 그는 1956년 월송공소, 1958년 간현공소, 1969년 신평공소 설립에 영적 물적으로 큰 힘을 보탰다.
간현공소 경당 내부. 개방감을 더하기 위해 입구 전체를 유리로, 내부는 흰 벽으로 치장했다.
특별한 장식없이 소박하게 꾸며진 간현공소 제단과 예수 성심상.
공소 기초 놓은 ‘보따리 약장수’ 안정희 여사
간현공소는 안정희 여사의 헌신으로 예비신자 3명이 세례를 받고 1958년 2월 홍제서의 며느리 원춘영(데레사)의 집에서 학성동본당 초대 주임 박 토마스 신부(5대 춘천교구장) 주례로 공소 설립 미사를 봉헌하면서 시작했다.
6·25전쟁의 여파로 모두가 곤궁했던 당시, 박 토마스 신부는 미국에서 보내온 구호물자를 나눠줬다. 밀가루와 옥수수가루 등을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해 주민들은 성당을 찾아왔고 교리를 배웠다. 흔히 ‘밀가루 신자’라 불렀던 이들이 성당을 가득 메웠다.
간현공소도 마찬가지였다. 더 이상 가정집에서 공소 예절을 할 수 없을 만큼 신자 수가 늘어났다. 그래서 교우들이 모금한 10만 원과 교구 지원금 20만 원으로 간현리 801의 대지 700㎡, 건평 50㎡ 초가 한 채를 사서 공소로 사용했다. 1980년 이 초가 공소를 팔고 지금의 공소 자리인 1000㎡ 땅을 샀다. 하지만 새로 장만한 땅에 건물을 지을 여력이 안 돼 공소 회장 집에서 20년 가까이 공소 예절을 해야 했다.
간현공소 설립 40주년이 되던 1998년. 공소 신자들이 그토록 소망하던 공소 건물이 지어졌다. 100㎡ 면적에 벽돌로 지은 단층 건물로 성당과 교리실 1개를 갖췄다. 본당 신자들의 도움으로 지은 공소는 그해 12월 19일 축복식을 가졌다.
간현공소는 2018년 8월 서원주본당이 설립되면서 학성동본당에서 관할이 바뀌었다. 그리고 다음 해인 2019년 공소 경당을 증축해 지금의 모습으로 새로 단장했다.
간현공소 입구에 들어서면 공소 건물 지붕 위 십자가를 배경으로 서있는 예수 성심상이 반긴다. 증축 전 경당으로 사용했던 공간이 지금은 사랑방으로 바뀌었다. 사랑방 입구 옆에는 원주교구가 조성한 순례길 ‘님의 길’ 구간 중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의 길’ 1-3구간 순례 공소 간현공소 스탬프를 찍는 함이 설치돼 있다. 1-3구간은 옛 구재공소에서 문막성당까지 가는 23.5㎞ 순례길이다.
간현공소 경당으로 가려면 공소 건물을 끼고 정원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아기자기하게 꾸민 정원은 달맞이꽃·자귀나무 등이 심어져 있고 그 중심에는 성모상이 조성돼 있다.
공소 경당은 개방감을 더하기 위해 입구 전체를 유리로, 내부 벽면을 흰색으로 치장했다. 회중석과 제대, 제단 일부는 나무로 만들어 놓았다. 양측 벽면에는 십자가의 길 14처가 장식돼 있다. 회중석에서 바라보는 제단 왼편에는 성모상이, 오른편에는 서원주본당 수호성인인 로코 성인상이 있다.
로코 성인상. 가난한 병자들을 위해 희생한 로코 성인은 간현공소 신앙의 기초를 놓은 안정희 마리아 막달레나와 영적 일치의 연대감을 준다.
로코 성인과 안정희 여사의 영적 일치
간현공소는 가난한 병자들을 위해 희생을 아끼지 않았던 신심 깊은 두 평신도와 연결돼 있다. 로코 성인과 보따리 약장수 안정희 마리아 막달레나다. 14세기에 활동한 작은형제회 제3회 출신 로코 성인은 이탈리아 북부 피아첸자에서 흑사병 환자들을 헌신적으로 돌보다 자신도 전염돼 죽을 위기에 처했다. 마을에서 쫓겨난 그에게 개 한 마리가 매일 갓 구운 빵을 물고 와서 주고, 고름도 핥았다. 얼마 안가 기적같이 완치된 로코는 다시 흑사병이 창궐하는 마을로 돌아가 환자들을 돌봤고, 많은 치유 기적을 행했다. 선종 후 성인품에 오른 그는 순례자와 병자·외과의사·죄수·가난한 이의 수호성인이다.
우리 시대의 영성가 안셀름 그륀 신부는 “신비주의의 길은 항상 우리를 건강과 내면의 자유로 이끌고자 하는 치유의 길이며,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자아가 하나가 되는 영적 일치의 길”이라고 한다.(「내 안의 빛을 찾아」 14~15쪽 참조)
간현공소의 기초를 놓은 안정희 마리아 막달레나와 본당 수호자 로코 성인은 영적 일치의 순례 여정에서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나라에 머물게 하는 빼어난 산과 강 같은 존재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