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시 언덕 위 성모 방문 바실리카와 성모 마리아 방문 봉쇄 수녀회 수녀원. 방문 수녀회는 1610년 안시 시내에서 출발해 오랫동안 구시가지에 있다가 프랑스 혁명기에 해산됐다. 1911년 8월 두 설립 성인의 성유물을 모시고 안시호가 내려다보이는 셈노즈 언덕에 새롭게 정착했다. 성모 마리아 방문 성당은 1951년 8월 17일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준 대성전으로 승격됐다. 출처=셔터스톡
스위스 제네바를 찾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국제기구가 밀집한 도시인 만큼 전쟁과 분쟁, 인권과 난민 같은 의제가 쌓일수록 회의도 늘기 마련입니다. 더 나은 세계를 만들자는 창설 정신은 명확한데, 극단으로 치닫는 국제정치의 현실 앞에서 무기력과 절망감이 남기 마련입니다.
그럴 때면 시간을 내어 갈 만한 장소가 있습니다. 제네바에서 남쪽으로 40㎞ 떨어진 안시입니다. 그곳 언덕에는 지친 마음을 다잡아 줄 안시 성모 마리아 방문 바실리카(La Visitation Sainte-Marie d’Annecy)가 있습니다.
티우강 물길이 흐르는 안시의 구시가지. 1860년 토리노 조약으로 사보이 지역이 당시 프랑스 제국에 병합되면서 안시도 새로운 국경 질서 재편의 영향을 직접 받았다. 운하와 다리, 호숫가의 아름다운 산책로는 역사의 굴곡과 경계의 변화 속에 정비된 결과이다. 다리 뒤로 옛 감옥인 팔레드릴이 보이고, 왼쪽 뒤로 로베르 드 제네바(훗날 대립교황 클레멘스 7세)가 태어난 안시성이다.
‘알프스의 베네치아’ 안시
안시는 프랑스 남동부 알프스의 관문 역할을 하는 인구 13만 명의 작은 휴양 도시입니다. 알프스에서 흘러내린 티우강이 여러 운하와 함께 시가지를 아름답게 흘러 ‘알프스의 베네치아’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안시는 중세에 제네바 백작 가문 통치 아래 교회·도시 행정이 얽혀 성장한 도시입니다. 서방 교회의 대분열과도 연이 있는 곳으로 ‘대립 교황’ 클레멘스 7세인 로베르 드 제네바가 안시성에서 태어났습니다. 근세 들어 종교개혁은 도시의 성격을 바꿨습니다. 제네바가 신교의 로마가 되어버리면서 제네바의 주교들이 수백 년 안시에 거처를 두고 사목활동을 해야 했었죠. 당시 안시는 가톨릭 진영의 거점으로서 전초기지였습니다.
안시역을 나서면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구시가지 쪽으로 향합니다. 안시의 주교좌 성당인 생피에르 대성당 방향으로 걷다가 퐁모랑 돌다리를 건너는 순간부터 주변은 중세 마을로 바뀝니다. 강변을 따라 카페와 식당이 이어지고 옛 감옥 건물인 팔레드릴이 보입니다. 한때 집들이 다리 위를 덮고 있었다는 이야기처럼 다리 양 끝은 지금도 건물 아래로 길이 파고들어 잠깐 어둑해졌다가 다시 빛으로 열립니다. 이제 오르막이 시작되는데, 숨이 조금 차오를 즈음 언덕 위로 72m 높이의 성당 윤곽이 나타납니다.
주 제대와 예수 수난 모자이크. 후진 벽면을 덮는 대형 모자이크는 네덜란드의 대표적 모자이크 장식가 앙투안 몰켄보어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1935년부터 제작해 1958년경에 완성됐다. 제대 감실은 ‘이사이의 그루터기’ 형상 위에 놓여 구원의 역사가 한 줄기에서 뻗어 나온다는 이미지를 드러낸다.
안시 성모 방문 성당 내부. 높이 26m, 길이 47.30m, 너비 18m 규모로 장중한 비례를 이룬다. 좌우 측랑에 방문 수녀회의 창립 등 이곳 역사를 주제로 한 스테인드글라스가 펼쳐져 있다.
성모 마리아 방문 봉쇄 수녀회의 모원
성모 마리아 방문 바실리카는 도시와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셈노즈 능선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성당의 기원은 한 여성 수도 공동체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제네바교구장이었던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는 1610년 성 요안나 프란치스카 드 샹탈과 함께 시내에 수녀회를 설립합니다.
