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권리를 가질 수 있을까? 침팬지나 돌고래 등 특정 동물의 권리를 인정받기 위한 소송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제기되어 왔으며, 일부 국가에서는 그러한 시도가 법적 승인으로 이어지고 있다. 더 나아가 숲이나 강과 같은 생태계의 권리도 인정하는 움직임이 등장했다. 에콰도르는 자연 전체를 권리의 주체로 선언하였고, 뉴질랜드는 특정 숲과 강에 법적 지위를 부여했으며, 스페인 또한 석호에 권리를 인정하였다.
권리는 인간이 고안한 규범적 장치로, 전통적인 법질서는 자연인에게만 권리를 가질 능력을 인정하고, 예외적으로 국가나 기업과 조직에 법인격을 부여해 권리를 가질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자연이나 특정 생물종, 생태계의 권리를 인정하자는 제안은 왜 제기된 것일까? 이유는 인간과 자연 사이의 어긋나고 단절된 관계를 교정하고, 회복하는 데 권리의 인정이 꼭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자연의 권리론자들은 관계의 건강성은 참여자들 사이의 호혜성에 달려 있다고 본다. 그리고 호혜적 관계가 가능하려면, 각 참여자는 저마다 그 본성에 따라 살아갈 자유를 누릴 고유한 이익과 가치를 지닌 존재로 승인되어야 한다. 이러한 상호 승인 구조를 인간의 법질서 속으로 번역, 반영하는 핵심 장치가 바로 ‘권리’라는 장치라고 한다.
이러한 생각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 「찬미받으소서」(이하 ‘회칙’)와도 깊이 맞닿아 있다. 회칙은 생태 위기의 원인을 인간이 자신을 만물의 중심에 두고 자연의 고유한 가치를 무시해 온 태도에서 찾는다. 특히 기술과 경제적 효율을 앞세워 자연을 단지 이용 가능한 대상으로만 취급하는 ‘기술 관료적 패러다임’과 ‘그릇된 인간중심주의’를 강하게 비판한다.(회칙 제115-120항)
자연을 타당한 규범적 고려의 대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이 요청은, 자연을 권리의 담지자(擔持者)로 호명하려는 시도와 방향을 같이 한다. 한편, 토마스 베리(Thomas Berry) 신부는 지구 공동체의 모든 성원은 존재할 권리와 서식지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고 보았다. 그는 우주를 상호 의존적 존재들이 맺는 친교의 질서로 이해하며, 이를 위대한 규범(Great Law)이라 불렀다. 인간의 법은 이 친교를 약화시키는 방향이 아니라 유지하고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 논의를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꿀벌의 사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꿀벌은 새로운 둥지를 선택할 때, 일부 정찰벌들이 각자 흩어져 후보지를 탐색한 뒤 돌아와 몸짓, 즉 춤을 통해 특정 장소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다. 다른 벌들은 이를 참고하되 다시 직접 현장을 확인하고, 지지가 일정한 수준을 넘어서면 군집 전체는 하나의 결정으로 수렴한다. 이 과정은 꿀벌이 단순한 기계적 반응을 수행하는 존재가 아니라, 부분적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하고, 표현하며, 상호작용 속에서 집단적 결정을 만들어내는 ‘행위자’임을 보여준다.
인간을 비롯한 피조물을 권리를 가진 존재와 그렇지 않은 존재로 구분하는 경계가 하느님의 질서가 아니라 인간의 편의 속에서 형성된 것이라면, 우리는 그 경계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판단과 표현의 능력을 지니고 생태공동체 속에서 수분이라는 고유한 기능 수행을 통해 광범한 생명부양체계를 떠받치고 있는 꿀벌은 ‘최소한’ 존재할 권리와 서식지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고 할 것이다.
글 _ 박태현 요셉 다미아노(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지구법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