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소를 돌아보노라면 마치 제가 초대교회에 와 있는 듯합니다.”
전주교구 전동본당 초대 주임이었던 파리외방전교회 프랑수아 보두네 신부는 1889년 뮈텔 주교에게 보낸 편지에서 공소에서 받은 감명을 이렇게 표현했다.
보두네 신부는 “(공소 신자들은) 현세의 재물이 궁핍하지만, 사람이나 신분의 차별 없이 조금 있는 재물을 가지고도 서로 나누며 살아간다”고 공소 공동체를 사도행전의 초대교회 공동체에 빗대면서, “예비 신자들도 선배 형제들의 표양을 본받고 있다”고 감탄했다.
한국교회의 뿌리라 할 수 있는 공소 공동체가 삶으로 신앙을 증거하고, 또 그 신앙을 이어온 살아있는 교회의 역사였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오늘날 이 공소들이 하나둘 자취를 감추고 있다. 한국 천주교회 통계에 따르면, 1993년 1416곳이던 공소는 2003년 989곳, 2013년 791곳으로 줄었고 2024년에는 702곳으로 감소했다.
특히 농어촌 지역 공소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젊은 세대는 도시로 떠났고, 남은 신자들도 고령화와 선종으로 그 수가 빠르게 줄고 있다. 많은 공소가 더는 공동체를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 것이다. 지방 인구 소멸이라는 사회적 흐름이 공소 공동체의 소멸을 가속화하고 있다.
70년 역사를 뒤로하고 2025년 폐쇄된 광주대교구 청계본당 강정공소의 마지막 공소회장 정문성(요셉) 씨는 “2023년 공소 설립 70주년 때만 해도 그나마 신자들이 있었지만, 이후 한 명씩 선종하거나 몸이 불편해 나오지 못하면서 3~4명까지 줄었다”며 “혼자라도 공소를 지키려 했지만, 몸이 불편해 더 이상 공소를 유지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인구 감소라는 거대한 흐름을 되돌리긴 어렵지만, 그럼에도 교회는 공소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대구대교구는 원로사제가 공소에 거주하며 공동체를 돌볼 수 있도록 체계를 갖췄고, 서울대교구와 춘천·원주·제주교구 등은 도시 교구의 사제를 농촌 공소에 파견하는 방식으로 함께 공소 사목을 지속하고 있다. 귀촌 신자들과 화합하며 되살아난 공소들도 여럿 있다. 전주교구 등에서는 교회사적 가치가 큰 공소를 보존하고 순례지로 조성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19세기 한국교회 공소에서 초대교회를 떠올렸던 보두네 신부의 기억은, 오늘 공소를 지켜나가는 이들의 고백과 맞닿아 있다. 공소가 간직해온 신앙의 기억과 공동체의 정신은 여전히 계승해야 할 교회의 자산이기 때문이다.
대구대교구 공소 관리 담당 김호균(마르코) 신부는 “이농 현상과 인구 감소 등으로 공소가 점차 줄고 있지만 우리는 공소라는 뿌리를 다시 생각해야한다”고 말했다. 이어 “공소를 방문하다 보면 가슴 뭉클한 사연도 많은데, 그런 신앙 이야기가 우리에게 소중한 자산이 될 수 있다는 걸 발견한다”면서 “교회의 기억, 과거의 역사를 되새김하면서 현재에서 미래로 가는 방향성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공소의 존재를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