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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마에 맞설 용기를 주소서 [류재준 그레고리오의 음악여행]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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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1일 ‘세계 병자의 날’은 병자와 노약자, 그리고 그들을 돌보는 모든 이를 위해 기도하고 연대하는 날이다. 1992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제정되었고, 루르드의 성모 마리아 발현일이기도 한 만큼 치유와 위로의 상징일로 제격이다.

루르드의 기적은 1858년 당시 14세였던 성 베르나데트가 성모 마리아의 지시에 따라 발견한 샘물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수많은 치유의 증언이 전해졌고, 교회는 엄격한 의학적·신학적 심사를 거쳐 일부 사례만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오늘날 루르드는 전 세계 병자와 가족들이 희망을 품고 찾아오는 대표적인 순례지다.

복음서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수많은 기적 가운데서도 사람들의 마음을 가장 강하게 사로잡는 것은 단연 병자를 치유하신 기적이다. 나병 환자를 낫게 하시고,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이를 고치시며, 심지어 죽은 이를 다시 살리셨다. 병은 인류에게 가장 오래된 공포이자 적이다. 고대인들은 병을 신의 형벌로 이해했고, 병자를 저주의 대상처럼 취급했다. 코로나 팬데믹만 떠올려봐도 감염된 이들을 향한 두려움과 배제가 얼마나 본능적인지 쉽게 기억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주님의 치유 기적은 단순히 육체의 회복을 넘어 공포와 맞설 용기라는 무기를 우리에게 건네준 사건이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예수님께서는 그 많은 기적 중에서도 늙은이를 다시 젊은이로 되돌리는 기적은 행하지 않으셨다. 이는 현세에서 인간이 영생을 누릴 수 없고,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천명하신 것이다. 그렇기에 노화를 거부하고 젊음을 되찾으려는 집착, 수명을 무한히 연장하려는 시도는 그리스도교 정신과는 거리가 있다. 수많은 영화와 소설이 이 주제를 다루는 이유는 ‘금지된 열매’를 향한 인간의 무모함이 강력한 서사적 긴장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병과 죽음을 정면으로 마주한 클래식 음악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작품으로는 베토벤의 ‘현악사중주 Op.132 제3악장’을 꼽을 수 있다. 바로 “병에서 회복된 자의 신성한 감사의 노래”다. 베토벤이 실제 중병에서 회복한 뒤 그 고통과 감사를 음악으로 승화한 작품이다. 20분에 달하는 길고 장대한 단악장으로, 병과 치유를 다룬 음악 중 가장 직접적이며 숭고한 걸작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Danish 현악 사중주단이 연주하는 베토벤 현악사중주 op.132 3악장

//youtu.be/gumi5pEpOaA?si=OdzQXurzegusM18A

종교음악에서는 페르골레시의 ‘슬픔의 성모’가 대표적이다. 십자가 아래에서 고통받는 성모님의 모습을 통해 병자와 슬픔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형상화한 이 작품은 바로크에서 고전주의로 넘어가는 전환기의 감수성을 잘 보여준다. 르네상스 음악보다 훨씬 감정적이고 표현적이며, 루르드의 성모 마리아 관련 행사에서도 자주 연주된다.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연주

//youtu.be/HUZbq6JZ8ro?si=f3Cg8pjQrxU0sOGP

기적은 아무에게나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는 때로 가장 가까운 이들을 병마로 떠나보내야 한다. 세계 병자의 날에 기억해야 할 것은 모든 병이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는 냉혹한 현실 속에서도 두려움에 맞서 살아가도록 주님이 주신 용기 자체가 이미 하나의 기적이라는 것이다.

작곡가 류재준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6-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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