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감소가 진행되는 지역, 특별히 농촌공소의 침체에 대한 관심은 이미 인구 소멸이 국가적인 화두에 오르기 전부터 있었다. 한국천주교 200주년 기념사업 일환으로 1984년 발표된 가톨릭농민회의 「한국 천주교 농촌공소 실태 조사연구보고서」도 농촌공소의 침체 상태를 지적하며 “농촌교회, 도시교회가 하나로 살기 위해서는 초대교회의 모습, 한국교회의 모태인 공소 공동체의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성찰은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인구 소멸이라는 공소 신자 감소의 주된 원인은 교회 차원에서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공소가 사라지는 것을 두고만 볼 수는 없는 일이다. 이런 고민 속에서 한국교회 여러 교구는 공소를 살리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
공동체를 되살리기 위해
전국에 산재한 교우촌에서 박해를 딛고 살아남은 신자들은 종교의 자유를 찾자 공소를 세웠다. 그리고 그 공소의 삶과 역사는 신자에서 신자로, 공소에서 공소로 이어져 나가 본당이 됐고, 지금의 한국교회로 성장했다. 공소는 단순히 역사 사적지로서만이 아니라 한국교회 신앙의 맥을 이어주는 공동체다.
대구대교구는 원로사제들이 공소 주일미사에 함께할 수 있도록 체계를 갖춰 공소 공동체의 활성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교구는 공소 거주를 희망하는 원로사제들의 공소 정착과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원로사제의 공소 거주를 통해 공소가 활성화되는 사례들이 공유되면서, 공소 활성화를 지향하는 교구도, 은퇴를 앞둔 교구 사제들도 관심이 높아진 것이 계기가 됐다.
교구는 공소 운영과 사목이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공소를 관할하는 본당과, 공소 신자들, 원로사제의 의견을 수렴해 규정을 마련했다. 현재 6명이 공소에 거주하고 있고, 직접 거주하지 않지만 공소 미사를 주례하는 사제는 7명으로, 총 13명의 원로사제가 주일미사를 거행하며 공소 공동체를 돕고 있다.
공소를 살리기 위한 교구 간 협력도 눈길을 끈다. 서울대교구는 2023년부터 춘천·원주·제주교구 공소에 교구 사제를 파견하고 있다. 교구 내에 공소가 없는 서울대교구는 사제들이 공소사목을 경험할 수 있고, 춘천·원주·제주교구는 교구 내 공소 활성화에 힘을 얻을 수 있어 호응을 얻고 있다. 현재 춘천교구 송정공소, 원주교구 올산·월송공소, 제주교구 우도준본당·청수공소 등에 서울대교구 사제가 파견돼 활동하고 있다.
사제 파견 없이도 공소가 점차 활성화되는 곳들도 눈길을 끈다. 바로 귀촌하는 신자들 덕분에 공소 신자 수가 늘어난 곳들이다. 기존 공소 신자들이 타지에서 온 신자들을 환대하고 이주한 신자들이 기존 공소 신자들을 존중하는 자발적인 노력이 활성화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이런 공소들은 신자들의 평균 연령이 상대적으로 낮아 활동이 왕성한 점이 특징이다.
역사를 보존하기 위해
이렇듯 공동체를 살리려는 노력도 있지만, 인구 소멸의 현실 속에서 모든 공소를 다 살리는 것은 어려움이 크다. 실제로 통계상에는 공소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사실상 건물만 있거나, 그마저도 방치돼 사용하기 어려운 상태의 공소들도 많은 상황이다.
공소 공동체가 사라지고, 건물만 남았다 하더라도 공소 중에는 교회사적 가치가 높은 곳들이 많다. 공소 건물 자체가 가치 있는 곳도 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많은 공소가 지역 복음화의 역사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주교회의가 발행하는 「한국 천주교 성지 순례」에도 167곳의 순례지 중 6곳이 공소고, 책에 등재되지는 않았지만 교우촌에서부터 이어오거나 교회사적으로 의미 있는 공소도 많다.
전주교구는 수년 전부터 교구 사제단 등 구성원의 공감대를 형성해 온 가운데, 현재 문화적·역사적 보존 가치를 지닌 교구 내 공소를 비롯해 본당과 성지를 사적지로 선정하는 사업을 준비 중이다. 개별 공동체가 아닌 교구 차원에서 ‘교구 사적지’로 지정해 보다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더 나아가 순례길을 조성함으로써 신앙 선조들의 유산을 보존한다는 계획이다.
전주가톨릭순교현양원 김광태(야고보) 신부는 “모든 공동체가 오래된 역사와 가치를 가졌다고 볼 수 없고, 인력과 자원의 제약 속에서 공소와 본당을 모두 보존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그럼에도 우리 신앙이 시작되고, 순교 역사를 지닌 곳들만큼은 후대에 물려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작은 공소와 본당 등에 대한 관심을 교구 차원으로 확대해 나간다면 교구민들의 자부심도 커져 신앙의 풍요로움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구대교구 역시 공소 탐방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교구는 공소 보존과 관리를 위해 2024년 공소 관리 담당 사제를 임명하고, 교구 내 모든 공소를 현장 답사하며 ▲공소의 역사성 ▲예술성 ▲신자들이 느끼는 공소의 가치 등을 확인하고, 공소에 관한 기록과 자료를 확보하는 작업을 진행해 오고 있다. 이를 통해 역사적·예술적 가치가 큰 공소들을 새로 단장하고 순례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황점신앙유적지 개발담당 겸 공소 관리 담당 김호균(마르코) 신부는 “인구 감소로 공소가 소멸돼 가지만, 교회 역사 안에서 공소는 교회의 못자리였기 때문에 그 기억을 잊어서는 안 된다”면서 “공소는 우리가 소중하게 간직해야 할 유산”이라고 말했다. 다만 “무조건 폐쇄 혹은 유지하려고만 하기보다 교구와 본당의 실정에 따라 많은 대화를 통해 합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렇듯 공소를 한국교회의 살아있는 역사로서 보존하는 활동은 신자들에게 공소가 지닌 가치를 알리는 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는 다시 공소에 대한 교회 공동체의 관심을 모으고 공소를 살리는 힘이 된다.
원주교구 공소사목협의회 박종섭(힐라리오) 회장은 “고령화와 이주자 증가로 공소 신자 감소를 막을 수는 없지만 원주교구는 공소가 한국교회에서 왜 중요한지를 신자들에게 꾸준히 알리려고 노력하고 있다”면서 “공소를 살리는 일은 많은 신자들이 공소의 중요성을 알고 관심을 갖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