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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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액션’ 상처 딛고 일어난 보헤미아 신앙 중심지 젤리프 수도원

[중세 전문가의 간 김에 순례] 63. 체코 젤리프 프레몽트레회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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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리프 프레몽트레회 수도원. 젤리프는 체코 비소치나 지역의 ‘숨은 보석’으로 꼽힌다. 12세기 중엽 이곳에 수도원이 설립되고, 1149년부터 프레몽트레회가 정착한 뒤 수도원 중심으로 지역 사회가 발전했다. 현재 10여 명의 수도자가 정주하며, 방문자 센터·호텔·레스토랑·양조장을 운영하고 있다.

요즘 유럽 어디를 가도 K-컬처와 K-푸드가 화제입니다. 한국 드라마·음악·음식은 낯선 나라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체코에서만큼은 ‘K’라는 글자에 좋은 기억만 있지는 않습니다.

체코 현대사에서 K는 한때 공포의 알파벳이었습니다. 공산 정권의 ‘K-액션’ 때문입니다. 1950년 4월 13일에서 14일로 넘어가는 밤, 체코슬로바키아 전역에서 219개 남자 수도원이 폐쇄되고, 2376명의 수도자가 연행·수용되었습니다. 하룻밤 만에 수도자들의 일상이 단절되었습니다만, 박해의 중심이었던 장소 중 오늘날 그 삶을 다시 이어가며 순례자를 맞이하는 곳이 있습니다. 보헤미아 고원의 작은 마을 젤리프(?eliv) 프레몽트레회 수도원입니다.
젤리프 수도원의 성모 탄생 성당. 1712년 화재로 큰 손상을 입은 뒤, 1714년부터 개축을 시작해 1736년에 봉헌됐다. 1714~1720년 얀 블라제이 산티니-아이헬(Jan Bla?ej Santini-Aichel)은 고딕 성당의 수직성과 전례 축을 바로크 공간감으로 재해석했다. 주 제대와 성소를 향해 동선이 자연스럽게 수렴되도록 바로크의 과도한 장식을 절제했다.

보헤미아 발전에 기여한 프레몽트레회 수도원

젤리프는 체코 남동부 젤리프카강과 트르나브카강이 만나는 구릉지대에 자리한 인구 1200명의 작은 마을입니다. 수도원과 함께 천 년의 역사를 살아온 곳이지요.

젤리프 수도원은 1139/1144년에 설립되었습니다. 처음에 베네딕도회가 이곳에 정착했습니다만, 1149년 올로모우츠의 인드르지흐 주교의 초청으로 독일 슈타인펠트 수도원의 프레몽트레회 수도자들이 진출해 정주하게 됩니다. 프레몽트레회는 우리나라에는 없어서 낯설겠지만, 1121년 크산텐의 성 노르베르트가 프랑스 프레몽트레에서 설립한 정규 의전사제단으로, 성 아우구스티노 규칙을 따르며 공동체 생활과 본당 사목을 함께 수행하는 것이 특징인 오랜 전통의 수도회입니다.

젤리프 일대는 프라하와 남·동부 지역을 잇는 교역로와 가깝지만, 숲과 구릉이 많은 지형 탓에 개간과 정착은 느리게 진행되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수도원의 설립은 종종 지역 개발과 관련 있습니다. 물길을 다루고, 숲을 개간하며 경작지를 넓히는 과정에서 수도원은 경제의 중심이 되곤 했습니다. 공동체의 기도와 지역 교회 사목을 균형 있게 결합한 프레몽트레회의 전통 덕분에 수도원은 젤리프 지역의 사목 거점인 동시에 지역 질서의 한 축을 이루며 성장해 나갔습니다.
젤리프 수도원 아빠스 관저. 중세 후기 보헤미아 트르체크 가문의 성채였으나, 군사 기능을 잃고 수도원 단지로 흡수됐다. 공산 정권 시기 수용소와 정신병원으로 쓰였으며 1990년대 동유럽 민주화로 다시 수도원 기능을 되찾은 후 수도원 행정·교육·전시·문화 공간으로 쓰고 있다.

보헤미아 특유의 고딕화된 바로크 양식 성당

수도원 단지 중심에 한 쌍의 돔이 있는 성모 마리아 탄생 성당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바로크 양식의 외부 모습과 달리 성당 내부는 18세기 고딕화된 바로크 양식의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즉 고딕처럼 보이는데, 자세히 보면 바로크 양식이죠. 이는 18세기 체코 대표 건축가인 얀 블라제이 산티니-아이헬이 의도적으로 구현한 것입니다.

