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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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것을 주님께 [류재준 그레고리오의 음악여행]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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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봉헌 축일은 그리스도의 탄생 40일 후인 매년 2월 2일이다. 성 요셉과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님을 예루살렘 성전에 봉헌한 사건을 기념하는 이날은 그리스도교 전례 안에서도 유난히 상징과 이미지가 풍성하다.

이날 신자들은 성전이 아닌 정해진 장소나 소성당에 먼저 모여 아직 불을 밝히지 않은 초를 손에 든다. 사제는 흰색 제의나 플루비알레(망토, 까파라고도 함)를 입고 공동체를 이끌며 성전으로 행진한다. 노래가 흐르고, 사제는 이 예식이 지닌 의미를 설명하며 초를 축복한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촛불 축일(Candlemas)’이라고도 불려왔다. 그리스도를 ‘세상의 빛’으로 선포하는 이 행진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신앙의 고백이자 몸으로 드리는 기도다.

‘봉헌’은 흔히 무엇인가를 바치는 행위로 이해되지만, 전례 안에서의 봉헌은 그보다 훨씬 깊다. 제대 위에 올려지는 예물에는 우리의 삶과 노력, 기쁨과 고통, 그리고 감사가 함께 담긴다. 이는 ‘내 것을 내어놓는 순간’이 아니라, 나 자신을 하느님께 맡기는 순간이다.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했다는 것은 그분을 단지 율법에 따라 바쳤다는 의미를 넘어, 예수님 자신이 곧 참된 성전이심을 드러내는 사건이다. 봉헌은 자기 희생과 구별된다. 주님의 것을 주님에게 돌려 드린다는 것은 자유 선택으로 고결한 선택을 하는 것과 엄연히 구분된다.

이 축일의 전례와 가장 깊이 맞닿아 있는 음악은 바로 ‘Nunc dimittis(시메온의 노래)’다. 루카 복음 2장 29-32절 시메온의 축사를 그대로 가사로 삼은 이 노래는 “이제 보내소서”라는 뜻을 지닌다. 그리스도교 역사상 가장 오래된 성가 가운데 하나로, 음악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주여, 이제 주님의 종을 평안히 떠나게 하소서”로 시작하는 노래는 어떤 시대에 작곡되었든 특유의 품위와 영성을 잃지 않는다.

르네상스 음악의 거장 토마스 탈리스(Thomas Tallis)의 곡은 그레고리안 찬트에서 발전한 모테트 양식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준다. 세속 리듬의 흔적조차 정제된 화성과 대위법 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들며, 음악은 마치 오래된 성전의 아치 사이를 흐르는 빛처럼 유연하게 움직인다.

//youtu.be/d3cXDREtcug?si=cX9SlivDTHozjmwu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이름, 팔레스트리나(Giovanni Pierluigi da Palestrina)의 작품은 저절로 듣는 이의 경탄을 자아낸다. 단 한 군데의 허술함도 없는 완벽한 대위법은 교본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다. 그러나 이 음악의 진정한 위대함은 구조적 완벽함을 넘어선 영성에 있다. 이 곡을 듣고 있노라면 마치 그날 성전에서 시메온이 실제로 들려준 축사를 함께 듣는 듯한 환상에 빠지게 된다.

//youtu.be/uwmHCEC3ThE?si=AbIh6l-nzAD1ZZ5c

마지막으로 에스토니아 작곡가 아르보 페르트(Arvo Pärt)의 작품은 깊은 베이스의 저음에서 시작해 완벽한 옥타브가 만들어내는 투명한 공명 위로 믿기 어려울 만큼 순수한 선율이 떠오른다. 주님의 기적은 늘 우리를 놀라게 하고, 조용히 행복하게 만든다. 음악이라는 작은 파생물 역시 그분이 허락하신 또 하나의 작은 기적일 것이다.

//youtu.be/0t-jC3QThXQ?si=OM_0mspPJHQyOLrt

작곡가 류재준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6-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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