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4일
기획특집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성 프란치스코의 발자취를 따라] 성 다미아노 성당, 충만한 시간의 완성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불타는 떨기 한가운데에 당신 모습을 모세에게 드러내시며 거룩한 땅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성스러운 장소는 하느님께서 당신 신비를 드러내신 곳입니다. 이 신비를 아시시 성 밖 한적한 곳에 있는 성 다미아노 성당의 십자가를 통해 성 프란치스코에게 보여주셨고, 현재는 성 프란치스코와 성녀 클라라의 삶을 통해 당신 현존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시리아의 의사이며 순교자인 다미아노 성인에게 봉헌된 성 다미아노 성당은 8~9세기 사이에 처음 지어졌고 1030년까지 베네딕토 수도원의 중요한 경당으로 사용되다가 점차 부서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성당 안에 있는 이콘형 십자가는 12세기 익명의 화가가 제작했는데, 성당의 이름을 따 ‘다미아노 십자가’로 불립니다. 성녀 클라라 선종 이후 베네딕토 수도원이 1257년 성 다미아노 성당에서 클라라 대성당으로 이전하면서 이 십자가도 함께 옮겨졌기 때문에 현재 성 다미아노 성당에 있는 십자가는 모조품입니다.


그리스어에서 유래하는 이콘이라는 말은 ‘비친 상’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거울 앞에 서 있을 때,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바로 이콘인 것입니다. 초기교회 시절, 눈으로 볼 수 없는 초월적인 대상을 그림으로 그린다거나 형상으로 만드는 것은 교리적으로 우상숭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동방교회에서 시작된 이콘의 주제는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 그리고 넓게는 사도들까지만 가능했고, 이콘을 그리는 것도 전문적인 화가가 아니라 영성이 뛰어난 수도자만이 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성 프란치스코가 중요한 일을 앞두고 항상 단식과 기도를 먼저 하신 것처럼, 수도자는 이콘을 그리기 전 단식기도와 회개를 하고, 지도 사제로부터 신학 교육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눈에 보이는 현실적인 대상을 그리려 했던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비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 밖으로 드러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콘은 내가 바라보는 대상이 아니라 이콘에 그려진 분이 나를 바라보는 것이고, 이런 이유로 이콘 속 가장 중요한 분은 가장 크고 그다음으로 중요한 분은 조금 더 작고, 이콘을 바라보는 우리는 이콘 속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이 아닙니다. 이콘 속 예수님의 시각으로 평면은 공간으로 확장되고, 우리 또한 그 안에 함께하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가 기도한 다미아노 십자가가 우리의 시간을 초월하여 지금 내 앞에서도 뭔가를 말씀하실 것만 같이 보이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이콘 앞에서 우리는 기도하지만 유명한 화가들이 그린 성화 앞에서는 그림에 대한 감상만 하게 됩니다.


다미아노 십자가에서 무엇보다 먼저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비록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손과 발 그리고 옆구리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지만, 죽음의 슬픔과 고통이 아니라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시는 기쁨의 순간입니다. 예수님의 얼굴에서는 고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두 눈을 크게 뜨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보내신 성부의 뜻을 이해하시고 모두 이루셨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처럼 머리는 오른쪽으로 살짝 기울어져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예수님 머리 뒤의 후광이 증명하듯 밝게 빛나고 있고, 예수님 주위의 사람들이나 천사들에게서도 어떤 슬픔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십자가의 신비를 이해하고 있다는 듯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예수님 팔 아래 다섯 사람은 예수님의 모습보다 작지만 십자가에 그려진 다른 사람들보다는 크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직접 본 증인임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왼쪽 두 명은 성모 마리아와 성 요한 사도 그리고 오른쪽 세 사람은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작은 야고보의 어머니인 클레오파의 마리아 그리고 “참으로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마르 15,39)라고 고백한 백인대장입니다. 백인대장의 이 한마디는 예수님은 죽은 것이 아니라 아직도 살아 계신다는 증언입니다.



성모 마리아 아래 작은 모습으로 그려진 사람은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던 로마 병사이자 순교자인 성 론지노입니다. 백인대장 아래 작은 모습의 사람 역시 로마 병사로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으로 예수님의 입을 적셔드렸던 성 스테파톤입니다. 발아래에는 여섯 명이 사람이 서 있고 덜 훼손된 두 명의 사람에게서는 후광도 보입니다. 일반적으로 이 여섯 명은 움브리아 지방의 수호성인으로 성 요한 사도, 성 미카엘, 성 루피노, 성 요한 세례자,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양 팔의 끝에 있는 여섯 명의 천사도 슬퍼하는 모습보다는 놀랍고 영광스러운 광경을 서로 이야기하며, 십자가를 바라보는 우리 모두를 ‘살아 계시며 양팔을 벌려 모든 사람을 맞이하시는’ 예수님에게로 초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머리 위에는 죄명판 ‘유다인의 왕 나자렛 예수’라는 말이 라틴어로 적혀있고 그 위로 황금색 옷을 입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고 계십니다. 열 명의 천사가 예수님을 반갑게 맞이하고, 하늘나라에 오르시는 예수님은 손을 들어 인사하시는 것처럼 밝은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예수님 머리 위로는 두 손가락을 펴고 올라오는 성자를 축복하며 맞으시는 성부이신 하느님의 오른손이 보입니다.


다미아노 십자가의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있는 수동적인 모습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두 팔과 손을 벌려 우리 모두를 하늘나라로 데려가기 위해 세상 끝 날까지 기다리시는 살아 계신 예수님이십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이 십자가 앞에서 멀리 계시는 하느님이 아니라 우리 곁에 사람이 되신 하느님을 본 것입니다.



글 _ 이관술 요한 마리아 비안네(성지순례 가이드)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6-02-04

관련뉴스

말씀사탕2026. 2. 4

필리 4장 4절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여라. 거듭 말하노니,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가까이 오셨도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