산티니는 1712년 대화재 후 성당 개축을 맡으며, 중세 고딕 성당의 수직적 리듬과 축선을 그대로 살리되, 바로크 특유의 연속적 공간감을 주려 했습니다. 본랑의 기둥 배열과 볼트의 상승감은 고딕을 연상시키지만, 과도한 장식을 절제해 시선이 어느 한 지점에서 멈추지 않고 자연스럽게 주 제대에 수렴되도록 했죠. 이는 하루의 리듬을 전례와 공동체 생활에 맞춰 살아가는 프레몽트레회와 시토회 같은 수도회에 잘 맞았습니다.

주제대의 공간은 산티니가 구현한 미학을 감상하는 공간만은 아닙니다. 수도원의 굴곡진 역사의 현장입니다. 15세기 초 후스 전쟁 시기 교회와 수도원은 신앙 논쟁의 상징이자 신교파의 공격 대상이었습니다. 젤리프 수도원도 약탈과 파괴를 겪으며 공동체의 규모와 영향력이 크게 위축됩니다. 16세기에 들어 합스부르크 왕가의 통치 아래 다시 가톨릭화가 진행되면서, 수도원은 제도권 교회 안으로 들어옵니다. 전례는 복원되고 공동체의 틀도 갖추어지지만, 회복은 더뎠습니다. 30년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이마저도 중단되고 말았죠. 전쟁이 끝난 뒤 바로크 시대의 복구가 시작되면서 비로소 젤리프는 다시 숨을 고릅니다.

그렇지만 20세기 전체주의 박해는 치명타였습니다. 특히 K-액션 후 이곳은 수용소로 바뀌어 1956년까지 사제와 수도자 464명이 갇혀 있었습니다. 그 후 40년 가까이 정신병원으로 이용됐지요. 같은 공간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기쁨과 감사의 장소였고, 누군가에게는 침묵 속 견딤의 자리였죠.
12명의 순교자 유해를 모신 주 제대와 전체주의 정권 희생자 추모 기념물. 화해의 순례에 맞춰 각각 2018년과 2019년 봉헌됐다.

열두 순교자를 모신 제대

체코 현대사의 기억은 더 직접적으로 제대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2018년 설치된 제대에는 ‘열두 순교자’의 성해가 모셔져 있습니다. 초대 교회의 로마 첫 순교자들을 비롯해 보헤미아 교회의 성인, 나아가 20세기 나치와 공산 체제 아래에서 신앙 때문에 박해받은 이들의 기억이 이곳에 간직되어 있습니다. 2000여 년의 박해를 관류한 신앙의 증언이 전례의 중심에 서 있는 셈이죠.

성당 한쪽에는 공산 체제 아래 감금과 억압을 겪은 성직자·수도자들을 기억하는 추모 공간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 앞을 밝히는 초의 불빛에서 이곳이 과거 아픈 기억을 기도로 승화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젤리프 수도원은 어느 한 인물, 한 시대의 신앙이 아니라 수많은 시간 속에 층층이 쌓인 신앙의 장소입니다. 중세 불모지부터 현대사까지 부침·단절·침묵의 시간이 겹쳐 있습니다. 그 무게는 무겁지만, 절망으로만 남지 않습니다. 침묵 속에서도 기도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버텨낸 시간 자체가 신앙의 증거가 된다는 것, 젤리프 수도원이 담담히 보여줍니다.

 
<순례 팁>

※ 프라하·브르노를 잇는 D1 고속도로의 중간 지점으로 각 도시에서 1시간 20분 정도 소요. 철도로 접근하려면 스베틀라(Sv?tlá nad Sázavou)역이나 폼플레츠(Hompec)역까지 와서 택시 환승.(25분)

※ 미사 전례 : 주일 및 대축일 10:30, 평일 08:00(월~목·토)·18:00(금). 수도원·아빠스관저·양조장·투르체크성 투어 : 각 45~55분.(5/1~8/31 예약 필요 없음, 그 외 기간 사전 예약제)

※ 혼자 가시기 힘든 분을 위해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이 마련한 2026 유럽 수도원 성지 순례. 문의 및 신청: 분도출판사, 010-5577-3605(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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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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