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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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진단] 탈핵, 희망, 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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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걷는다고요?!” 지난해 연말, 이번 정부가 아무래도 핵발전소 건설을 추진할 것 같다면서 ‘탈핵희망순례’가 기획됐다. 핵발전소 밀집지역인 고리·영광에서 각각 세종으로 향하고, 동시에 세종 기후에너지환경부 앞에서 청와대로 향하는 총 세 팀이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걷기 시작했다.

겨울치고 따뜻하다고 생각했던 날씨는 순례가 시작된 지 며칠 지나자 혹한과 눈보라로 바뀌었다. 매일 구간마다 인근에 사는 사람들,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을 내는 사람들이 함께 걸었다. 걷는 것도 추운 것도 싫어하는 나는 대체 왜 이렇게 급하게 또 걷느냐고 구시렁대면서 어떻게 손과 발을 보태야 하나 동동거렸다. 하루 평균 20㎞, 보름 동안 대략 300㎞를 걸은 순례단은 기어코 청와대 앞까지 가서 미사를 드리고 의견서를 전달했다.

그 사이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에너지정책과 핵발전에 대한 공론화라면서 두 차례 ‘토론회’를 개최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전기가 필요한지, 핵발전의 필요성에 대해, 안전성과 경직성 보완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 ‘전문가’들이 돌아가며 이야기했다. ‘토론회’라고 하는데, 핵발전을 반대하는 목소리는 ‘전문가’ 자격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었다.

기후에너지환경부와 청와대에 의견서를 전달한 다음 주, 기후에너지환경부 김성환 장관은 지난 정권이 수립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신규핵발전소와 소형모듈원자로(SMR) 건설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대국민 여론조사에서도 핵발전은 필요하다고 했다며, 앞으로 어디에 지을 건지 충분히 논의하겠다면서.

언론은 일제히 이재명 정부가 탈핵을 폐기하고 친핵으로 돌아섰다고 보도했다. 그날 나는 고리2호기 수명연장 승인 무효소송 참가 독려 문자를 보내다가 이 소식을 듣고 바닥이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걷고, 그렇게 마음을 모아, 바닥에 떨어진 쌀 한 톨 같은 우리들의 마음을 샅샅이 모아도, 그런 마음은 닿지 않는 건가. 핵발전이 필요한 이유만 설명하고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듣는 ARS 설문조사가 언제부터 정책 결정을 위한 타당한 의견 수렴창구가 되었나. 부지 선정도 어렵고 고준위 핵폐기물 처분장 마련도 어렵다면서 신규핵발전소 건설에 반대하던 자신들의 정책을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뒤집어도 되는 건가.

바닥에 처박힌 것 같은 마음을 달래고 겨우 끌어모아, 다시금 ‘뭐라도 해야지’라는 마음으로 일어난다. 어떻게 일어나야 하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 라는 나와 우리의 고민에 두 눈을 질끈 감고 ‘희망’을 다시 떠올린다. 여기서 희망은 단순한 낙관주의도, 마법의 기적도, 유토피아적 환상도 아니다. 희망은 “행동의 결과가 당장 눈에 보이지 않아도, 우리의 행동이 합리적이라는 믿음”이다.(로마서 8,24 참조, 2024 창조시기 자료집 인용)

하느님의 창조세계 보전을 위해 탈핵하겠다는 희망으로 구리·영광·세종에서 300㎞를 걸어온 동료들이 있다. 그들은 어리석어서 그 걸음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 희망의 표징을 세상에 드러내고, 희망의 순례에 이웃을 초대하기 위해 발걸음을 뗀 것이다. 그러니 바로 이 시점, 많은 것이 무너지고 실망스럽다고 느껴지는 바로 지금, 그 희망의 순례를 나 스스로, 우리 스스로 이어가야 하지 않을까. 함께 노래하며 걸을, 어쩌면 다소 길 수 있는 이 순례에 당신을 초대한다.

“희망에는 아름다운 두 딸이 있는데, 그 이름은 분노와 용기입니다. 분노는 현실에 대한 분노이고 용기는 현실을 그대로 두지 않으려는 용기입니다.”(성 아우구스티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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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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