두 성인은 병약하거나 나이가 많아 고행을 감당하기 어려운 여성들도 하느님께 봉헌된 삶을 살 수 있도록 수도 공동체를 만든 것이지요. 그래서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하는 장면을 공동체의 표지로 삼습니다. 바로 성모 마리아 방문 봉쇄 수녀회의 탄생입니다. 방문 수녀회는 2005년 우리나라에도 진출해 겸손과 온유함으로 숨은 삶, 작은 덕행, 절제된 규칙을 지키며 사랑을 단단히 하는 삶을 살고 있지요.
성당 바로 옆 건물이 그 수녀회의 모원(母院)입니다. 수녀회는 처음에 수도원 담장 안 기도에만 머무르기보다, 병자와 가난한 이들을 찾아가는 사랑과 자비의 실천을 지향했습니다. 하지만 수녀회가 자리 잡으면서 관상과 봉쇄의 성격이 강화됐습니다. 1626년 우르바노 8세 교황에 의해 교황청 직속 수도회로 인정된 뒤 방문 수녀회는 프랑스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합니다. 무엇보다 1673년 파레 르 모니알의 성모 마리아 방문 수녀원에서 성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의 신비 체험으로 방문 수녀회는 예수회와 함께 예수 성심 공경 확산의 주역이 됩니다.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와 요안나 프란치스카 드 샹탈의 만남을 그린 스테인드글라스(위)와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해(아래). 과부로서 네 자녀를 키워낸 드 샹탈은 1604년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를 만나 영적 우정을 쌓았고, 1610년 고행보다 온유와 겸손, 일상의 작은 덕행으로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을 강조하는 성모 마리아 방문 봉쇄 수녀회를 공동 설립했다. 경기도 연천을 포함해 오늘날 전 세계 150여 곳에 수녀원이 있다.
방문 수녀회의 두 설립 성인이 잠든 성지
방문 수녀회는 프랑스 혁명으로 잠시 단절을 겪었지만, 20세기 초 안시호(湖) 위쪽 언덕에 새 터전을 마련합니다. 1911년 8월 두 설립 성인의 성유물을 모시고 이 언덕에 정착하는데, 지금 성당과 수녀원 단지는 그 무렵 새롭게 조성됐습니다. 성당은 1922년 착공해 1930년 무렵에 모습을 갖췄고, 1949년 봉헌됐지요.
성당 내부는 푸른색 톤의 대리석 기둥들 사이로 빛이 머무는 자리를 마련해 둔 듯합니다. 주 제대로 나아가면서 보이는 좌우의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이곳 공동체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제대 뒤 벽을 가득 채운 대형 모자이크가 눈에 들어옵니다.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 아래에 전통적인 골고타 수난 장면처럼 성모 마리아와 성 요한 사도가 배치되어 있는데요. 성모 마리아 방문의 기쁨도 십자가의 사랑에서 흘러나온다고 말하는 듯합니다.
측랑 끝 금빛 청동관에 두 설립 성인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습니다. 중세 순례 전통에서 성인의 유해는 장소의 기억을 고정하는 못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안시 언덕의 성당도 두 성인의 성유물로 오래된 신심과 기억을 도시의 지형 위에 다시 배치한 셈입니다.
성당에서 내려다보는 호수와 알프스 전경은 세상 현실과 대조적으로 평화롭고 아름답습니다.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은 기적을 증명하려는 장면이 아니라, 두려움을 품은 채로도 사랑의 방향을 택하는 이야기입니다. 감당하기 힘든 일이 닥쳤을 때 인간은 대개 움츠러듭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숨지 않고 길을 나서서 도움이 필요한 엘리사벳에게 다가갑니다. 엘리사벳과의 만남은 그 길이 헛되지 않았음을 드러냈습니다.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의 “모든 것은 사랑으로, 강요로는 아무것도”란 문구를 되새깁니다. 현실에서 신앙인의 실천은 거창한 결단이 아니라 누군가를 찾아가는 방문일지 모릅니다. 하느님이 먼저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그 믿음으로 평화의 만남을 이어 나갈 수 있다는 것, 이 언덕의 방문이 남기는 울림이 아닌가 합니다.
<순례 팁>
※ 제네바·로잔에서 1시간 안팎, 리옹·그로노블에서 2시간 안팎. 안시역에서 바실리카까지 26번 버스로 14분 소요. 도보로 구시가지를 지나는 루트는 1.6㎞ 30분 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